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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찰을 단서로 돌아온 국군전사자

국방부, 국군전사자 7,700여구 발굴…신원확인 어려워

입력 2014-05-21 10:09 | 수정 2014-05-21 11:37

▲ 국방부 유해발굴단이 정연식 이등중사 유가족에 발굴과정을 설명하고 있다.ⓒ국방부

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지난 20일, 2013년 10월 강원 양구군 월운리 수리봉에서 발굴된 국군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했다.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국군 5사단 36연대 소속으로 ‘51. 8. 18∼9. 5 양구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故 정연식 이등중사이다.

기록에 의하면 故 정연식 이등중사는 1951. 3. 3일 입대하여 인제 부근 어론리 전투를 거쳐 1951년 8월 28일, 입대한지 5개월 만에 양구지구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1954년 10월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된 걸로 보아 전투당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故 정연식 이등중사의 유해는 전투화, 탄, 야전삽 등의 장구류와 명찰, 혁대 등 개인소지품이 함께 발굴되어 신원확인의 길을 열어주었는데 특히, 명찰에 새겨진 ‘정연식’이라는 이름을 단서로 당시 기록 및 병적을 추적한 결과 8명의 동명이인을 확인했다.

이 중 발굴지역과 군번을 바탕으로 故 정연식 이등중사로 압축한 다음, 유가족과의 DNA검사로 혈연관계를 확인함으로써 최종 신원을 확증했다.

전사자는 1928년 강원 영월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나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며 살았으며, 18살(처, 15살)에 결혼하여 입대 6개월 전 아들을 낳고 24세가 되던 1951년에 입대했다. 

미망인이 기억하는 전사자는 순하고 따뜻한 분으로, 남편이 입대한 후 마을에 군인차가 지나가면 숨어서 언제쯤 올까 매일매일 기다던 어느 날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던 중 전사통지서를 받고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이 후 유해라도 꼭 확인하고 싶었지만 완곡한 친정식구들의 권유로 하는 수 없이 재가를 하게 되었고, 그럼에도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사망)과 정선에 거주하는 손자 정의학(38세)씨와는 자주 왕래하며 지내고 있다.

국방부에서는 전사자 신원확인 통보절차에 따라 유가족 손자 정의학씨의 강원 정선 자택을 방문해, 국방부 장관 명의의 신원확인 통지서와 명찰, 군장고리 등의 유품 그리고 관을 덮었던 태극기를 정성과 예를 갖춰 정식으로 전달했다.

유해는 유가족과 협의를 거쳐 올해 6월 중 육군 주관으로 대전 현충원에 모셔질 예정이다. 

2000년 유해발굴사업 개시 이래 국군전사자를 7,700여구 발굴했지만 현재까지 91위(故 정연식 이등중사 포함)만이 신원확인이 되었으며, 이번 故 정연식 이등중사 사례처럼 유해와 함께 출토된 인식표, 명찰, 도장 등 신원확인에 필요한 단서를 이용하여 확인된 사례는 33위이다. 

이처럼 단서와 함께 발굴될 경우 대상자를 압축하여 빠른 시일 내 신원확인이 가능하지만 6·25전사자의 특성상 유가족과의 유전자 비교검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축적된 발굴유해와 유가족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로 특정 단서 없이 발굴된 유해의 신원확인율 향상이 기대되지만 더 많은 전사자의 신원확인을 위해서는 아직 참여하지 못한 유가족들이 빠른 시간 내 유전자 시료채취에 동참해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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