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지적에 시 관계자 “나무에게 물어보면 돼”, 학계 “어이없다”
  • ▲ 서울시가 일본 남부지방에서 잘 자라는 편백나무 숲 조성사업을 학계 및 전문가들의 의견수렴도 없이 졸속추진하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사진은 충복 영동군 해발 600여m의 산림에 조성된 편백나무 군락지.ⓒ 사진 연합뉴스
    ▲ 서울시가 일본 남부지방에서 잘 자라는 편백나무 숲 조성사업을 학계 및 전문가들의 의견수렴도 없이 졸속추진하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사진은 충복 영동군 해발 600여m의 산림에 조성된 편백나무 군락지.ⓒ 사진 연합뉴스

    서울시가 추진 중인 [편백나무 숲] 조성사업이 관계전문가들의 자문조차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특히 추위에 약한 수종을 선택해 숲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산림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의견수렴도 없이 예산부터 집행한 것으로 확인돼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올해 안에 은평구 봉산과 구로구 천왕근린공원에 각각 3,000그루씩 모두 6,000그루의 편백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지난달 30일 밝혔다.

    편백나무 숲은 전남 장흥, 장성군 등에 대규모로 조성돼 있지만 온난화 현상에 따라 최근 2∼3년 사이 이보다 위도가 높은 경기 용인 등에서도 생장이 가능하다는 견해가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편백나무 숲 조성에 이미 예산까지 투입한 서울시 역시 같은 입장이다.

    경기 용인 등지에 식재된 어린 편백나무가 한두 차례씩 겨울을 거치면서 비교적 생육상태가 양호하다는 사실을 볼 때, 서울에서도 편백나무 숲 조성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서울시민의 [치유]를 본 사업의 목적으로 꼽았다.
    많은 시민들이 시간과 비용을 들일 필요 없이 가까운 편백나무 숲에서 삼림욕을 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시는 지난 5일 약 5,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은평구 봉산에 1,500그루, 구로구 천왕산에 1,000그루 등 모두 2,500그루를 식재했다.

    서울시는 앞으로 2, 3년간 식재된 편백나무의 성장을 지켜본 뒤 사업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서울시의 편백나무 숲 조성에 쓰일 총 예산규모는 아직 미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나무의 생육 상태에 따라 예산 규모가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사업 확대 가능성까지 열어두는 등 시작단계부터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산림을 전공한 학자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산림보존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서울대 김성일 교수는 서울시의 판단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추위에 약한 편백나무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할 때, 어린 편백나무 묘목들이 한파가 지속되는 서울의 겨울을 만나면 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편백나무가 일본 남부 지역에서 서식하는 나무라고 해도 서울의 한파에는 살아나기 어렵다.

    일부 사람들이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한반도 기온상승을 고려해서 편백나무를 심으려는 것 같은데 과연 우리나라 서울의 겨울날씨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지난 겨울 미국의 경우 수십 년 만에 최저기온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 질 수 있을지 의문.

       - 김성일 서울대 교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50년 혹은 100년 만에 처음 겪는 이상 기후에 대비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충고도 귀담아 듣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서울시 관계자는 전문가의 의견수렴도 없이 사업을 졸속 추진한 사실에, “나무에게 물어보면 된다”는 엉뚱한 답변을 내놨다.

    편백나무가 추위에 약한 수종이긴 하지만, 사전답사를 통해 경기도 이천, 용인 등 중부지방에서도 잘 자라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나무들은 2, 3년 전부터 몇 차례의 겨울을 견디면서 잘 자라고 있다.
    서울에서도 안 될 것 없다.

    전문가들은 책상에 앉아서 서울에 편백나무를 심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말을 하지만, 정확한 답변은 나무한테 물어보는 게 최고.

       - 서울시 관계자


    서울시 관계자의 발언은 학계 및 전문가집단의 의견수렴을 처음부터 배제했음을 시인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점에서, [졸속 추진]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서울시가 편백나무 숲 조성 사업을 시작한 배경도 [졸속]이란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의 편백나무 숲 조성사업은 지난달 30일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당시 기사를 보면 편백나무 숲 조성사업의 추진배경과 관련돼 박원순 시장의 발언이 나온다.

    최근 편백나무를 심어봤다는 분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검토하게 됐다.

       - 4월30일자, 연합뉴스 기사 중 일부

  • ▲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 연합뉴스
    ▲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 연합뉴스

    취재결과 박원순 시장이 말한 [편백나무를 심어봤다는 분]은 은평구 봉산에 편백나무 씨앗을 뿌리고 묘목을 심은 시민 김모 씨다.

    서울시는 김씨가 2012년부터 은평구 봉산에 뿌린 편백나무 씨앗 중 50%가 발아한 것을 예로 들면서 사업성공에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전문가들의 의견보다는 직접 서울지역 산에 나무 묘목을 심은 [시민의 경험]을 우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시의 해명에 학계 전문가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앞서 [기후변화에 따른 장기간의 관찰]이 필요하다며 우려를 나타냈던 김성일 교수는 서울시의 안이한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나무를 심을 때는 최소 50년 이후를 바라보고 심어야 한다.
    만약 서울시가 [장기기상예측], [미세기상]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했다면 비판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단편적인 결과만 보고 진행하는 것은 문제다.
    [환경 재앙]의 발생 여부는 오랜 시간 두고 지켜봐야 한다.
    올해 심은 편백나무들은 박원순 시장 임기에는 죽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의 자문 없이 오직 사전답사와 시민의 경험만으로 사업을 진행한 것은 잘못됐다.

       - 김성일 서울대 교수


    김 교수는 잘 자라고 있는 아카시아 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편백나무를 심으려는 서울시의 발상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표했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서울시의 무지(無知)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아카시아 나무는 어차피 다른 활력수와의 경쟁에서 지기 때문에 자연 도태된다.
    어차피 죽을 수종을 왜 굳이 예산을 들여가면서 베는지 이해할 수 없다.

       - 김성일 서울대 교수


    장진성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도 같은 의견을 나타냈다.
    나아가 장 교수는 편백나무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할 때, “서울시의 결정은 상식 밖”이라고 말했다.

    편백나무를 개체별로 심었을 때는 문제가 없겠지만 숲을 조성한다고 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20, 30년 내 한파가 몰아닥치면 많은 편백나무가 죽게 될 것이다.

    편백나무는 추위에도 약하지만 동시에 습도에도 민감해 더욱더 자생력이 떨어지는 수종이다.

    많은 편백나무가 죽게 될 경우 예산은 물론 숲 관리에 상당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감나무도 멀쩡히 잘 자라다가 갑자기 죽는 것처럼 편백나무도 이럴 가능성이 다분하다.

    본 사업은 상식적인 선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 장진성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