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만에 해후한 대학 동기에게 물었다.
"그래, 미국에서 바라보니 한국이 어떻게 보이던가?"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좌파는 이제 죽었더군"
좌파 담론의 생명력이 다했다는 뜻이기도 했고,
천안함 연평도 이석기 사태를 계기로
민심이 그들에 대해 싸늘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렇게 토를 달아 보았다.
"맞아, 이제 그들의 담론은 억지와 궤변으로 전락하고 있지.
그러나 그들에겐 아직 '그들 식(式)' 민족주의라는 게 집요하게 씌어 있고,
국사학계와 대중문화 등, 이데올로기 부문의 그들의 문화 권력은 여전히 완강하지"
그러자 다른 한 원로 문화인이 거들었다.
"현실은 달라졌지만, 평생을 그래 온 자존심 같은 것도 작용하고 있일 테고..."
"멀리서 보니 좌파는 죽었더라" 하는 것은 거시적인 트렌드를 말하는 것이리라.
좌파의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변혁론' 따위는 분명,
시대의 변화와 현실의 변화에 의해 삼진 아웃당하고 있다.
그러나 미시적으로 보면,
북한과 남한 좌익 및 좌파민족주의자들의 아집이라 할까 하는 '신앙'은,
그들이 확보한 진지(陳地)를 결사옹위 하려는 반발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 반발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이들은 더군다나 고립돼 있지 않다.
그들에게는 1980년대를 함께 산 심정적 심파(sympathizer)들이 있다.
결코 좌파는 아닌데도 기성세대 보수 우파를 일괄 '권위주의에 침묵하거나 부역한 자' 쯤으로
몰아치는 '약간 덜 익은' 화이트 칼라 인텔리 층이 바로 그들이다.
스카이 학교 나온 그들을 감히 '덜 익은'이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그들이 아무리 똑똑하게 나대도 이념문제에 관한 한에는 아마추어이 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마추어라고 단정하느냐고?
그들은 우파든 좌파든, 무엇이든을 위해 목숨을 걸어본 적이 없는
'관중석 감상 족(族)'이기 때문이다.
그 나름으로 인생을 열심히 살기야 했겠지만,
그래도 '이 풍진 세상'의 폭심(爆心)을 직접 맞아 씨름하기보다는
안전거리에서 간이나 보며 산 것 아닌가?
부산에 가보지도 않은 자일 수록 부산에 대해 더 잘 아는 것처럼 떠드는 격은 아닌지?
그들의 메모리 장치에는 그래서 더러운 것은 우 쪽에만 있고 좌 쪽에는 없다는
학창 시절 정보가 아주 오랜 동안 입력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너희들 보수는 유신 5공 시절에 뭐 했느냐? 그런 너희가 진보와 좌파를 공격하는 것은
더 보기 싫다." 운운.
그래서 그들의 이런 묘한 성향은
진짜 주전선(主戰線)이 어디인지를 헷갈리게 만드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지금 '누구 위해서' 극좌 전체주의와 그 통일전선을 배척하는 것인가?
반(反)전체주의 투쟁이 보수 우파만의 돈 벌이인가?
어쨌거나 이런 묘한 현상들로 인해 한국의 미시적인 갈등현실은 여전히 힘겹게 흘러가고 있다. 스페인 내란 당시의 마드리드 시가전 때 한 집 한 건물을 뺏고 빼앗기는 데 그렇게 오래 끌었듯이 말이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