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돈나―창녀 콤플렉스]
청소년들, [좌빨] [일베충] 낙인찍기… 6·25포로 수용소서나 있었을 법한 일
성녀(聖女) 아니면 창녀(娼女) 밖에 없는 이분법
조작된 [공공의 적(敵)] 공격하는 좀비나
모르고 칼춤 추는 선무당 되기 십상,
[좌파(左派)나 우파(右派) 되기]보다 계몽과 각성을류근일/뉴데일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
"청소년 사이에서
정치적 성향이 아니라
어느 연예인을 좋아하고 싫어하느냐에 따라
[좌빨](좌파 빨갱이)
[일베충](일베 회원을 비하하는 말)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욕을 먹기 십상이다."최근의 조선일보 기사다.
열다섯 살 먹은 김모 학생의 사례다.
그는 [좌빨]도 [일베충]도 아니다.
그저 걸 그룹 <크레용팝>을 좋아하는 사춘기 소년일 뿐이다.
그런 그가 오직 그것 하나 때문에
좌파, 우파로 찍혀 뭇매를 맞았다.
6·25 때 거제도 수용소 포로들 사이에서나 있었을 법한 [엽기]다.
비슷한 사례로
"'너 이거지?'라고 물었을 때
표정이 굳어지고 시선을 돌리면
적대방(상대방의 비속어)일 확률이 99.8%"라는
만화도 있다고 한다.남의 눈동자만 보고 적인지 아닌지를 식별하겠다니,
중세기 마녀재판 때도
이런 건 없었다.이념 갈등은 언제 어디서나 흔히 있는 것이지만,
우리 청소년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좌우 프레임에 갇혀 간다는 것은
예삿일로 치부할 수 없다.
말이 좋아
좌-우이고 이념 대립이지,
이건 엄밀하게 따지면
그 값에도 못 미친다.이건 그보다 훨씬 이전의,
문명적인 단계에 채 이르지 못한
조악(粗惡)한 의식 상태다.
근대문명을 낳은 계몽사상(enlightenment),
그것이 일군 이성과 지성이 메말라버린
황무지의 의식 상태일 뿐이다.전율할 일이다.
왜 전율하는가?
우선 청소년들의 세상 보는 눈을 사로잡고 있다는
그 난센스 같은 2분법부터가
위험하기 짝이 없다.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그것을 [마돈나(성모 마리아)-창녀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세상과 사람을
마돈나 아니면 창녀로 가르는 심리 상태다."주민의 손이 희면 반동분자, 그렇지 않으면 인민"으로 나눴던
캄보디아의 폴 포트 정권,
수용소에 도착한 유태인들의 얼굴만 힐끗 보고
"너는 왼쪽에, 너는 오른쪽에 서라"고 갈랐던
나치 정권이
그러했다.오늘의 우리 청소년들이
만약 그런 터무니없는 2분법에 길들여지고 있다면,
그들은 자칫
조작된 [공공의 적]을 핍박하도록 입력되는
좀비가 될 수 있다.
또 전율할 것은,
청소년들이
인문 교양 문화 예술 등 풍성한 지성적-감성적 세례를 거치지 않은 채
대뜸 완장 차고
세상을 벌하고 구하겠다고 나서는
위험성이다.1980년대에
숱한 젊은이들이 화가 난 나머지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략한 채
곧바로 지하서적 몇 권 읽고
"나는 알았다"고
확신했다.그들의 확신이
"전두환 물러가라"에 적잖이 한몫한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오늘날
정계-관계-교육계-문화계에 스며든 그 확신이
어떤 기가 찰 [귀태](鬼胎) 작품들을 남발하고 있는지는
그것대로 주목해야 한다.지금의 청소년들도 만약 그렇게 가고 있다면,
그들 또한 유사한 [편집성(偏執性) 과대망상] 세대가 될 수 있다.
이런 현실은 무얼 말하는가?좌파-우파가 되는 것보다,
제대로 알고 무엇이든 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이게 계몽 또는 각성이다.
칸트는 이것을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을 털고 일어서는 것"이라 했다.
이성과 지성과 예지를 구사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게 안 되면
칼춤 추는 선무당 나기 십상이다.
우리 주변엔 이미 선무당 칼날이 번뜩이고 있다.국정조사에 등장한
[돼지 눈에는 돼지만] [광주의 딸, 광주의 경찰]이 그렇다.어찌할 것인가?
특단의 대책 같은 건 없다.
그러나 계몽의 시대를 열 치유의 몸짓만은 없을 수 없다.
1973년,
뉴욕의 베스 에이브러햄 병원 의사 올리버 삭스는
<깨어남>(awakening)이란 논픽션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샀다.
기면성 뇌염(嗜眠性 腦炎) 환자들에게 L-도파를 썼더니
그들이
의식과 신체 무력증에서 기적적으로 깨어났다는 감동 스토리였다.
1990년엔 영화로 제작돼 아카데미상 3개 부문에 올랐다.
L-도파로 깨어나 있는 동안
환자 로버트 드니로는
다른 환자의 딸 페넬로페 앤에게 연정을 표할 정도가 된다.
그녀와 춤을 출 때는 경련도 사라진다.이 감격은
주치의 로빈 윌리엄스의 의식도 깨워놓는다.
쌀쌀맞게 대하던 간호사에게 상냥하게 말을 건넨다.
페넬로페 앤도
로버트 드니로의 침상에 진심으로 다가간다.
치료가 주변 모두를 인간화시킨 것이다.
다시 몽롱함에 빠져드는 로버트 드니로에게
주치의는 이렇게 말한다."자, 이제 또 시작해 볼까요?"
우리 주변의 문명성의 추락을
사회적 기면 상태라 진단할 때,
여기서 깨어나기 위해선
우리에게도
정신적 L-도파,
헌신적인 의사 역(役),
그리고 아름다운 매혹의 상대가
있어야 할지 모른다.<조선일보> 특별기고 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