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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낯선 단어가 하나 툭 떨어졌다.
국격(國格)이라는 말이다.
너도 나도 언론은 국격이 떨어졌다,
먹칠한 국격이라고 떠들기 시작한다.
국격청문회라는 이상야릇한 청문회를 하겠다고도 한다.
국격이 뭔가?
국격이라고 했을 때 무슨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일까?개인적으로는 10년쯤 전에 대전시장 하던 분의 말이 떠올랐다.
중국을 방문했을 때, 사소한 절차상의 부족한 것이 있었다.
(어떤 것이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당시 대전시장은 화를 내면서 이런 취지로 말했다.
"이래가지고 나라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어?"
솔직히 그게 무슨 나라의 체면하고 무슨 상관인가?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국격이란 나라의 품격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한국사람이면 어렴풋이 희미하게 의미를 짐작은 간다.
그래도 뭘 말하는 거야?
모호함은 여전하다.
혹시나 해서 네이버를 뒤져보았다.
국격은 나라의 품격이란다.
영어로는 national status라고 설명해놓았다.
이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이다.국격이 national status 라면, 거꾸로 national status 라는 단어를 들이댔을 때, 국격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다음 사이트에는 아예 국격이란 말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국격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길게 늘어놓는 것은,
뜻도 명확하지 않은 단어를 끄집어 내서 개인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쓰는 그 행태가 못마땅해서다.어느 신문의 11일자 헤드라인은 이렇게 뽑았다.
청와대 대변인이 먹칠한 國格
내용과 상관없이 청와대 대변인은 우리나라를 시궁창에 빠뜨린 못된 인간중에서도 가장 못된 인간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다.이런 식의 표현은 크게 두가지 점에서 매우 부당하다.
1. 윤창중은 청와대 대변인이지, 대한민국 대변인이 아니다.
어느 한 인간에게 있어서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옷은 다만 몇 년간 걸치는 장식일 수 있다.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자리에서 어떤 한 인간이 잘 못 했으면,
그 잘 못한 일에 대해서만 질책하면 된다.청와대 대변인이 우리나라를 온통 시커멓게 어둠속으로 빠뜨릴 수 있을까?
나라에 품격이 있다면, 그 품격은 각 개인의 인격이 모여서 생긴 집합에서 나온 것일 게다.
대한민국 5,000만명의 인격이 하나하나 모여 이뤄진 것이 대한민국의 국격일 것이다.
그렇다면, 5,000만명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 모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5,000만명중에는 술에 취해서 실수를 한 윤창중 전 대변인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술 한 잔 안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살인자 사기꾼도 많을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국격에 먹칠했다는 식의 표현은 청와대 대변인 한 사람만 없었으면 국격에 먹칠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청와대 대변인도 국민중의 한 사람이므로, 그의 인격은 우리나라 국격의 한 부분이다.
그저 우리나라 국민의 여러 속성중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떠오른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대 초반의 백악관 인턴 르윈스키와 저질스럽기 짝이 없는 섹스 행각을 벌여 전 세계의 모든 뉴스의 헤드라인을 수개월동안 장식한 적도 있었다.
클린턴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르윈스키를 유혹해 오랄 섹스를 벌인,
추잡하고도 낯뜨거운 사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었다.클린턴은 명백하게 미국이라는 나라의 위신을 깎이게 했다.
왜냐하면 미국 국민들이 자기를 대표하라고 뽑은 사람이기때문이다.하지만 청와대 대변인은 다르다.
한 외국언론에서 윤 전 대변인 해임 관련 기사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Without elaborating, the presidential Blue House said on its website that unspecified actions by spokesman Yoon Chang-jung marred the government’s dignity.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청와대는 웹사이트에서 윤창중 대변인의 어떤 행동이 정부의 품위를 손상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청와대 웹사이트 성명은 다음과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9일 윤창중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을 경질하기로 했습니다.
경질 사유는 윤창중 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수행 중 개인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에 연류됨으로써 고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보이고 국가의 품위를 손상시켰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경위는 주미대사관을 통해 파악 중이며 사실이 확인되는 대로 투명하게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청와대 웹사이트는 윤창중이 [국가의 품위]를 훼손했다고 표현했다.
이를 외국 언론은 government’s dignity (정부의 품위)로 바꿔서 표현했다.청와대는 윤창중이 국가의 품위, 즉 국가의 품격 국격을 손상시켰다고 보았지만,
외국인 눈에는 윤창중은 국가의 품위를 손상한 것이 아니다.
단순히 정부의 품위를 손상시켰을 뿐이다. -
이 표현이 논리적으로는 더 합당하다.
왜냐하면 윤창중은 좁게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대변인이고 조금 넓게 봐도 청와대 대변인이며,
아주 엄청나게 넓게 보아야 정부를 대표하는 사람일 뿐이다.윤창중은 5,000만 국민을 대표하는 대한민국 대변인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구성원인 필자는 윤창중을 대한민국 대변인으로 임명한 적도, 동의한 적도 없다.)청와대는 성명에서 [윤창중 대통령 비서실 대변인이 국가의 품위를 손상했다]고 표현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상당한 모순을 갖고 있다.윤창중은 대통령 비서실 대변인이므로 대통령,
혹은 대통령 비서실 아무리 넓게 봐도 청와대의 지시를 받는 행정부의 품위를 손상할 뿐이다.결국 청와대는 자신들의 위치를 잘 못 파악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청와대는 대한민국 정부를 이끌어가는 봉사기관이지,
대한민국 전체를 책임지는 그런 기구가 될 수 없다.그게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할 지 모른다.
하지만 정부든 청와대든,
그들의 자신의 위상을 어떻게 파악하느냐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밖에 없다.
혹시라도 이 나라는 내꺼야~하는 봉건적인 인식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다.정해진 임기를 가진 청와대 대변인이,
5,000만 대한민국 국민 전체와 5,000년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 국가의 품위를 손상할 수 있을까?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니 청와대는 국가의 품위라는 말을 쓰지 말기 바란다.
언론도 뜻 자체가 모호할 뿐 더러, 대표성도 갖지 못한 국격이란 단어를 가지고,
한 개인에게 지나치게 많은 짐을 지우지 말아야 한다.2. 아무 잘못없는 5,000만 전체 국민을 집단 수치심으로 몰아넣는다.
더 심각한 것은 국격이 훼손됐다거나 먹칠당했다는 표현은,
이번 사태와 전혀 상관없는 대한민국 5,000만명 전체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도록 유도하고 있다.수치심은 인간이 경험하는 최악의 감정 중 한두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또 다른 하나는 죄의식이다.청와대 대변인의 행동으로 국격이 먹칠당했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실수를 했다고 해서, 왜 내가 같이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가?
이번 사건은 그저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모든 국민이 같이 수치심을 느끼자고?국격이 훼손됐다느니, 먹칠했다느니 하는 것은 집단 수치심으로 몰아넣는 잘못된 생각이다.
집단 죄의식과 집단 수치심을 유발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이다.필요이상의 집단의식을 강조해서 수치심을 일으켜 사람을 조정하려 들거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자학적인 성향일수록 이런 수치심을 유발하기 쉽다.대한민국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이다.
그런 억지가 지금 이 세상에 왜 필요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