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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주의-
'자신의 삶에 책임지는 독립적 개인'이 핵심 개념
"두 발로 일어서서 자신의 삶을 책임지라"
"공산주의란 인간 본성에 맞지 않기 때문에 멸망할 수밖에 없다"
박지향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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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열고 장악했던 인물이 떠났다. 영국 역사상 첫 여성 총리로 세 번 연속 총선에서 승리하여 11년 반(1979~1990)이나 그 자리를 지켰던 마거릿 대처가 세상을 떴다. 87세 생일을 지냈으니 천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지만 그만한 능력과 카리스마가 있는 정치인은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아쉽기 그지없다. 대처는 진정 한 시대를 매듭짓고 새로운 시대를 연 지도자였다. 대처 이후의 영국은 그 전의 영국과 대단히 달랐는데 대처는 자신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고 자랑하였다.
대처는 풍기는 분위기와는 달리 잡화점집 딸이었다. 독실한 감리교도였던 아버지는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주진 못했지만 성실과 자기 절제라는 덕목과 '노력하면 반드시 보답이 온다'는 신념을 딸에게 심어주었다. 딸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실천했고 '선거로 뽑힌 또 다른 여왕'이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랐다.
1970년대 영국은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정받은 '유럽의 중환자'였다. '영국병'의 원인은 정부가 경제를 좌지우지한 케인스식 경제정책과 방만한 복지국가, 그리고 강성 노동조합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노조의 횡포였다. 1978년 겨울에 시작된 공공 부문 근로자들의 총파업은 영국 사회의 작동을 중단시켰다. 전국의 교통망이 마비되었고 썩은 쓰레기가 넘쳐났으며 시신도 매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대중이 느낀 좌절과 환멸 덕분에 다음 총선에서 압승한 대처는 강성 노조를 상대로 치열한 투쟁을 벌인 끝에 법과 질서를 회복시켰다. '영국병'의 가장 심각한 증세를 치유한 것이다. -
'영국병'의 두 번째 치유는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시장과 개인을 경제 행위의 주체로 회복시킨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의 모든 집권당은 '시대 정신'이라고 여겨진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추종했다. 그 결과 기간산업이 국유화되었고 공기업은 적자 경영을 하면서 뻔뻔스레 정부에 손을 내밀었고 정부는 적자 재정을 편성하여 위기를 넘기곤 했다. 1970년대 중반 인플레는 20%를 넘어섰고 최고 세율은 80%에 육박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일자리도, 일하려는 의욕도 생겨날 수 없었다. 대처는 공기업을 민영화하여 살아남을 수 있게 수익을 내라고 요구했다. 대처는 동시에 복지국가의 품에 안겨 나태하고 무책임해진 국민에게는 두 발로 일어서서 자신의 삶을 책임지라고 꾸짖었다. 투표에 생명을 거는 정치가라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필자가 아는 어떤 영국인은 '용감했다'는 한마디로 대처를 정의했다.
그러나 영국병은 빠르게 고쳐지지 않았다. 경제가 회복되기 전에 실업자 수는 300만을 넘었고 민심은 흉흉해졌다. 제발 정책을 바꾸자는 각료들에게 대처는 일갈했다. "돌아가고 싶으면 당신들이나 돌아가시오. 나는 돌아가는 짓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대처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는 '소통'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그는 국민에게 강력한 추진력과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자기를 따르게 만들었다. 영국병을 치유함으로써 대처는 절망에 빠져있던 국민에게 그들의 조국이 다시 위대해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통 큰 여자 대처는 독일 통일을 통 크게 받아들였고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소련과 공산주의 붕괴도 이끌어냈다. 대처는 공산주의란 인간 본성에 맞지 않기 때문에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매우 단순한 진리를 매우 단순하게 믿었다. 대처는 동시에 자본주의에 품위를 부여하고자 했다. 돈 버는 일이 어쩐지 옳지 못하다는 정서를 던져버리고 열심히 일하고 벌어 '너 자신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그 돈을 쓰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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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 수상과 조용한 남편 데니스 대처. "그 없인 지금의 나도 없다"
- ▲ 대처 수상과 조용한 남편 데니스 대처. "그 없인 지금의 나도 없다"
대처는 갔지만 '대처주의'를 남겼다. 그 핵심에는 '자신의 삶에 책임지는 독립적 개인'이라는 개념이 있다. 복지국가의 그림자가 점차 비대해지고 내 불행을 남 탓으로 돌려 위안을 찾으려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는 요즘의 우리 사회가 필히 기억해야 할 가르침이다. 많은 영국인에게 대처는 다시 태어난 엘리자베스 1세와 같은 존재였다. 대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를 존경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도 언젠가 그런 지도자가 찾아올 날을 기대하며 '철의 여인'의 명복을 빈다.
<박지향 /서울대 교수·영국사 '대처 스타일' 저자>
(조선일보 2013.4.10 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