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대형마트 판매제한 품목 선정 발표 농어민, 중소 유통업체 반발 거세자..“확정된 것 없다” 해명
  • ▲ 이대영 우농영농조합 대표(가운데) 등 '유통악법 철폐 농어민·중소기업·영세임대상인 생존대책투쟁위원회' 대표들이 14일 서울시청에서 서울시의 대형유통업체 51개 품목 판매제한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대영 우농영농조합 대표(가운데) 등 '유통악법 철폐 농어민·중소기업·영세임대상인 생존대책투쟁위원회' 대표들이 14일 서울시청에서 서울시의 대형유통업체 51개 품목 판매제한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형마트 판매 제한 품목 선정은) 시가 용역을 맡긴 학회에서 나왔던 얘기인데 마치 결정을 다한 것처럼 비춰져 혼란이 있었다.

    품목 선정이나 실제 적용 방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 박원순 서울시장, 1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두부와 계란, 콩나물 등 51개 상품을 대형마트 판매제한 품목으로 선정, 발표했던 서울시가 황급히 발을 빼고 있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운 시의 정책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여론은 시가 기대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대형마트에 상품을 공급하는 농어민과 중소 유통업체들의 반발은 거셌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대형마트 판매를 제한한다고 해서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릴 것이란 발상 자체가 문제라는 쓴소리도 쏟아졌다.

    농어민과 영세한 유통업체를 죽여 전통시장만 살리면 그만이냐는 신랄한 비판도 이어졌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결국 박원순 시장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박 시장은 14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물의를 빚고 있는 대형마트 판매제한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박 시장의 발언을 정리하면 시가 발표한 판매제한 품목 선정은 아이디어 일 뿐,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 시장은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겠다고 강조했다.

    대형마트와 SSM에서 판매조정 가능한 물품은 서울시가 용역을 맡긴 한국중소기업학회에서 나왔던 얘기.
    마치 시가 결정을 다한 것처럼 비춰져 혼란이 있었다.
    전문가 간담회나 공청회 등 의견수렴을 거쳐 정하겠다는 것이 시의 입장.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곁들였다.

    모든 것은 논의에 부칠 생각이고,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을 것.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얘기를 충분히 듣겠다는 것이 원칙이고,
    전통시장과 영세상인도 살리고 소비자나 납품업체도 큰 불편이 없도록 절충점을 찾을 것.


    서울시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판매제한 품목 선정은 용역의 결과일 뿐,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판매 제한 품목 수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소비자와 납품업체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상생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뜻도 나타냈다.

    이날 박 시장과 서울시의 해명을 종합하면, 8일 있었던 대형마트 판매제한 품목 선정 소식은 사실과 다르다.

    그리고 거의 모든 언론은 사실이 아닌데도 ‘오보’를 내 소비자를 혼란에 빠트렸다.

    그런데 이날 박 시장과 시의 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

    시는 8일 <서울시, 대형마트 판매조정 가능품목 담배 등 51개 선정>이란 제하의 보도자료를 냈다.

    당시 시가 제공한 자료를 보면 ‘용역이 완료됐고’, ‘4월 초에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 뒤, ‘향후 방향을 모색’하겠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는 해명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시의 해명을 100% 받아들인다고 해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시는 당시 자료를 통해 판매제한 품목을 선정하면서, [충분한 의견수렴과 조사]를 선행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헌조사 ▲사례조사는 물론 ▲이해관계자 면담조사 ▲상인 및 소비자 설문조사 ▲소비자 좌담회 ▲소비자 검증조사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시는 [중소상인] 등에 대한 ▲[심층면접] 결과, 대체로 판매조정 적합품목에 농축수산물과 식품이 가장 많이 거론됐다고 설명했다.

    시는 중소상인 외에도 대형유통업체, 관련협회 및 기관, 전문가 및 컨설턴트 등을 상대로 심층면접을, 소비자에 대해서는 ▲집단인터뷰를 실시해 품목의 적합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고 말했다.

    시의 말대로 이처럼 정밀한 의견수렴 과정이 있었다면, 현재 이어지고 있는 농어민과 중소 유통업체의 반발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생계가 걸린 계란의 판로가 막혔다며 시청을 찾은 양계 농민의 절박함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시의 말대로 철저한 의견수렴이 이뤄졌다면, 이들의 반발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들이 근거 없는 생떼를 쓰거나 몽니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확정된 것이 아닌데 그렇게 비춰져 혼란이 있다”는 박 시장의 해명과, 대형마트에 콩나물과 계란을 납품하는 이들의 주장 중 어느 한 쪽은 [거짓]이다. 

    누구의 말이 [진실]이고 어느 쪽이 옹색한 [변명]을 하고 있는 지는 시민들이 판단할 몫이다.

    적어도 시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앞뒤가 맞지 않는] 연구용역 과정에서의 [철저한 의견수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내놔야 한다.

    시가 밝힌 각종 조사와 설문조사, 소비자좌담회와 심층면접, 인터뷰 등이 누구를 상대로 어떻게 이뤄졌는지도 밝혀야 한다.

    시민들이 납득할 만한 해명이 나오지 않는다면, 앞으로 시가 내놓는 각종 정책과 자료에 대한 신뢰도는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날 서울시청에는 농어민과 유통업체 대표들이 무리를 지어 나타났다.
    이들은 시장실을 찾아가 박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다가 돌아섰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이런 말을 남겼다.

    서울시는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의 한쪽(농어민, 중소 유통상인)을 죽여 다른 한쪽(전통시장)을 살리려는 하책(下策)으로 경제민주화의 정의를 호도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