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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 내정자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심’으로 통한다.
그는 정치권의 예상대로 대선이 끝난 뒤 당선인 비서실 정무팀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청와대 정무수석에 기용됐다.박 당선인과의 인연은 2004년 17대 총선부터 시작됐다.
당시 당 대표였던 박 당선인은 광주에 출마한 이 내정자에게 전화를 걸어 “어려운 곳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고 격려했다. 총선이 끝난 뒤에도 오찬 자리를 마련했다.이 내정자는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의 호남 전략을 포기해 달라”고 열변을 토했다고 한다.
박 당선인은 “어쩌면 그렇게 말씀을 잘하세요”라고 한 뒤 그를 당 수석부대변인 자리에 앉혔다.이 내정자는 박 당선인이 2007년 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뒤 당시 이명박 후보 및 김문수 경기도 지사 측으로부터 각각 선대위 고문직과 경기도 정무부지사직을 제안 받았으나 이를 모두 고사했다.
박 당선인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정현 내정자는 박 당선인이 저서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밝힌 ‘빛나는 이들’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고마운 사람은 나에게 물 한 잔 더 준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시류에 따라 오락가락 하지 않으며 진실한 태도로 일관된 사람들, 진정 빛나는 이들이었다”
- 박근혜 당선인 저서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중이후, 이 내정자는 제 18대 국회에서 박근혜 당선인 몫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다.
당내 친이계와 친박계 간의 계파대립이 가중될 때는 박 당선인의 ‘대변인격’으로 뛰었다.
공식 직함이 없던 박 당선인이 대변인을 둘 수는 없어, 옛 대변인이었던 그의 입을 통해 전달됐다. 박 당선인의 의중과 행보는 그를 통해 외부로 전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박심(朴心) 은 이정현에게 물어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이 내정자는 전 매체를 홀로 상대해 하루에 200통가량의 전화를 받기 위해 휴대전화 배터리를 12개씩 가지고 다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8대 국회에서는 국회 예결위원으로 호남 예산을 도맡았고, 주말에는 광주로 내려가 지역구를 다졌다.
19대 국회를 앞두곤 호남에서 새누리당의 첫 지역구 의원 탄생을 기대했으나 광주 서구을에서 40% 득표를 얻으며 지역구도의 ‘견고한 벽’을 마주해야 했다. 95년 광주 시의원 출마, 17대 총선에 이은 세 번째 낙방이었다.
이후 새누리당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당 지도부에 입성한 뒤 같은 해 9월 박 당선인의 대선캠프 공보단장을 맡았다.
박 당선인 측과 언론간 가교역할을 자임했을 뿐만 아니라 야당의 각종 공세에 대한 대응에 앞장섰다. 박 당선인의 승리를 이끈 공신으로 꼽히면서 정무팀장에 기용됐고 결국 새 정부의 '실세'로 자리했다.
이 내정자는 전남 곡성 출신에 동국대를 졸업,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도 "나는 늘 비주류의 삶을 살아왔다"고 말해왔다.'부자정당'이라는 비판을 받는 새누리당에서 손꼽히는 호남 출신이자 서민출신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부인 김민경씨와 사이에는 1남1녀를 두고 있다.
▲전남 곡성(55)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한나라당 수석부대변인 ▲18대 국회의원 ▲국회 예결ㆍ문방ㆍ법사위원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 ▲새누리당 최고위원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공보단장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공보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