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벗어 던진 북한핵·미사일의 정체는?
  • 1993년의 북한핵위기를 미-북간 양자교섭으로 타협을 만들어낸 “ 94‘제네바합의” 이후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최근 북한의 행동을 보면 그동안 우리가 염원해온 한반도의 비핵화는 일장춘몽(一場春夢) 에 불과 했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는대신  한반도 에너지협력기구(KEDO)가 45억불이나 소요되는 2기의 경수로를 북한에 건설해 준다는 미-북간 양자합의가 2002년 건설의 마지막 단계에서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HEU]푸로잭트가 발각됨으로서 무효화 되었다.

    이로서 콘소시엄의 멤버였던   한-미-일-EU의 막대한 재정손실이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배상을 받기는 커녕 북한측은 KEDO에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2003년 부터는 중국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6자회담이 시작되고, 2008년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총론에 대한 합의는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북한이 2009년에 2차 핵실험을 감행한 이후 이 6자회담도 휴면상태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일성은 1993년 평양을 방문한 지미카터 전 대통령에게 북한은 원자력에너지를 필요로 할뿐 핵무기를 만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만일 미국이 경수로를 지어 준다면 북한의 모든 핵활동을 동결하겠다고 하였다.
    미-북간 제네바합의(Agreed Framework)는 김일성의 언급을 일단 신뢰하는 기초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수 있다. 

    대를 이은 김정일은  두차례에 걸친 핵 실험을 하면서도, 한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임을 강조하는등 모호한 언행으로  6자회담 관련국들의 전략적 판단을 어렵게하고 당사국들간의 이간을 꾀하는 기만전술로 일관했다.

    그런데 그 후계자 김정은은 최근에 이르러 지난 20여년간 김일성-김정일 부자세습정권이 전세계를 상대로 벌여왔던 기만전술의 탈을 벗어버렸다.
    북한은 그들이 이미 핵국가가 되었다는 전제하에 6자회담에는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고 1992년에  남.북간에 합의되었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폐기를 공언하였다.
    나아가 그들이 개발한 핵무기와 미사일이 미국과 한국을 향한것임을  숨기지 않았다.


    관련국들이 자초(自招)한 위기(危機)


    북한핵을 둘러싼 그동안의 양자 또는 다자교섭의 경위와 과정을 되돌아 보면, 오늘의 사태는 한국을 포함한 관련 당사국 특히 미국의 전략(戰略)과 원칙(原則)의 부재가 초래한 필연적(必然的)인 귀결(歸結)이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첫째로,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통해서만 생존을 유지할수 있는 체재이고, 따라서 어떤 보상으로도 이를 포기시키는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외교교섭을 통한 핵개발저지는 불가능한 것이었는데도,  미국이 서투른 판단을 한 것이다.


    둘째로,
     원래 북핵문제는 북한이 가입하고 있던 국제원자력협력협정에 따라 북한이 당연히 의무적으로  IAEA에 신고 하여야하는 핵물질을 신고하지 않음으로서 문제가 되었다.  

    그러므로  북한의 의무불이행에 대하여 IAEA 나 국제연합 안보리에서 제재를 받야야하는 사안인데, 카터의 돌연한 방북으로 김일성과 합의가 이루어 짐으로써 이러한 법절차가 무시되고 국제법상의 의무를 위반한 북한에 대하여 오히려 경수로를 건설해주는 [보상]을 해 준것이었다.

    이것은  처음부터 정의의 원칙에 어긋나며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 흥정이었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국제적인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사례를 미국이 보여준 것이었으니,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지키지 않게 된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셋째로,
    제네바합의는 미국이 북한의 [벼랑끝 전술](Brinkmanship Tactics)에 굴복한 부끄러운 타결이었다. 

    북한의 의무불이행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능성이 언론에 부각되자 북한은 즉각 이에 반발하면서 “제재는 곧 선전포고로 간주 할것”이라고 대응하였다.

    “당시 페리 국방장관을 위시한 미정부 군수뇌부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여 북핵기지였던 영변에 대한 선제공격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는데,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최종 보고서에는 만일 선제공격으로 남-북한간에 전면전으로 확대 될 경우 한국군 사상자 100만명, 미군 사상자 5만명, 전비 600억 ~1,000억불이 소요될 것임도 포함되어 있었다.”
        -Don Oberdorfer의 <The Two Koreas> 인용

    카터가 평양에서 백악관으로 건 국제전화 한통으로 클린턴 대통령은 군사공격에서 외교절충으로 생각을 바꾸었고, 국제적인 무법자에게 보상을 주는 수치스러운 교섭을 명하였던 것이다.


    넷째, 한국의 경우는 어떠 했는가?

    김영삼  대통령은 1993 취임식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수는 없고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줄수 없다”는 등 대북정세인식에 있어  문제점을 노정하였다.
    외교 통일 국방등   주요부처의 장관들도 북한체재의 실상에 대하여 안일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은  그당시 유행했넌 이른바 [당근과 채찍론]에서 유추해 볼수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햇볕]이라는 명분으로 정상회담까지 뇌물로 거래하면서 북한이 요구하면 무조건 퍼주는 일에 몰두했다.
    노무현정부에 이르러서는 미사일을 쏘든 핵실험을 하든 대통령이 나서서 오히려 북의 입장을 두둔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장관이나 6자회담 대표가 무슨 말을 하든 북한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었겠는가?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천안함폭침과 연평도포격을 했는데도, 비공식 채널을 통해서 김정일과의 만남을 성사시켜 보려고 했다니 ...

    “한국도 우리를 두려워 하고 있구나, 좀더 쎄게 다구치면 안될게 있겠는가?” 

    아마도 김정은은 그런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 출범으로 문제해결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됐다.

    박근혜 당선인은 일상의 대화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잘 다듬어지고 품위있는 어휘만을 사용한다. 
    대북정책에 관한 [신뢰 프로세스]라던가 북한을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나올 수 있도록” 등등은 정책의 유연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최근의 북한의 경거망동(輕擧妄動)과 관련한 “북핵 절대불용(絶代不容)”은 그의 일관된 원칙이며 타협의 여지가 없는 단호함이 배어있다.  

    당선인의 단호한 입장에 보조를 맞추기라도 하는듯, 유엔안보리가 대북 제제결의안 2087을 채택한데 이어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북한비판에 가세하였고, 미국은 만일 북한이 3차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중대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 하고 나섰다. 
    일본도 러시아도 북한을 비난하는 대열에 합류 하였는데,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북한에 질질 끌려다니던 교섭방법으로는 더 이상 문제해결의 가능성이 없겠다는 공통적인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첫째,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더 이상 끌려 다녀서는 안된다. 
    핵무장을하여 한국과 미국등 국제사회를 협박함으로 얻어드리는 이득으로 생존전략을 삼겠다면, 이것은 근본적으로 악한 집단이다.
    일찍이 부시 대통령이 정확하게 표현한 [악의 축](The Axis of Evil)이며 응징의 대상이 될뿐이다.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때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일기에 적어 두었던 한마디.

    “미친개 한테는 몽둥이가 필요하다.”

    이것이 가장 확실한 해답이다.


    둘째, 북한의 도발 행위에 대하여 [보상]을 주는 행동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  

    순수한 인도적 지원도 중단하여야한다. 
    왜냐하면, 북한은 상대가 겁먹고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정어린 사과와 반성이 있을때에만 지원을 재개한다.


    셋째, 북한이 핵을 포기 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지 말아야한다.
    1인절대왕조체제가 바뀌지 않는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이 언젠가는 핵공격을 해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 하여야한다.
    일본은 북한의 노동 미사일에의한 핵공격에 대비하여 2007년부터 미국과 함께 [미사일방어체제](Ballistic Missile Defence)를 구축하고 2012년 실전 배치를 완료하였다.

    우리도 시급히 대비책을 강구해야 하는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넷째, 북한의 협박대상은 일차적으로 한국임을 명심 하여야 한다. 

    종북세력들이 툭하면 북한이 동족에게 설마 핵무기를 쓰겠느냐고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무력화 시키는 허무맹랑한 궤변이다. 
    남한의 모든지역이 이미 북한 노동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있는데,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험이 성공했느니 실패했느니 하는 것을 화제로 삼고 있을정도로 우리가 한가(閑暇)한가 ?


    결 어(結 語)


    북한은 3차핵실험 감행을 예고 하였고, 미국은 그 경우 중대조치를 경고 하였다. 
    그동안 수도 없이 반복되어 온 [벼랑끝 전술]에 의한 치킨 게임(Chicken Game)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중국도 러시아도 안보리제제결의안에 동참한 상황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는 것은 그리 쉽지는 않은 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북한이 핵실험 이야기는 아예 없었던 것으로 유야무야 지나갈 것 같지도 않다.  
    북한도 이번만은 그럴듯한 명분이 있다면, 국제사회와의 정면충돌만은 피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럴듯한 명분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의 박근혜 정부로 부터의 호의적인 멧시지가 아닐까? 
    박 당선인의 그동안의 언급을 보면 북한에게 호감을 주는 부분도 있지만, [북핵불용]이라는 고집스러움이 엿보이기도 한다. 

    북한은 아마도 그 고집스러움의 강도가 어느정도 인지 핵실험이라는 강수로 테스트 해보려고 할 것이다. 
    1993년 북핵위기가 정점에 달했을 때, 미국의 군사공격설이 유포되고 남-북간 차관급 회담중 북한대표가 “서울이 불바다가 되면 살아남을수 있겠는가” 등의 무례한 언동을 한 일이 있었다. 
    서울시민들이 불안해 하고 라면 등 식료품의 사재기 움직임이 확산되자, 김영삼 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서는 절대 안된다고 읍소(泣訴)했다는 이야기는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박당선인은 커다란 시험대 위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핵실험 공갈 한마디에 움추려 들지도 모른다고 김정은이 판단했다면, 이보다 더 큰 오판은 없을 것이다.

    박 당선인이 평소에 가져왔던 소신과 원칙을 두려움 없이 관철시켜 나갈 때에, 북핵문제를 풀어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착되어 나갈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