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글쟁이 맞나? 하지도 않은 말을 가지고 어거지 비난하고...

  • 장정일의 잔혹한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 장정일은 국어 공부를 더 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대로, 김지하를 까는 것은 좋다.
    어차피 꼴리는 대로 사는 게 인생이어야 하니까.

    그러나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깐다?
    그것도 말과 글을 업으로 삼는다는 사람이?
    장정일, 글쟁이, 맞나? 


  •  
  • 장정일은 2013년 1월 11일에 <한겨레>에 한편의 글을 썼다.
    이를 이어 받아 다음날 <미디어오늘>은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장 소설가는 "지겹다. 지난 4일 김지하는 민청학련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행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돈이 없어서 두 아들을 대학에도 보내지 못했다고 푸념했다"고 운을 띄웠다.

    그러면서 장 소설가는 "장남은 모 예술전문대학교를 일찌감치 졸업했으며, 2003년에 출간된 그의 회고록 (학고재)에는 영국 런던의 명문 미술 학교에 재학중인 차남에 대한 자랑이 번히 나와 있다"고 썼다.

    한마디로 김지하 시인이 자신의 망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장 소설가는 "글쟁이들은 돈이 없으면 출판사를 방문해 목돈이나 급전을 마련한다"면서 "김지하 같이 ‘특에이(A)급’ 필자는 ‘글빚’을 지기로만 하면, 순식간에 자식들의 학비를 마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하 시인이 "나는 돈이 없어서 두 아들을 대학에도 보내지 못 했다고 푸념했다"라고?
    장정일은 한글도 못 읽나?

    김지하 시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두 아들이 대학도 못 갔어요.
    돈도 한 푼도 없고, 공부도 못하고.
    이제 공부 시켜야지."

    [두 아들이 대학도 못 갔다]는 말 다음에 한 5초 지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돈도 한 푼도 없고, 공부도 못 하고.
    이제 공부 시켜야지].
    "

    이 둘은 완전히 떨어진 별개의 문장이다. 
    2011년 김영주 관장(김지하 시인의 부인)의 인터뷰에 자세한 이야기가 나온다.


    [박경리의 딸, 김지하의 아내....김영주 토지문화관 관장]
       -<조선일보> 2011년 2월 28일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2/27/2011022701043.html




  • ***** 두 아들은 왜 대학에 가지 못 했나 *****


    김지하 시인은 출감 후에 운동권 및 지인들로부터 엄청난 협박과 압박을 받았다.

    부인 김영주 여사가 세 번 암살 당할 뻔 했고...

    지인 K, L 이  70년대 후반에 김시인에게 온 국제성금을 가로채서 떼부자가 된 다음에, 오히려 김시인을 죽을 자리로 내몰려고 발악을 했다.

    고 김옥길 전 이대총장이, 김시인을 문경새재 이대 연수원으로 불렀다.

    "자네...부인을 데리고 시골로 떠나게.
    자네나 부인이나, 이러다 다 죽는 수가 있어.
    떠나게..."

    김시인은 그날 밤 문경새재 이대 연수원의 작은 방에서 잤다.

    꿈인가, 생신가....신선봉에서 큰 귀신 둘이 내려와서 한 놈은 김시인의 두 팔목을 잡고, 다른 한 놈은 김시인의 두 발목을 잡고 잡아 당겨 김시인을 산 채로 찢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악악~~~

    김시인은 가위에 몸부림치다 일어났다.
    그리고 딱 열 글자를 써서 김옥길 총장 앞으로 남겼다.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그길로 수안보까지 걸었다.
    그리고 되는 대로 버스를 잡아타고 내린 곳이 해남....공동묘지 터 앞의 허름한 집.

    거기서 부인에게 전화했다.

    "내려 오소.
    애들 데리고 오소."

    공동묘지 터 앞 허름한 집에서 네 식구가 오손도손 모였다.

    그러나...며칠 지나지 않아..그 지악스런 [남노당 출신의, 원주 바닥 빨갱이 할배들]이 처들어 왔다.
    하루 종일 협박하고..을르고...달래고...협박하고...을르고 ...달래고...

    그들이 돌아간 다음...김시인이 발작했다.

    그 날 밤부터 김 시인은 본격적 정신분열 발작을 일으켰다.
    너무 무서워서 ....두 꼬맹이 아들들은 ....마당 한 구석에서 벌벌 떨며 밤새 오들오들 떨고....

    이때부터 김시인은 무려 열두번에 걸쳐, (현대의학 용어로는) [정신분열]로 입원했다.

    뱀발:
    장정일은 김시인이 무슨 정신질환으로 진단되었는지도 모른 채  "우울증과 알콜중독"이라고, 정말 겁대가리 없이, 지 멋대로 진단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명예훼손이다.
    장정일씨,...준비되어 계신감??

    이 지독한  고통 한 가운데에서 ...

    1991년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대성일갈을 지르기도 했다.
    정신병에 시달리면서도 이런 글을 쓰다니, 얼마나 강한 정신인가!

    아버지가 노상 발작했기 때문에 두 아들은 제대로 공부하지 못 했다.
    그래서 대학을 가지 못 했다.
    두 아들 역시...심신을 크게 다쳤었다.
    2011년 김영주 관장 인터뷰에 다 나온다.


    ***** [돈도 한 푼 없고]라는 말의 뜻 *****


    김시인은 돈이 없다.
    김시인은 평생 돈을 번 적이 없다.
    국제성금은 위에서 말한 악질 K, L 이 모두 네다바이 했다. 

    김시인의 부인, 김관장은 약간 쯤 있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고 박경리 선생님이 남기셨던 인세다.

    그러나 김관장은.....[토지문화관]을 짓고 지금까지 운영하면서 ....
    또한 지금까지 곶감 빼먹듯 조금씩 생활비로  쓰면서..재산이라 할 만한 규모가 못된다고 나는 추정한다.


    *** [공부도 못 했고..이제 공부시켜야지]라는 말의 뜻 ***


    장정일은 이렇게 말한다. 

    "장남은 모 예술전문대학교를 일찌감치 졸업했으며, 2003년에 출간된 그의 회고록 (학고재)에는 영국 런던의 명문 미술 학교에 재학중인 차남에 대한 자랑이 번히 나와 있다"고 썼다. 한마디로 김지하 시인이 자신의 망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앞서 말했듯....두 아들은 아버지의 정신발작, 어머니의 피살위협 속에서 ...심신이 망가진 채 자랐다.

    다행히, 김시인의 두 아들은 최근 들어 심신이 엄청 회복되어 나날이 강해지는 중이다.

    솔직히 말하자. 
    두 아들 모두, 한국이든 외국이든, 제대로 된 4년제 학부 대학을 나온 바 없다.
    큰 아들은 [학원]을 나왔을 뿐이다. (학벌은 없지만, 큰 아들의 예민한 감수성에 대해...김시인은 엄청 뿌듯하게 생각한다.)

    둘째는 큰 아들보다 더 공부를 하지 않았다.

    김시인은 이제 언뜻 언뜻 인생의 종점을 느낀다.
    김시인의 부인, 김관장 마찬가지이다.

    심신이 약한 두 아들을 이승에 두고 떠날 준비를 차근차근 하는 분들이다.

    당근 늦게나마 외국 유학도 보내고 싶고, 인생 살이에 도움이 될 작은 기반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다.

    이게 김시인 부부의 소망이다.


    ***** [7년 독방]이 거짓말이라고? *****


    장정일은 이렇게 썼다.

    그는 여행기인 중 "나는 7년 동안 독방에 있었다"는 대목에 대해서도 "허풍을 떨고 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그는 "내리 7년 동안 독방에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저 말도 사실이 아니다. 그는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로 4개월, 1970년 ‘오적’ 사건으로 100일, 1975년 민청사건으로 1년간의 영어 생활을 하다가, 같은 해에 재수감되어 5년 9개월을 보냈다. 그가 있었던 독방이 면회나 운동이 허용되지 않는 ‘먹방’이라면 모를까, 1인용 독방은 거물에게만 주어지는 대접"이라고 지적했다.


    100일= 3 개월이다.(오적)
    1년. (민청학련)
    5년 9개월. (재수감)
    합 7년, 

    맞다. 

    앞의 것을 빼더라도 민청학련과 재수감을 더하면 6년 9개월, 얼추 7년이다.

    장정일은 어리고, 당시에 무식해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김시인은 민청학련에 걸렸다 잠시 석방됐다가 다시 잡혀 들어갔다.

    장정일의 생무식은 [1인용 독방은 거물에게만 주어지는 대접...(김지하는 당시에 거물이 아니었다)]라는 취지의 말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말 개무식한 소리다.

    70년대에 김지하를 [밤의 대통령]이라 불렀다.

    1979년 부마 직후 박정희와 차지철이 만든 [1천명 처형자 명단]의 첫번째가 김지하였다.

    장정일씨, 역사에 대해 무식하면 그냥 입 다물고 있어라.


  • 김지하가 백낙청을 [깡통, 쑥부쟁이]라고 쥐어패도 백낙청이 입 한 번 제대로 벙긋하지 못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나?

    애초, 급이 달랐기 때문이다.

    고은을 가져다 대면?

    고은 역시 급수가 한 참 처진다.
    일제 시대 신파조로 시를 낭독하면서...[이것이 조선의 시 낭독법]이라고 이른바 [개구라]를 푸는 고은 같은 생무식, 생깡통은 그냥 찌그러질 수 밖에 없다. 


    ***** 장정일에게 말한다 *****


    장정일, 당신이 문학적, 사상적 차원에서 김지하 시인과 입장이 달라서 이야기한다면..
    당신이 무슨 입장을 취하든...
    [상대방]으로서 인정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오늘 당신이 쓴 글은 ...

    사상적인 글이 아니라

    한 인간을 [인격적 차원]에서 중상모략하는 글이다.
    당신은 법률적 책임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의 속내와 사연을 모르면서 지 멋대로 짐작한 것이 사실이라 착각하고, 자만하고...
    한없이 잔인하게 짓뭉갤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신의잔혹하고,  황폐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마.
    지옥에라도 갈 자격이 생기기를 빌면서...기도하마.  



  • 박성현 저술가/뉴데일리 논설위원.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지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이메일 : bangmo@gmail.com
    페이스북 : www.facebook.com/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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