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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합니다” 크게 빛날 배우 김태환(太奐)
무명(無名)의 배우가 있다. 1998년 이정재와 정우성이 출연해 흥행했던 영화 ‘태양은 없다’에서 조연으로 데뷔했지만 아직까지 단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배우, 김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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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태양은 없다'의 한 장면. 오른쪽 체크 셔츠를 입은 김태환. 왼쪽부터 이정재와 정우성.
김태환은 지금까지 20 여 편의 영화에 조·단역으로 출연했다. 그리고 최근에 개봉한 영화 ‘비정한 도시’에서는 주연을 맡았다. 하지만 37살에 간신히 따낸 주연. 영화의 성적은 저조하기만 했다.
“차라리 주연을 안 하는 게 더 좋을 거 같다. 그간 조연과 단역으로 출연한 영화는 모두 흥행했다.(웃음) 사실 아직 주연을 할 인지도는 아니다. 이번 ‘비정한 도시’는 김문흠 감독과 대학시절부터 친한 선후배사이여서 시나리오 작업부터 투자자 섭외까지 같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운 좋게 주연이 된 것. 막상 주연이 되니 욕심이 앞서더라. 잘 됐으면 했지만 연기한 배우가 봐도 기획단계에서 만들려고 했던 작품과 조금 다르게 나왔다.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많이 반성하고 있다.”
자신이 연기했던 작품에 대해서 과감하게 비판하는 모습. 주연에 대한 욕심, 조급한 마음. 이번 작품을 통해서 많은 반성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배우. 그간 김태환이 선택했던 영화는 진짜 대부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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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의 한 장면. 가운데 꽃무늬 셔츠를 입은 김태환. 오른쪽부터 이종혁과 유해진.
1998년 ‘태양은 없다’,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 2001년 ‘신라의 달밤’, 2002년 ‘공공의 적’, 2005년 ‘공공의 적2’, ‘가문의 위기- 가문의 영광2’, ‘투사부일체’, 2006년 ‘가문의 부활-가문의 영광3’, 2010년 ‘포화 속으로’까지 김태환이 시나리오를 읽고 선택했던 작품들 중 실패한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제가 주연도 아니고 성공한 영화에 제가 공헌한 것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제목을 들었을 때 될 거 같다고 생각했던 영화중에 실패한 영화는 거의 없다.”
김태환, 무명은 무명이다
배우 김태환을 만난 건 영화 ‘비정한 도시’ 제작발표회 때다. 안길강, 이기영, 조성하, 김석훈, 서영희 등 유명배우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많은 분량을 연기한 김태환이 궁금했다.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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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공공의 적'에서 과일장수로 나온 김태환. 상대 배우는 설경구.
인터뷰를 신청하기 전 먼저 포털사이트를 검색했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거의 無존재에 가까웠다. 영화 바닥에서 10년 이상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지만 정보는 턱 없이 부족했다.
인물검색을 했더니 개그맨 김태환, 축구선수 김태환, 정치인 김태환 농구 감독 김태환 수도 없이 김태환이 나왔지만 배우 김태환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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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김태환.ⓒ윤희성
내달 개봉 예정인 ‘가문의 영광5-가문의 귀환’에서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아 바쁘게 촬영 중인 배우 김태환을 지난 2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태환은 뉴규?
“초등학교 때부터 완전 까불이였다. 중학교 때는 얼마나 웃겼는지 선생님께서 개그맨이 되라고 말씀하셨을 정도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면서 학교 내에서 가장 웃기고 말 잘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축제 MC를 비롯해 많은 자리에서 사회를 도맡아 봤다. 친구들이 왜 그렇게 험악한 역할만 하냐고 많이 묻는다. 평소의 이미지는 그냥 개구쟁이다.”
김태환은 백제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를 졸업하고 상명대학교 영화과에 편입해 연기를 전공했다. 그리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공연영상학 석사를 마쳤다. 현재는 촬영이 없을 때 시간강사로 대학 강단에 서기도 하고 연기 학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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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포화 속으로'의 한 장면. 차승원의 부하로 등장했던 김태환.
김태환이 영화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해병대에 복무하던 때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아이들 앞에서 장기자랑을 하면서 개그맨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그는 고등학교에서 연극반을 경험하고 자신의 길을 정한다. 대학을 방송연예과로 결정한 것.
당시 2년제 대학이던 백제예술대학 1학년을 마치고 해병대에 입대한 김태환은 MBC ‘우정의 무대’에 출연하기 위해 부대원들과 함께 연극을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극을 만든다는 것이 즐겁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고 제대 후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 하에 학교에 복학하면서 동시에 영화 제작사에 오디션을 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만난 그의 첫 작품이 1998년 ‘태양은 없다’. 첫 작품에서 조연으로 활약하며 인기를 얻었고 다음해 ‘주유소습격사건’에 출연해 현재 유명한 배우 유해진과 이종혁과 함께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단역과 조연을 넘나들며 섭외가 들어왔지만 교통사고를 당해 2년간 휴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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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가문의 영광' 시리즈에 등장한 김태환.
겁 없던 젊은 배우에게 닥친 첫 번째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2년간 휴식했지만 2001년 ‘신라의 달밤’으로 다시 영화계에 복귀했고 2002년 ‘공공의 적’에서 설경구와 함께 호흡하는 영광을 누리며 조연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다.
하지만 김태환은 또 다시 교통사고를 당한다. 당시 29살. 한참 일해야 하는 배우에게 또 다시 2년간의 공백이 생겼다. 몸도 다쳤지만 자리를 잡아서 뭔가 하려는 순간에 번번이 닥치는 불운이 견디기 힘들었다.
“무대에 서야 된다. 촬영 현장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재활에 매진했고 힘들었던 상황도 극복 할 수 있었다. 무대에 섰을 때 그 기분. 영화를 본 관객들이 비록 짧게 나오지만 제 연기를 통해서 웃고 울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힘든 시기를 견뎠다.”
그의 복귀 작품은 2004년 영화 ‘귀신이 산다’였다. 역할은 귀신3역. 단역도 아닌 엑스트라 수준이었지만 김태환은 현장에 복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2005년부터 ‘공공의 적2’를 시작으로 ‘가문의 영광’ 시리즈로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다.
실패의 아이콘? 김태환, “행복한 배우입니다”
“그냥 좋다. 제가 하는 몸짓에 연기에 반응하는 사람이 1명이라도 있다면 영화, 드라마, 연극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영화에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서 영화를 고집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연극에서 느꼈던 희열을 다시금 느끼고 싶어 작품을 물색하고 있다.”
자리를 잡을 때마다 닥쳐온 2번의 교통사고와 아직도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 37살의 무명 배우 김태환. 뚜렷하게 성공하지도 않았고 시련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매일 아침 긍정적인 태도로 하루를 맞이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라틴어가 나온다. 우리는 이 말을 ‘현재를 잡아라’로 번역하지만 라틴어에 가깝게 해석하면 ‘하루를 수확하라’는 말에 더 가깝다. 우리가 하루 중 수확하지 않은 기쁨, 설렘, 기대감 등의 감정들은 모두 사라진다. 우울, 불안함, 조급함을 수확하는 것도 바로 우리들의 선택이다. 매일 아침 하루를 선물 받은 우리가 긍정적인 감정들을 수확하러 다녀야 하는 것은 우리 삶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