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창중 칼럼세상> 

     뻐꾸기의 야심(野心)

     

  • 어구구, 저 정도 수준에~! 저 정도 수준을 갖고 뭐 대통령? 어제 오후 3시, 안철수의 대선 출마 선언을 TV로 지켜보면서 입에서 튀어 나오는 이 말, 참기 어려웠다. 

    솔직히 말해, 정치부기자 생활 30년을 하면서 내로라하는 정치인의 연설은 거의 들었지만, 저 정도 밖에 안 되는 콘텐츠와 연설 실력을 갖고 이 나라 대통령이 되겠다? 저 정도로 어눌한 언변을 갖고 소통(疏通)하는 대통령 되겠다?  

    김대중 대통령을 떠올렸다. 내가 DJ를 처음 본 건 1985년 2월8일, 미국 망명생활을 마치고 그해 2·12 총선을 4일 앞두고 김포공항으로 귀국하는 DJ. 

    그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안기부 요원들은 그를 낚아채듯 엘리베이터로 밀어 넣어 기다리고 있던 국내외신 기자들과의 접근을 봉쇄해 버렸다. 그걸 눈으로 지켜봤다. 

    그 때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커버스토리로 ‘Storming Return', 폭풍같이 거친 귀국이라고 쓴 걸 보고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구나 하고 감탄한 기억이 난다. 

    며칠 뒤 자신의 지지 조직인 민주헌정연구회, 종로 낙원상가에 있는 사무실에 나타나 쉴 사이 없이 제스쳐를 취하면서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는 DJ, 그를 취재하던 난 그의 연설에 완전히 ’감전‘돼 취재수첩에 받아쓰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인권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고~”

    나이 60을 막 넘은 김대중, 머리에 포마드 단정하게 바르고 폭포수처럼 퍼부어대는 그의 연설에 난생 처음 ’말의 힘‘에 전율했다. 

    말로만 듣던 ’노력형 김대중‘이 쏟아내는 콘텐츠에 엄청난 존경심을 느껴 집에 돌아와 내 서가에 초라하게 꽂혀있던 책들을 보고는 크게 자책했다. 그 때 내 나이 29살, 올챙이 정치부 기자에겐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정말 DJ는 대단하구나! 난 솔직히 책을 살 때 DJ를 떠올릴 때가 많다. 

    저 정도의 실력이면 대한민국 대통령을 하고도 남겠구나! 나중엔 결국 그에 대해 너무 실망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되겠다고 나서는 인물들은 최소한 그 정도의 수준은 됐다. 김종필, JP의 연설도 압권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

    “뭉치면 사~알고, 흩어~지면 죽습~네다.”

    박정희 대통령.

    “조국근대화를 위해~”

    그런데, 나라에 얼마나 인물이 없는지 저런 안철수같은 교수가 튀어나와 이 나라 대통령이 되겠다? 기성 정치인 뺨치는 얄팎한 꼼수나 배워가지고!  

    이 정도 수준의 안철수한테 열광하다니!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에 거듭 경악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돌맹이로 맞아 죽을 각오로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뭘 갖고 열광하나!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에 거듭 경악한다.

    다시 인용하지만, 함석헌 선생의 말씀.

    “깨어있는 백성이어야 산다!”

    국민 소득이 50달러 정도 됐던 1958년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에 분노하지 않는 국민을 향해 장준하 선생의 사상계(思想界)에 기고한 글에서 국민의 각성을 촉구했던 말씀. 이제 2만달러를 넘어 선진국 문턱 운운하는 이 시점에서 과연 대한민국 국민은 깨어 있는가? 

    안철수.

    “이제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 한다"?

    그런 소릴 누군들 못하나!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의 삶이 바뀐다“?

    어떻게 바꾸겠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말 콘텐츠의 부재, 안철수와 그 지지그룹의 실력 부재, 그 수준을 적나라하게 느껴지게 한다. 울화통 터지는 젊은이들 구슬리는 것 딱 하나 갖고 이 나라 대통령 되겠다! 

    문재인과의 단일화와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뭐라고?

    ”국민 동의 없이는 부적절하다“?

    자신의 흑심(黑心)을 감추기 위해 툭하면 국민, 국민 팔아대는 기성정치인의 화법을 빼닮았다. 

    문재인이 양보하고 민주당은 자신의 휘하로 들어오라는 소리를 뭐 ‘국민 동의’? 안철수가 ‘뻐구기 전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은 날이 갈수록 적중하고 있다. 뻐꾸기의 야심(野心) 덩어리를 감추고 국민, 국민... 

    이제라도 민주당과 문재인은 안철수가 박원순한테 했던 것처럼 손 들어줄 거라고 기대하는 것, 꿈 깨야 한다. 안철수는 매사가 이렇다.

    ”국민 생각을 알아보고 결정하겠다.“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지 하여튼 국민, 국민…. 정말 사람을 질리게 한다. 

    더 기막힌 건 대선 출마 선언하는 자리에서 박근혜, 문재인을 향해 "선의의 정책 경쟁 선언하는 만남의 자리를 갖자”고 제안한 것. 자신의 정책을 내놓고 선의의 경쟁이든 뭐든 하자고 해야지,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완전히 박근혜, 문재인과 한 자리에서 만나 자신의 ’몸값‘ 올리려는 수법!

    대통령에 당선되면 전 재산 헌납하겠다? 그럼 당선 안 되면? 미끌미끌한 화법에 정말 없던 정조차 떨어져 나간다. 자신에 대한 검증은 모조리 ’네거티브‘라고 매도하고. 앞으로 안철수는 ’네거티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검증 공방을 피하려 할 것!  

    나라에 가뭄이 들어 백성이 굶주리는 것보다 더 심각한 건 나라의 ‘인재(人材) 가뭄’, 인재 기근이다. 저 욱일승천하던 일본이 노인처럼 어정 어정대고 있는 건 최근 20여년 동안 나라를 책임지는 국가 지도자 그룹에 가뭄이 들었기 때문! 가뭄이! 

     지금 대한민국은 일본의 국민 뒤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국민은 무책임한 ‘연예인급 영웅’, ‘만들어진 영웅’ ‘조작된 신화’에 검증조차 하지 않고 무턱대고 환호하는 것, 똑같다. 

    사실 국민이 정치를 망치고 있다. 정말 돌팔매 맞더라도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양심 있는 역사의 증인이라면. 국민이 정치를 망치고 있다.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칼럼니스트/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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