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규와 간(肝)질환과 대통령 시해

    "내가 간(肝)이 나빠 자연사를 하더라도 7~8년밖에 못 살 것이다.
    후세 사람들에게 죽음의 시기를 잘 선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 ▲ 특종기자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 특종기자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대법원 전원 합의체가 10·26사건 피고인들에 대한 상고기각 판결을 내린 것은 1980년 5월 20일이었다. 梁炳晧(양병호) 대법원판사 등 6명은 주범 김재규(金載圭)와 다른 피고인들에게 적용한 ‘내란 목적의 살인죄’는 성립되지 않고 ‘단순 살인죄’로 봄이 타당하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양병호는 “내란 목적의 살인이 되려면 상당히 넓은 범위의 모의와 조직, 다수에 의한 폭동 및 일정한 지역의 평온을 해치려는 계획 등이 있어야 하는데 이 사건은 김재규 혼자서 사전 모의 없이 그의 부하들을 지휘하여 저지른 범행이기 때문에 단순 살인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 사흘 뒤(23일)에 김재규는 남한산성의 군(軍)교도소에서 오전에 40분, 오후에 45분간 두 차례 가족들과 마지막 면회를 했다. 교도소에서 면회 중의 대화를 녹음하여 기록해 놓은 자료가 있어 처형되기 하루 전 김재규의 심리상태를 짐작하게 한다. 오전에 면회 온 두 동서와 두 처남, 그리고 운전기사에게 김재규는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죽거든 동정복에 중장 계급장을 붙여 입관해 주고 검은 양말에 검은 구두를 신겨 주고 오른손에는 상아 지휘봉을 쥐어 주되 내 약력은 창호지에 적어 관 속에 넣어 다오.”

    “내 예감에는 내가 물이 나는 곳에 묻힐 것 같은데…… 내 동지가 모두 일곱 사람이니 나를 중심으로 내 좌우에 두 대령과 경비원을 각각 두 명씩 묻어 다오. 내 옆에는 스페이스를 남겼다가 내 집사람이 죽으면 묻어라(注-김재규는 여섯 명의 사형수를 일곱 명으로 착각하고 있다).”

    김재규는 자신에 대한 사형집행이 민주화 운동을 촉발시킬 것이라고 예언한다.

  • ▲ 대통령 시해범 김재규ⓒ
    ▲ 대통령 시해범 김재규ⓒ

    “내 시체는 집에 들이지 말고 병원에 안치시켰다가 장사를 지내라. 긴급조치 석방자, 복권자, 복학생들이 내 관(棺)을 메고 시가행진을 할 우려가 있으니 절대로 못하게 하라. 나의 사형집행이 이루어지면 나에 대한 국민감정이 돌아서서 민주화 운동이 확 일어날 것이다. 내 죽음이 결정적인 모멘텀이 된다. 내가 간(肝)이 나빠 자연사를 하더라도 7~8년밖에 못 살 것이다. 후세 사람들에게 죽음의 시기를 잘 선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소련이라는 나라는 세계의 지붕으로서 여기서 빨간 물이 계속해서 내려오니 민주화가 되든지 유신체제가 연장되든지 간에 적화만은 막아야 한다.”
      
    "내가 간(肝)이 나빠 자연사를 하더라도 7~8년밖에 못 살 것이다. 후세 사람들에게 죽음의 시기를 잘 선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라는 말이 걸린다. 10.26 시해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기 전에 김재규 정보부장은 간(肝) 질환을 앓고 있었다. 오후엔 한 시간 정도 꼭 낮잠을 잤다. 체력이 달려 서류도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국장급 보좌관에게 결재 서류 검토를 전담시키기도 하였다. 
      
    당시는 정치 상황이 급변하고 있을 때여서 정보부장이 한가하게 병(病)을 관리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가중되는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10.26 사건의 한 요인이 되었다. 혹자는 간 질환으로 오래 살지 못하게 될 것을 안 그가 막가는 선택을 하였을 것이란 추리도 한다. 사형 집행되기 하루 전에 그가 남긴 말-"내가 간(肝)이 나빠 자연사를 하더라도 7~8년밖에 못 살 것이다. 후세 사람들에게 죽음의 시기를 잘 선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에 그런 암시가 들어 있다.

    정치적 격변기에 당무자가 건강하지 못하면 국가적 변고(變故)가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대통령 후보는 선관위에 등록할 때 의무적으로 건강진단서를 붙여야 할 것이다. 재산 공개보다 더 중요한 건 건강상태 공개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5,000만 명이 탄 대한민국호의 기장(機長)으로 선출하는 건 일종의 자살행위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