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서 <故 이하늘 3주기 추모 문화제>
  • "아파트에 태극기가 많이 걸리지 않았네. 엄마, 바람이 시원해."

    그게 하늘이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2009년 6월 6일 현충일. 자신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태극기를 매달던 한 소녀는 갑자기 중심을 잃고 11층 아래로 떨어졌다.

    즉시 119 구조대가 출동했지만 이미 하늘이는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있었다.

    사고 당시 9살에 불과했던 故 이하늘(제주 외도초교) 양은 그렇게 가족 품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다.

    ◆ "피아노, 벨리댄스 등 뭐든지 잘 하던 아이었는데…"

    "하늘이는 정말 다재다능한 우리 반의 별이었죠. 언제 어디에나 빛나는 아이였고 사랑받는 아이였습니다. 피아노와 벨리, 바둑을 배웠던 하늘이는, 배우는 모든 것들을 열심히 했고, 매번 대회에 참여해서는 상을 받아오곤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벨리공연에 나를 초대했었는데 그 곳에 못 가본 것이 너무나 가슴 아파요."

    하늘이의 담임 선생님이었던 김민욱 씨는 "하늘이는 학교생활이 으뜸이었던 아이였다"며 "뭐든지 너무나 잘해서 빠짐없이 상을 받는 아이였고, 수업시간에는 모범적인 학생으로 학급의 리더역할을 충분히 다하던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그날도 학교에서 배운대로 현충일을 맞아 태극기를 스스로 달다 변을 당한 것"이라며 "애꿎은 바람만 아니었어도 하늘이에게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라고 안타까워했다.

    어머니 장OO씨의 증언에 따르면 하늘이는 오전 10시 50분경 베란다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팔을 길게 뻗어 직접 태극기 깃봉을 게양대에 꽂았다.

    하지만 앞선 3.1절날 자신이 꽂은 태극기가 바람에 날려가버린 게 못내 아쉬웠던 하늘이는 태극기를 깃대에 단단히 붙들어 매기 위해 가위와 테이프를 들고 다시 의자 위에 올라갔다.

    그러나 매서운 바람이 한차례 불자 의자가 흔들렸고 무게 중심을 잃은 하늘이는 곧장 아파트 아래 화단으로 추락했다.

    당시 아침식사를 준비하느라 하늘이에게 큰 신경을 쓰지 못했던 장씨는 주방에서 채소를 다듬다 순식 간에 금쪽 같은 딸을 잃는 날벼락을 맞았다.

    "엄마, 이웃집에 태극기가 많이 안 달렸어"

    글 솜씨가 뛰어났던 하늘이는 매일 일기를 한 장 가득 써왔다. 사고가 발생하기 딱 일년 전인 2008년 현충일에도 하늘이는 "아침에 묵념을 해야 하는데 우리 아파트에는 사이렌이 울리지 않았다. 사이렌이 고장 났는가 보다. 다음에는 사이렌이 꼭 들렸으면…"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와 관련, 어머니 장씨는 "앞선 현충일에 묵념을 준비했던 하늘이가 막상 사이렌이 울리지 않자 굉장히 아쉬워했다"면서 "그런데 이번 현충일에는 이웃집 아파트에 태극기가 많이 걸리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에 걸렸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남이 안 하면 나라도 먼저 달아야겠다'는 생각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태극기를 꺼내들었던 하늘이는 어머니 가슴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태극기를 달고 그렇게 세상을 등졌다.

    국민 모두에게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을 남기고 하늘이가 떠난지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한국연극협회제주특별자치도지회는 5일 오후 7시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서 현충일 전야행사의 일환으로 <이하늘 3주기 추모 문화제>를 연다.

    이날 행사에는 故 이하늘 학생에 대한 소개와 함께 추모 살풀이가 이어지며 태극기 퍼레이드, 영화상영 등 다채로운 순서들이 펼쳐질 예정이다.

    주최 측 관계자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현충일 날 태극기를 달다가 떨어져 사망한 故 이하늘 양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태극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살리고자 이 행사를 하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의식이 깨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장례식장에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하늘이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게 하였다.

    하늘이를 하늘나라로 보내기 위해 화장터인‘양지공원’에 하늘이 친구들과 함께 갔다. 그리고 한줌의 재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다시 오열하고 전율하였다. 도저희 믿을 수가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나 또한 너무나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것 같고, 세상을 잘 모르는 것 같아 힘이 들었다.

    그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이에게 미안하고 하늘이의 생전 웃는 얼굴이 앞을 가렸다. 그러나 하늘이를 보내고 싶지 않은 만큼 하늘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지금 교실에 있는 하늘이의 빈자리는 다시금 하늘이 생각에 잠기게 한다. 국경일에는 집집마다 가득 걸려있는 태극기를 보면서 좋아하던 하늘이, 이제 우리들과 같이 그 모습을 볼 수는 없겠지만 부디 하늘에서나마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우리의 작은 별, 하늘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하고 바랄 뿐이다.

    나에게 하늘이는 첫 제자이지만 하늘이게게 나는 마지막 선생님이다. 이 묘한 인연을 나는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할것이다 ‘하늘아, 하늘아’ 가만히 내 작은 친구의 이름을 불러보면서 하늘이의 명복을 빈다.

    2009년 6월

    외도초등학교 교사 김민욱
    사랑하는 나의 첫 제자 ‘하늘이’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