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통합당의 정직성 지수를 측정할 수 있는 시험지가 갑자기 한 장 하늘에서 내려왔다. 각본없는 시나리오, 이래서 정치가 재미있나 보다.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과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총무 사이에 벌이지는 거짓말 고소사건이다. 이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이 민주통합당의 앞날을 점치는 풍향계 역할을 할 것이다.

    “박근혜 의원이 박태규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와 만났다”는 정체불명의 의혹을 제기한 박지원 의원은 세가지 봉투를 들고 있다. 각각의 봉투는 앞으로 박지원 주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예상 시나리오가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다.

    첫 번째 봉투, 만에 하나 사실이 아닐 경우의 행동지침이다.

    박지원은 박근혜를 찾아가 무릎 꿇고 자신의 경솔함과 경박함을 사죄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면 A학점이 되겠다. 인간 박근혜에 대한 사과이기도 하고, 언론과 국민을 농락한 대가이기도 하다. 뉘우치면 법적 책임을 회피할 지도 모르지 않는가. 당연히 원내대표에서 물러나야 한다. 정계은퇴는 더욱 바람직하다. 국민들은 기억할 것이다. “의혹은 많았어도 나름 멋있네.”

    두 번째 봉투는 박지원 원내총무 주장대로 박근혜 의원이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를 만나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경우이다.

    남 좋은 일만 시켜주던 박지원은 새 힘을 얻겠다. 새누리당을 궁지에 몰아넣어 박근혜를 멋지게 무너뜨린 일등 공신으로서, 킹 메이커가 되든지 아니면 직접 킹이 될 꿈을 꾸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박지원 의원의 과거 행적으로 볼 때, 사실여부를 명확히 밝힐 것 같지 않다. 그러면 안 되는데, 세 번째 봉투에 들어있는 시나리오가 더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박지원은 변죽만 올리면서 어물쩍 은근슬쩍 넘어가려 한다. 정치가 다 그런 거지 뭐, 하고 동료들의 힘을 빌려 몸싸움을 벌이고 정치생명을 연명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세상엔 민심(民心)도 있고, 죽을 때 까지 따라다니는 천심(天心)도 있다.
    무엇보다 검찰에 불려 다니는 더러운 꼴이 방송과 신문에서 시시때때없이 도배될 지 모른다. 지지율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박지원은 어느 봉투를 열어볼까? 

    진짜 숙제는 민주통합당이다. 어쩔 것인가?

    민주통합당은 갈림길에 서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 지 고민 좀 할 것 같다. 국민들이 생사를 건 검투사들의 운명에 시선을 집중하는 한편에서, 오랏줄을 감아쥔 검찰의 눈길이 매섭다.

    민주통합당은 몇 가지 원칙을 갖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원칙, 박지원 원내대표가 한 말이 사실인지 당 차원에서 먼저 조사해서 있는 그대로 공표하라는 원칙이다.

    유권자들이 ‘민주통합당이 저 정도까지 발전했어?’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볼 것이다. 내부 반발에 동업자들 우정에 금이 가겠지만, 생살 도려내는 만큼 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이거 A학점이다.

    두 번째 원칙, 박지원 의원 발언이 거짓으로 드러났을 경우에 취할 행동이다.

    박지원 의원을 내쫓는 것이 마땅하다. 모든 당직자를 다 갈아 치워라. 그리고 사죄하는 뜻에서 카메라 앞에서 사죄의 큰 절하는 쇼라도 한 판 벌이길 바란다. 뭐 그런 일 가지고? 라고 하지 마시라. 새누리당과 정직성 경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문대성 새누리당 의원이, 스펙쌓기 위해 한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 용인 되었던 ‘논문 적당히 짜깁기’ 관행 때문에 쫓겨났다. 박사학위는 여러 교수의 공범자가 있어서 가능했다. 그런데도 문대성은 혼자 뒤집어 썼다. 민주통합당 정세균 의원은 더 심한 베끼기 가지고도 버티고 있어 이미지 상으로는 지고 들어갔는데, 이번 마저 또 질 수는 없지 않는가.

    세 번째 원칙, 박지원 의원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얼마나 잘 된 일인가?

    축제를 벌여라. 기자들을 볼 때 마다 계속 떠들어라. 박근혜 의원을 주저앉혀라. '새누리 OUT'이라고 쓴 노란색 종이 들고 전국 돌면서 유세를 벌여라. 대선가도는 매우 맑음이 되겠다.

    살 길은 아주 단순 명료하다.

    정직하게 조사해서 까발리면 산다. 거짓말로 드러나면, 박지원 징계 카드로 선명성이 부각돼서 살아날 것이요, 지지자들은 자부심이 생길 것이다. 대권 전쟁도 매우 유리해진다. 사실로 드러나면 말할 것도 없다.

    확실하게 망하는 길, 이것도 아주 단순 명료하다.

    사건을 대충 뭉개는 방법이다. 자정능력 없는 정당, 부도덕하고 부정직한 정당, 수권능력이 없는 정당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당분간 국정을 맡아 운영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지금까지 하던 대로, 계속 시비나 걸고 뒷다리나 잡으면서 뒷골목 패거리 정치하다가 몇 년 뒤 이름 바꿔 다시 좌판을 깔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조심할 것이 있다. 요즘 사람들 기준이 높아졌다. 예전만큼 표를 얻을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