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로고

부처님이 한국 조계종에게

입력 2012-05-18 12:08 수정 2012-05-18 12:12

조계종, 조속히 새출발해야

한국사회에 申聞鼓(신문고)같은 언론에 조계종의 개혁을 바라는 피맺힌 절규같은 성호스님의 폭로적 기자회견으로 불교인은 물론 여타 국민들까지 조계종에 비판여론이 충천하고 있다.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대다수 민심은 한국불교의 간판인 조계종이 촌각을 다투워 개혁할 것을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개혁대상인 조계종 총무원은 첫째, 성호스님을 조계종 승려가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고소하고, 둘째, 108배 참회로 드러난 치부를 덮어버리는 듯한 처신을 국민에게 보이고 있다. 조계종을 개혁하라는 대다수 민심을 과소평가 하는 것인가?

조계종 총무원, 비판 수용할 수 있어야

조계종은 승려가 되려면 맨 처음 배우게 되는 初發心自警文(초발심자경문)에 不得揚於家醜(부득양어가추)하라는 말을 늘 강조한다. “집안의 추한 허물을 세상에 들어내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필자는 견해를 달리한다. 집안에 도적이 들어와 주인행세를 하고 집안을 망치는 행위를 계속 한다면, 집안에 큰소리로 도적이 들어온 것을 외쳐 알리고, 집안에서 도적을 잡을 수 없다면, 온 세상에 집안에 도적이 든 것을 외쳐 도적을 내쫓고 집안의 평안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부와 권력을 잡은 소위 정치승의 소행이 조계종을 올바로 이끌지 못하고, 출가 수행자의 본분을 망각하고, 조계종을 돈벌이 장소로 생각하고 부정부패의 냄새를 진동시킨다면, 비판할 수 있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으며, 탄핵같은 조치도 불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계종 최고 권력자-총무원장 중심제-이기 때문에 비판은 절대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는 식의 권력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비민주, 무인권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조계종은 총무원장의 부정부패, 자격에 비판을 하고, 총무원장과 반대 견해를 피력하면, 권력을 이용하여 사회법의 최고형인 사형과 같은 멸빈형을 받게 하여 조계종에서 길거리로 내쫓아 오는 것이 무슨 관행처럼 되어왔다. 성호스님이 조계종에서 중징계를 받고 정든 금당사를 빼앗기고 길거리로 내쫓겨 온갖 고난과 수모를 겪는 것은 총무원장을 향해 비판한 탓이다. 대자대비는 신도용 空念佛(공염불)이고, 종단정치적으로 반대 견해자는 가차없이 죽여 없애야 속이 후련한 정치승 시절은 이제 끝내야 한다. 조계종 승려든, 신도든 조계종 총무원에 문제가 있으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세상이 와야 하는 것이다.

왜 사면하지 않는가?

필자는 조계종 승려로 출발한지 50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필자는 승려가 되자마자 선배스님들의 1차 불교정화운동의 막내같은 존재로 소위 정화불사에 합류하게 되었고, 때로는 목숨이 위태로운 선봉에 나서기도 했다. 8차에 걸친 諭示(유시), 비구승이 전통사찰의 주인이 되게 하기 위해 군경까지 지원해주는 이승만 대통령 덕택에 기십명에 지나지 않은 비구승들이 승리하고, 조계종을 출범한 것은 기적같은 일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불교에서 말하는 護法王(호법왕)같은 분으로, 위대한 기독교인이었다.

박정희 대통령도 조계종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다. 대표적인 것이 ‘불교재산관리법’을 제정하여 불교재산을 수호하여 준 것이다. 그 법이 없었다면 조계종의 명산대찰은 사기꾼의 뱃속에서 소화되고 말았을 것이다. 조계종의 비구 선배 승려들의 爲法忘軀(위법망구)적인 헌신과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의 지원이 없었다면, 오늘의 조계종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는 바이다.

그러나 무상한 세월이 흐르고, 작금의 조계종은 북한정권이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증오하듯, 북한의 증오를 복창하는 승려들이 전성기를 이루고 있다. 6,25 참전 노병이 5000원의 보상비를 받고, 극빈속에 병들어 혼자 쪽방에서 조악한 음식을 차려먹듯, 주지 노릇을 하지 않는 필자는 그 노병처럼 극빈과 지병의 고통속에 오직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이 나날히 번영하기를 바라고, 조계종이 나날히 번영하기를 바라는데, 역대 총무원장들이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같은 승려 죽이기(멸빈형)를 茶飯事(다반사)로 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사회는 결코 대한민국에 전향하지 않는 골수 빨갱이도 사면하고, 원하면 선물과 함께 북송도 해주었다. 그런데 조계종은 정치판에 반대견해를 갖었다는 이유 하나로 멸빈형을 시켜 사찰에서 내쫓고서는 도대체 사면을 하지 않고 있다. 왜 사면을 하지 않는 것인가? 이유는 첫째, 기득권을 빼앗기는 공포 때문이고, 둘째, 대자대비는 空念佛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민주화로 깨어났는데, 조계종만 비민주, 무인권으로 사면을 외면하는 것이니, 누가 정의와 민주와 인권이 강물처럼 넘치는 조계종이라 하겠는가?

조계종의 마지막 보루가 나서야

조계종의 마지막 보루는 첫째, 종정스님이고, 둘째, 원로회의이다. 조계종 충무원이 부정부패로 기사회생이 어렵고, 천심같은 민심이 조계종이 새출발할 것을 바라는 소리가 충천한다면, 종정스님과 원로회의는 촌각을 다투워 전국 사부대중은 물론,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고, 조계종의 새출발을 선언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보루가 단행해야 할 새출발은 무엇인가? 총무원장을 물러나게 하고, 중앙종회 해산을 선언해야 한다. 이어서 비상종회를 구성하여 종헌종법 改廢(개폐)에 나서야 한다. 첫째, 속인들 풀뿌리 민주주의 흉내내는 각종 선거법에 대해 개폐해야 한다. 둘째, 특별사면(멸빈자 포함)을 종정스님과 원로회의에서 단행할 수 있도록 종헌종법을 개폐해야 한다.

셋째, 총무원장 중심제에서 종정중심제로 복귀해야 한다. 총무원장은 원로회의에서 선출하여 종정의 재가, 임명을 받는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넷째, 본사주지는 종정으로부터 임명을 받는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오랜 수행과 경륜이 있는 원로회의와 종정이 나서야 조계종을 반석위에 올리고 번영시킬 수 있다.

돈봉투와 고무신짝, 막걸리를 받고 표를 던지는 선거판은 속인은 끝낸지 오래이다. 조계종이 그런 선거판을 답습하고 고수해서야 되겠는가? 1만 3천여명의 조계종 승려 가운데, 大盜(대도)같은 大猝富(대졸부)는 있다. 그러나 대다수가 가난속에 신음한다. 필자는 조계종에서 한 달에 1십만원의 지원도 없고, 노후복지의 연금도 전무하다. 필자와 같은 일부 승려는 독신 노인으로 기초생활수급자 노릇을 하고 있다. 필자는 국가에 기여한 바가 없는 승려로서 죄송한 마음에 권유하는 기초생활 수급자 노릇을 사양하고 있다. 이것이 조계종 정화불사에 참여한 노승의 최후이다.

“부처님이 바라신다”

십자군은 신이 바라시는 것을 위해 성전을 벌였다. 조계종이 羊頭狗肉(양두구육)처럼, 즉 “양대가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팔아먹는” 장사꾼같이 “자성과 쇄신”의 구호를 걸어놓고, 속내는 비민주, 무인권, 부정부패와 도박으로 지탄을 받는다면, 부처님은 조계종을 향해 무엇을 바라실까? 사회에 대한 헌신을 위해 먼저 청정한 교단을 바라실 것이다. 사부대중은 분연히 일어나 청정한 교단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성호스님은 출가 전, 법대를 다니고, 사시 준비를 하면서 승려가 되었고 동국대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인재이다. 그를 반대 견해를 피력했다고 해서 멸빈형을 시키고, 절집에서 길거리로 내쫓고서는 “그는 조계종 승려가 아니다”, 고 외쳐서야 되겠는가! 깨어난 국민들은 진실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구린 똥을 황금종이로 포장하여 싼다고 해도 구린 냄새는 새어 나온다. 조계종의 치부를 말하는 자를 죽이듯 멸빈형을 시키고, 부정해도 그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어리석고 추잡한 짓이다. 성호스님은 목숨을 걸고 국민들을 상대로 신문고를 치고 있다. 오죽했으면, 그럴까. 지난 엄동설한 조계사 郵政局(우정국) 얼어있는 돌위에 앉아 눈을 맞으면서 정의구현을 외치는 1인 시위를 해오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그의 凍死(동사)를 걱정했었다. 그는 조계종의 정의를 위해 기도했다. 불보살의 가피가 분명 있을 것을 믿는다.

끝으로, 조계종은 촌각을 다투워 개혁되어야 한다. 개혁을 강조하는 필자에게도 해코지를 해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혁이 오지 않는다면, 필자 역시 국민에게 신문고를 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지병이 깊은 노승이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필자는, 거듭 마지막 보루인 종정스님과 원로회의가 조계종의 새출발을 할 수 있도록 조속히 단안을 내리기를 촉구하고, 고난속의 성호스님이 조계종의 승려로써 산사에서 정진하여 대성할 수 있기 바란다.

李法徹(bubchul@hotmail.com/중앙불교 대표)

 

 


 

뉴데일리 댓글 운영정책

뉴데일리 경제

대구·경북

메인페이지가 로드됩니다.

로고

뉴데일리TV

칼럼

특종

미디어비평

제약·의료·바이오

선진 한국의 내일을 여는 모임. 한국 선진화 포럼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