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225국 “민노당 중심으로 진보정당 통합” 지령경기동부연합, 인천연합 등 ‘당권파’ 기득권 공고해
  • 통진당의 ‘비례대표 부정선거’ 내홍이 가관이다.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드러난 종북 성향의 ‘당권파’는 끝까지 기득권을 지키겠다며 버티고 있다.

    이정희 대표는 17시간 넘게 같은 말만 반복했고, ‘당권파’의 핵심이라는 이석기 비례대표는 ‘당원들의 투표에 용퇴를 맡기겠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함께 당을 만든 유시민 대표와 심상정, 노회찬 前 의원은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이런 ‘당권파’의 모습을 보면 북한이 왜 ‘민노당’에 그리 집착했는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왕재산’ 사건 당시 북한은 대남사업의 중심을 ‘민노당’의 인천 조직에 맞춰놓고 활동할 것을 지시했다. 민노당 인천조직을 관할하는 건 '인천연합'으로 불리는 당권파 세력이다.  

    北 225국, ‘민노당’ 중심으로 ‘진보대통합정당’ 만들라 지령

    2011년 10월 공안당국이 발표한 수사결과를 보면 ‘왕재산’은 선거에 적극 개입하고 조직원을 정치권에 침투시키려 했다. 이를 위해 시도한 것이 바로 ‘자칭 진보정당’ 후보를 지원하는 것.

  • ▲ 2011년 10월 당시 공안당국이 밝힌 간첩단 '왕재산'의 조직도.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 2011년 10월 당시 공안당국이 밝힌 간첩단 '왕재산'의 조직도.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북한은 대남공작에 있어 상층부와 하층부를 망라하는 통일전선을 구축, 적화혁명 역량을 강화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 중에서도 정치권을 공략 대상으로 하는 상층부 공작은 베트남 전쟁에서 보듯 한국사회의 정국 혼란 등 적화혁명에 필요한 상황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하다고 판단, 공을 들여왔다.

    북한 225국 또한 이런 지도부의 뜻에 따라 ‘왕재산’에게 선거 때마다 지령을 내려 소위 ‘진보세력’과 ‘개혁민주세력’의 역량을 확대하고 민노당을 중심으로 진보 대통합 정당을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공안당국이 밝힌 북한 ‘225국’의 지령을 보면 2006년 5월 지방선거에서 “2007년 대선을 내다보고 민노당 인천지역 세력이 우세를 차지하도록 왕재산 조직의 영향 하에 있는 지역운동단체들을 망라해 동원하라”고 지시했고 2011년 4월 재보궐 선거 때는 “승리의 성과를 토대로 민노당을 강화하면서 진보대통합 건설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새로운 상설 연대체의 본조직과 지역조직을 일정대로 추진하는 것이 당면 과제”라고 지시했다.

    북한 225국은 2011년 5월에는 민노당 중심의 소위 ‘진보대통합정당’ 건설에 대해 내려보낸 지령문에서 “진보신당의 통합 반대세력은 민노총 등과 함께 내외협공을 들이대여 통합으로 몰아세우고, 통합이 파탄될 경우 진보신당을 고사시키라” “사회당은 점차 악질분자들을 고립 축출”, “국민참여당은 이라크 파병 주장 등에 대해 공개 반성할 경우 통합에 참여시키라”며 좌파 진영을 민노당 중심으로 통합하되 여기에 반대하거나 주도권을 쥐려는 다른 정당들을 압박하거나 고사시키라는 지령을 내렸다.

    북한의 이 같은 지령은 현재 통진당 내홍에서 유시민 대표와 심상정, 노회찬 대표의 발언권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北 “민노당의 역량 강화하고 정치인 포섭하라” 지령

    북한 225국은 ‘민노당의 역량 강화에 힘쓰라’는 지령도 내렸다. ‘왕재산’은 행동으로 화답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당시 ‘왕재산’은 “조직원들이 열심히 투쟁하여서 민노당 후보 중 기왕의 포섭대상인 OOO을 시의원으로, OOO을 구의원으로 당선시켰다”고 북한에 보고했다. 여기 거론된 민노당 관계자들은 현재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 ▲ 2005년 당시 작성되었다는 '경기동부연합'의 '민노당 사업지침'. 그들에게는 '공당(公黨)'도 혁명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듯 하다.
    ▲ 2005년 당시 작성되었다는 '경기동부연합'의 '민노당 사업지침'. 그들에게는 '공당(公黨)'도 혁명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듯 하다.

    북한 225국의 지령과 ‘왕재산’의 활동은 이어졌다. 북한 225국은 ‘왕재산’ 총책 김 모 씨에게 “여야 상층인사 2~3명을 담당하여 교양전취(사상학습)하고, 김정일을 따라 조국통일에 나서도록 만들라”고 지령했다.

    이에 총책 김 씨는 舊평민당의 ‘재야입당파’ 출신으로 16대 대선 당시 모 후보 선대위원장실의 정무부국장 등으로 활동했던 ‘왕재산’ 서울지역책 이 모(관상봉) 씨가 이 임무에 적임자라고 판단, 2003년 7월 북한에 “관상봉(이OO)을 정계 상층부에 진입시켜 활동하게 하려는 것에 대해 본부(225국)의 승인을 바란다”고 공작 승인을 요청했다.

    김 씨는 이와 함께 ‘OOO 정권의 계파별 세력분포’ ‘개혁신당 연대회의 주요 인물성향’, 이 씨의 활동경력 등이 담겨있는 ‘現정치정세분석’이라는 제목의 대북보고문을 제출했다.

    북한 225국은 2004년 4월 28일 이 계획을 승인하면서 “민주당 내 또는 당 밖에서 연구소 설립을 비롯하여 정치활동 거처를 빠른 시일 내에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의 승인이 떨어지자 서울지역책 이 씨(관상봉)는 민주당의 재야입당파 모임인 ‘평화민주통일연구회’ 소속 국회의원, 회원 10여 명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2004년 5월부터 민주당 대권주자의 정책기획자문팀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6년 6월 20일에는 같은 ‘재야입당파’인 임채정 국회의장의 정무비서관이 돼 2년 동안 근무했다.

    공안당국은 “이 기간 동안 이 씨(관상봉)는 북한 지령에 따라 2005년 10월 26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패배 이후 여당의 계파별 내부동향, 2006년 여당의 지방선거(5.31) 참패의 원인과 유력정치인 동향 등을 탐지․수집하는 한편 북한에 자신이 자문역할을 해 온 대권 주자 OOO에 대해 ‘잘못된 기조로 대권쟁취는 물론 정치생명도 위기상황’이라고 보고한 후 다른 대권주자 캠프로 옮겨 활동했다”고 밝혔다.

    이 씨는 자신이 지지하던 후보가 대권후보 경선에서 패하자 직접 국회의원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2008년 2월 제18대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민주당 지역구(남양주 을)에 공천을 신청했다 탈락했다.

    정치권 포섭에 목마른 북한의 목표 ‘민노당’

    이 씨는 욕심을 부리다 ‘상층부 진입’에 실패했다. 하지만 북한 225국은 2011년 1월 31일 ‘왕재산’ 총책 김 씨와 이 씨를 중국 북경으로 불러 사흘간 ‘정세정보 입수’ 임무를 재차 맡기면서 활동을 독려했다고 한다.

    북한의 격려에 신이 난 이 씨는 같은해 4월 27일 재보궐 선거 후 “OO당 OOO은 기회주의적 자유주의자” 등으로 평가한 ‘재보선 이후 정치상황’을 북한에 보고하는 등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공안당국은 “이 같은 ‘왕재산’의 활동만 봐도 북한과 ‘왕재산’ 조직이 상층부 통일전선 공작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를 증명해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공안 관계자들은 ‘왕재산’ 사건뿐만 아니라 2006년 일심회 사건 등에서도 북한이 상층부 포섭공작에 큰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 중에서도 민노당 만큼 ‘종북세력’에게 좋은 ‘숙주’가 없었다고 한다.

  • ▲ 통진당 전국운영위의 한 장면. 무슨 의결을 하는 데 당원증을 들어 보인다. 여기가 북한일까, 여의도일까?
    ▲ 통진당 전국운영위의 한 장면. 무슨 의결을 하는 데 당원증을 들어 보인다. 여기가 북한일까, 여의도일까?

    민노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은 1997년 권영길을 후보로 내세워 대권에 도전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외면으로 대권은커녕 이름도 제대로 알리지 못한 뒤 전국실업자동맹으로 이름을 바꿨다. 1999년 8월 김대중 정권 아래서 이들은 ‘진보정당’을 창립했고, 2000년 1월 합법 정당으로 승인을 받는다. 이후 민노당은 우파진영이 자신들을 ‘종북세력’ ‘불법정당’으로 비판할 때마다 ‘합법정당’임을 내세우며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민노당의 강령이나 활동 등을 보면 ‘합법정당’이라고 보기가 어려운 수준이다.

    ‘불가능한 목표’ 내건 민노당 강령, 통진당 그대로 계승

    이제는 통진당의 일부분이 됐지만 민노당은 스스로를 “갑오농민전쟁과 3.1민족해방운동, 4.3민중항쟁, 4.19혁명, 5.18민중항쟁, 6월 민주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 촛불항쟁 등 도도히 이어져온 민중투쟁을 계승하는 정치세력”이라고 규정한다.

    이들은 강령에서 “우리 민중은 제국주의 침략과 민족 분단, 외래 독점자본과 국내 재벌의 민중수탈, 독재, 사회 불평등과 생태 파괴, 가부장적 폭력으로 얼룩져 온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고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군사패권주의가 초래한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여 민족의 자주적 발전과 평등사회,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민노당은 또한 “진보적 민주주의가 이 땅에 구현되지 않는 한 민중의 삶은 억압과 수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에 민노당은 민중이 참 주인이 되는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건설할 것”이라고 밝힌다. 여기서 말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란 마르크스 등이 말하는 ‘인민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민노당은 정치 제도 면에서 “우리는 민중이 중요정책을 발의하고 결정하며 공직자를 소환하도록 하는 등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한다”고 밝히기도 한다. 

    자유시장경제도 부정한다. 민노당은 “우리는 자본주의 폐해를 극복하는 자주적인 경제발전과 함께 민중의 주체적 참여가 보장되는 민주적 경제체제를 건설”을 목표로 한다고 밝힌다.

    민노당은 또한 “기간산업의 국유화 등 생산수단의 소유구조를 다원화하고, 민중의 생존권을 우선하는 경제운영을 통해 민생경제를 확립한다. 또한 재벌중심 경제체제, 수출 주도형 경제체제를 지양하고 중소기업의 정상적 발전을 도모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 남북경제협력을 강화하여 통일경제를 이룩한다”고 밝히고 있다.

    민노당은 외교에 대해서도 “우리는 기존에 맺은 모든 불평등한 조약과 협정을 폐기한다. 우리는 남북 군축과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을 통해 한미 군사동맹 체제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다”고 주장한다.

    이 외에도 민노당의 ‘요구’는 다양하다. 비정규직 폐지, 정리해고 폐지, 가족제 폐지, 불법체류자 취업 자유화와 노조설립 허용, 초중고교와 대학에 대한 전면 무상교육과 무상급식, 무상보육, 선제 군사력 감축을 통한 평화통일 등 ‘상식’ 선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게 다수다.

  • ▲ 민노당이 절대 양보하지 않으려는 게 있다. 바로 '의석'이다. 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걸까.
    ▲ 민노당이 절대 양보하지 않으려는 게 있다. 바로 '의석'이다. 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걸까.

    민노당이 이처럼 ‘대한민국과 거리를 둔 강령’을 내세우고 있음에도 꿋꿋하게 조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이번 통진당의 내홍에서 ‘범경기동부연합’ 또는 ‘당권파’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바로 ‘당권파’가 수많은 민노당 당원들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라는 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의 설명이다.

    이런 ‘당권파’와 같은 이들이 조직화할수록, 우리나라 국회에 입성할 때마다 북한 225국 같은 대남사업요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