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韓, 최악의 양극화  
     
    토끼가죽 바치는 일반 학생들...英語과외 받는 북한 특권층 

    金成昱   
     
     한반도 최악의 兩極化(양극화) 현장은 북한이다. 교육도 그렇다. 소위 無償敎育(무상교육)을 한다는 북한의 절대다수 주민들은 끔찍한 ‘학교꾸리기’와 ‘학생노력동원’ 부담에 시달린다.
     
     세금이 아닌 ‘학교꾸리기’로 바쳐야 하는 물건도 가지가지다. 매달 破紙(파지) 몇 킬로, 破鐵(파철) 몇 킬로, 破銅(파동) 몇 킬로, 겨울철 석탄·나무는 물론 모래·시멘트·유리창 등도 헌납한다. ‘外貨(외화)벌이 과제’(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의 일환으로 외화를 만들어 당에 바침)와 토끼 가죽을 바치는 ‘꼬마계획 과제(북한의 외화벌이에 사용되는 토끼 가죽을 모으는 것)’도 있다. 가정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많으니 장마당에서 사서 내는 일도 허다하다.
     
     ‘학생노력동원(‘충성일’ ‘좋은 일 하기 운동’ 등)’으로 유치원 아이들부터 이삭줍기·김매기·모내기·추수에 나선다. ‘강냉이 영양단지’는 강냉이를 먼저 온실에서 키우고 나중에 내다 심어서 키우는 것이다. 아이들이 하는 탓에 ‘강냉이 영양단지’를 ‘학생단지’로 부른다.
     
     중학교만 올라가면 봄철 100일 가을철 40일, 1년에 5개 월 가량 농촌에 나가서 일한다.
     
     학교를 다니는 부담이 너무 커 못 가는 아이도 많다. 10대 탈북자 A씨는 “40명 내외 학급에 많을 때는 50%가 결석한다. 10%는 공부하기 싫어서, 40%는 학교에서 내라는 것을 못 내서 빠진다”고 말했다. 통일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북한 지방 학교는 결석률이 30~40%에 달하는 것으로 나온다. 학교를 빠지는 아이들은 산열매, 산나물 등을 캐 장마당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린다.
     
     교원(교사)에게 배급도 잘 안되니 이것도 각 가정이 책임질 몫이다. 학교에 제대로 바치지 못하는 아이는 차별을 받게 된다. 반장에게 얻어맞고 이른바 “들짐승(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 취급도 당한다. 이러니 학교를 빠지는 아이가 늘고 文盲(문맹)도 많아진다. 탈북 한 청소년 가운데 한글을 못 읽는 이들이 많은 이유가 여기 있다. 최악의 교육 붕괴 현장이 북한인 셈이다.
     
     소수의 특권층 자녀들은 개별교사(개인과외)를 한다. “한 달에 피아노 20달러, 바이올린 17~18달러, 수학 30달러, 영어 15달러(‘북한주민의 삶과 질’ 2011년 12월 통일연구원 刊)”이런 식으로 음악은 물론 영어 공부도 열심이다. 영어를 잘해야 외국에 나가서 ‘외화벌이’로 한 몫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과외는 금지돼 있지만 워낙 부패한 곳이니 알음알음 행해진다.
     
     아래는 탈북자 출신인 이애란 박사의 북한 무상교육 비판 강연 내용이다. 강연은 2011년 11월1일 조갑제현대사강좌에서 있었다.
     
      “북한의 무상이 진짜 ‘무상’이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왜 무상이 아니냐? 탁아소에 들어갈 때요, 여기는(한국) 그냥 돈만 내면 들어가요. 그런데 북한 사람들은 탁아소에 아이들을 입학을 시키려면 기저귀 20장, 비누 몇 십장, 페인트 얼마, 판자 몇 장, 시멘트 얼마…. 이런 걸 내라는 ‘과제’가 있어요. 그걸 돈으로 환산하면 등록금 되지 않아요? 탁아소에 계속 다니려면 계속 뭘 내야 되요. 애기들은 말 못하니까 써서 보내요(팔목 안쪽에). 페인트, 락카, 판자…. 계속 가져오라고 해요. (탁아소에) 안 보내는 게 마음이 편합니다.
     
     중학교만 올라가도 농촌 동원을 갑니다. 봄날에 100일 가고요 가을에 40일 갑니다. 지금 북한의 아이들은 농촌에 나가서 농촌 동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 년 중 거의 5개월 정도는 농촌에 나가서 일을 합니다. 그러면 그걸로 등록금 벌이 안 되겠습니까? ‘강냉이 영양단지’라고 김일성이 만든 주체농법인가 뭔가 해서 강냉이를 먼저 온실에서 키우고 나중에 내다 심어서 키우는 게 있는데, 그 영양단지 심는 것을 다 아이들이 하기 때문에 ‘강냉이 영양단지’를 ‘학생단지’ 말할 정도예요. 아이들이 그렇게 일을 많이 합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들도 역시 무료 교육은 아니라는 얘기죠, 노동력을 이미 바치고 있지 않습니까?
     
     대학교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4월 중순쯤 되면 농촌동원을 나가서 7월 중순이 돼야 들어옵니다. 봄날 내내 농촌에서 일합니다. 방학은 일주일입니다. 여기(한국) 아이들은 방학이 몇 개월입니까? 5개월입니다, 대학 때. 제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네 5개월 동안 나가서 아르바이트 열심히 하면 등록금 못 버느냐?” 아르바이트하면 한 달에 100만 원은 벌 거 아니에요. 5개월이면 얼마예요? 500만 원은 벌 거 아니에요, 그죠?
     
     북한의 무료가 진짜 무료나? 거기에다가 노동만 하느냐? 북한의 대학교 가면 계속 내라는 게 많아요. 이건 초등학교, 중학교가 전반적으로 다 같습니다. 外貨(외화)벌이 과제(注: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의 일환으로 외화를 만들어 당에 바침)가 있고요, 꼬마계획 과제(注: 북한의 외화벌이에 사용되는 토끼 가죽을 모으는 것. 학년이 높아질수록 할당 가죽 매수가 늘어남)가 있고요, 학교를 관리·운영하는 모든 것을 아이들의 힘으로 해야 합니다.
     
     대학 때 이런 경험이 있었어요. 대학교 바닥에 ‘도기다시’라고 하더라고요, 돌하고 시멘트하고 섞어가지고 대리석처럼 만드는 것 있잖아요. 그걸 해야 되는데 돌을 채석장에 가서 가져와야 되는 거예요, 집에 돌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여대생 3명에 남학생 2명 해서 습격조를 모아가지고 새벽 3시에 채석장을 습격해서 하얀 돌을 훔쳐가지고 왔어요. 이거는 도둑질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내 학교가 아니잖아요? 국가의 학교예요. 그런데 국가의 채석장의 돌을 국가의 학교로 옮겨놨으니까 자리 이동일 뿐이지 내가 훔친 건 아니거든요? (웃음) 근데 우리가 잡혀갔어요. 하얀 돌 끌고 간 자국이 학교까지 죽 남아서 잡혀갔어요. 잡혀가서 진술서를 쓰라고 하는데, 진술서는 쓰지만 우리는 책임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가 도둑질을 어느 때 가장 많이 하느냐? 대학교 때 제일 많이 합니다. 학교에서 내라는 건 많은데 낼 수가 없잖아요. 휘발유를 계속 내라고 하는데 휘발유가 집에 어디 있어요? 만날 길거리에 휘발유 병 들고나가서 “아저씨 휘발유 한 병만 주세요”라고 빌었어요. 그렇게 해서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대학교 때 그것만 냈느냐? 토끼가죽도 내라고 하고, 약초도 내라고 하고… 내라는 게 너무나 많습니다. 차라리 돈으로 내는 게 훨씬 때우기가 쉽죠. 이런 상황인데 북한의 교육이 과연 무료교육이라고 할 수 있느냐? 사람들에게 세금이 아닌 다른 온갖 방법으로 부담을 지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집에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있으면 너무너무 부담스러워 해요. 빨리 얘가 졸업했으면 좋겠대요.
     
     또 ‘무상교육’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철저하게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통제합니다. 한 학급의 10%밖에 대학교에 못 가요.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지 않겠어요? 반값으로 깎아서요. 경제 어려우면 공부 못 하는 애들은 학교 못 가죠(注: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면 세금으로 등록금 지원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고, 북한처럼 대학 진학 학생 수를 제한할 거라는 의미). 요즘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이 80 몇 프로죠? 사실 보니까 대학교에 안 갈 아이들도 너무 많이 와 있어요. 저도 대학교에서 가르쳐봤지만 얘는 왜 와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근데 왜 무상으로 해야 됩니까? 왜 반값으로 해야 합니까? 진짜 공부가 필요한 아이들은 대학에 가고, 공부를 안 해도 되는 아이들은 나가서 일하고 이렇게 돼야죠.
     
     우리나라 이렇게 학력수준 높아진 거 왜 그렇습니까? 등록금만 내면 마음대로 가니까 높아진 거 아니에요? 저는 북한에 있을 때, 자랑은 아니지만 공부 정말 열심히 잘 했어요. 우리 道(도)에서 경시대회 하면 2등은 했어요, 1등은 못 했지만. 그래도 저는 출신성분이 나빠서 대학에 갈 수가 없었어요. 그때 저는 ‘남한처럼 차라리 등록금 내고 학교 가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돈은 내가 벌 수 있지만 출신성분은 바꿀 수 없잖아요. (注: 이애란 교수는 출신성분이 나빠 대학진학의 기회를 잃었으나, 당시 동유럽을 순방하고 온 김일성이 과학기술 육성을 위해 출신성분을 따지지 말고 기술대학에 입학시키라고 지시해 신의주경공업대학교 식품발효학과에 입학했다)
     
     무상교육이라는 것은 이런 맹점들을 안고 있습니다. 똑같이 반값 내고 가는 건 좋은데 언젠가 경제가 어려워지면 반값 내고 대학교 가는 학생들의 절반 이상은 대학교에 못 간다는 이야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