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상하이 홍커우 공원서 일제 수뇌부 척살한 윤봉길 의사이명박 대통령, 나라사랑 강조한 의사의 뜻 담은 메시지 전달
  • ‘자칭 진보’라는 정치인들이 단골로 내세우는 주제가 바로 ‘친일척결’이다. 하지만 실체를 찾아보면 되려 그들의 조상 중에 골수 친일파가 많다. 진짜 ‘친일파 척결자’께서 이런 모습을 봤다면 뭐라고 하실까. 오는 29일 오전 10시 중국 상하이 루신(魯迅)공원, 오전 11시 서울 양재동 매헌 기념관에서 윤봉길 의사 의거 80주년 기념식이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 주관(회장 황의만)으로 열린다.

  •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울 수 없다며 학교를 자퇴하고, 사설서당인 오치서숙(烏致書塾)에서 한학을 배웠다.

    윤 의사는 1928년에는 부흥야학원(富興夜學院)을 세워 농민 자녀들을 교육했고, 1929년에는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해 농민계몽운동과 농촌부흥운동, 독서회 운동을 전개했다. ‘농민독본’이란 책도 만들어 청년들에게 농민의 단결과 민족정신의 배양,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활동을 펼치자 일제의 탄압이 시작됐다.

    윤 의사는 일제를 피해 중국으로 망명, 백범 김 구가 이끌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해 거사를 자청했다.

    한편 김 구는 이때 중요한 첩보를 입수했다. 1932년 4월 29일 일본군 수뇌부가 일왕(日王)의 생일을 맞아 상하이 점령 전승경축식을 상해 홍커우(虹口)공원에서 열기로 한 것이었다.

    윤 의사는 이들을 향해 물통으로 위장한 폭탄을 투척, 히로히토 일왕의 오른팔로 알려진 시라카와 대장 등 다수의 군 수뇌부를 사살했다. 의거 직후 윤 의사는 도시락으로 위장한 폭탄으로 자결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윤 의사는 상하이 일본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았다. 그 해 5월 25일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 18일 오오사카(大阪) 육군 위수(衛戍)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 교외에 있던 한 작업장에서 26발의 탄환을 맞고 순국했다.

    윤 의사의 유해는 김 구의 요청에 따라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되어 1946년 6월 30일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윤 의사의 공적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 ▲ 매헌 윤봉길 의사의 묘소. 왼쪽에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있다. 진짜 '친일파 척결자'는 일제의 수뇌부를 노렸지 우리 백성을 괴롭히지는 않았다.
    ▲ 매헌 윤봉길 의사의 묘소. 왼쪽에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있다. 진짜 '친일파 척결자'는 일제의 수뇌부를 노렸지 우리 백성을 괴롭히지는 않았다.

    한편 오는 29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윤봉길 의사 의거 기념식에는 권율정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장과 김달수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 부회장, 안총기 駐상해 총영사 및 교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다. 

    국내 기념식에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황의만 기념사업회장과 회원, 유족, 시민, 학생 등 1,000여 명이 참석한다.

    보훈처는 “특히 이번 기념식에는 80주년을 기념하여 ‘부모형제의 사랑보다 더 굳은 나라사랑’을 강조한 의사의 가르침을 되새겨 사회통합과 나라발전에 더욱 매진하자는 대통령의 특별메시지가 전달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충남 예산 충의사에서는 오전 10시에 예산군 주관으로 구본충 행정부지사 등 각계인사, 월진회원, 시민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다례가 진행되며, 28~29일 양일간에는 매헌 윤봉길 문화축제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