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안보정상회의 기간 내내 릴레이 정상회담으로 ‘분위기’ 조성중국·러시아 비롯 각국 북한 로켓 계획 반대 목소리 이끌어내
  • 이번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표정은 시종일관 편하지 못했다. 이따금 말을 건네는 각국 정상들에게 웃음을 지으며 화답하긴 했지만,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럴 만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권을 잡은데 대한 불편한 속내가 표정으로 드러난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후진타오 주석은 이번 방한에서 대부분 시간을 침묵으로 보냈다. 한-중 정상회담 이후 가진 오바마 대통령과의 회담을 제외하면 정상들과의 양자 회담은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과의 회담뿐이었다.

    특히 26일 이명박 대통령과 벌인 한·중 정상회담에서 혈맹인 북한에게 장거리 미사일 추진 계획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이후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후진타오 주석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중국 지도부도 (북한의 로켓발사 계획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며 북한 측과 지속적으로 소통, 중지시키는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북한의 로켓 발사 계획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변화된 모습이다.

    중국의 태도 변화는 곧 북한에 대한 전 세계적 압박의 현실화로 이어졌다. 믿었던 우방국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아예 북한의 로켓을 ‘미사일’이라고 단정했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기 이전에 북한 주민을 먼저 먹여 살려야 한다”며 강도 높은 발언도 이어갔다.

    결국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북한 장거리로켓 발사=안보리 협정 위반’이라는 공식이 성립됐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최대 성과로 평가되는 대목이다.

  • ▲ 이명박 대통령이 26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차 방한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뉴데일리
    ▲ 이명박 대통령이 26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차 방한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뉴데일리

    ◆ 특유의 몰아붙이기 스킬로 분위기 조성

    이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북한 압박을 향한 세계적 공조를 얻기에 유리한 분위기 조성에 특히 신경 썼다. 기자들은 이를 이 대통령 특유의 ‘몰아붙이는 여론조성 스킬’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 스킬은 주효했다. 정상회담 전부터 내·외신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북 로켓 발사를 도발행위 및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규정, 단호한 발언을 이어갔다.

    정상회의 전날인 25일부터는 각국 정상들과 릴레이 회담으로 분위기를 이어갔다. 이 대통령은 이번 회의 기간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총 27개 국가·국제기구 28명의 정상급 인사와 정상회담을 벌였다.

    후진타오 주석의 최근 정치적 상황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올 가을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에게로 권력이양을 앞둔 후진타오 주석 입장에서는 국가 간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발언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호전적이란 비난을 받고 있는 북한 편을 들다가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이용한 전략이었다.

  • ▲ 이명박 대통령이 25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차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뉴데일리
    ▲ 이명박 대통령이 25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차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뉴데일리

    ◆ 척척 손발 맞은 ‘오바마’, 한-미 정상 회의 주도

    이번 정상회의에서 우리나라가 거둔 성과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역할도 컸다. 후진타오 주석 등 각국 정상들과의 활발한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압박 분위기를 조성한 일등 공신은 오바마 대통령이었다.

    작심한 듯한 북한핵과 로켓발사에 대한 ‘강경 대응’ 발언을 계속 이어간 것도 큰 도움이 됐다. 한미 정상회담과 한국외대 특강에서의 “북한은 계속 이대로 갈 수도 있지만 우리는 모두 그 길의 끝을 잘 알고 있다. 더 이상 북한의 도발에 대해 보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세상은 끝났다”는 발언은 북한 뿐 아니라 각국 정상들에게도 뚜렷한 메시지로 전달됐다.

    특히 방한 첫 일정으로 비무장지대(DMZ)을 찾은 것은 북한에게는 ‘위협’으로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25m 떨어진 초소에서 망원경으로 본 북한을 “50년간 발전이 완전히 사라진 국가”라고 말한 것은 내·외신을 통해 주요 기사로 다뤄지기도 했다.

    공식일정인 정상회의에서 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협력·공조는 빛을 발했다.

    이 대통령이 개막사를 통해 “핵무기 없는 세상과 핵테러없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고 험난하다. 그러나 여기 모인 정상들이 정치적 의지를 결집하면 이러한 꿈을 실현하는 것을 앞당길 수 있다”고 운을 떼자 오바마 대통령은 “핵안보를 위해 각국 정상들이 단순히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보여야 한다”며 호흡을 맞췄다.

    오바마 대통령은 6시간 동안 진행된 마라톤 회의 내내 의장국 정상인 이 대통령과 바로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회의를 주도했다.

  • ▲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과 국제기구 대표들이 공식 일정을 모두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의장국 정상인 이명박 대통령은 제일 한 가운데 섰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 옆에 자리 했다. ⓒ 뉴데일리
    ▲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과 국제기구 대표들이 공식 일정을 모두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의장국 정상인 이명박 대통령은 제일 한 가운데 섰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 옆에 자리 했다. ⓒ 뉴데일리

    ◆ 전 세계가 우리 편, 북한 과연 움직일까?

    중국과 러시아마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계획에 반대 입장을 밝힘에 따라 향후 북한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더욱이 북한 입장에서는 강력한 혈맹인 중국 주석의 공식 발언을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를 어떻게든 완성시키고자 하는 북한 입장에서는 외부적 도발만이 해결책으로 보고 있다는 분석 역시 무겁게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 철회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대북전문가 사이에선 날씨가 좋을 경우 이르면 4월 12일쯤 북한이 로켓 발사를 강행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4월 15일 태양절)을 전후해 내부 단속을 위한 전략을 준비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북한에 대한 전 세계적 협력·공조 체제가 구축됐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로켓 발사 여부는 아직 미지수지만, 만약 이를 감행할 경우 북한에 가할 수 있는 제재 조치는 더욱 강화돼 북한 역시 쉽게 결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