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의원’, ‘탈북자의 대모’라 불리는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휠체어를 타고 비행길에 나섰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19차 유엔인권이사회에 참석해 탈북자 북송 문제를 제기하고 국제 사회의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지난 2일 탈북자들을 위해 단식투쟁을 하던 중 탈진으로 쓰러진 박 의원은 여전히 “탈북자들을 구할 수 있다면 나 하나 쯤은 죽어도 좋다”면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든든한 지원군도 생겼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안형환, 이은재 의원이 동행했다.

    박 의원은 인권이사회에 참석 중인 각국 대표단과 유엔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탈북자 북송의 인권 침해를 온 세계에 고발한다. 한국 의원들이 탈북자 보호를 위해 집단으로 국제회의장을 찾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의원은 한국의 민간단체 회원이 14일 제네바 유엔 본부 앞 광장에서 여는 ‘강제북송 금지 촉구’ 집회와 거리 행진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박선영 의원의 제네바 일정을 <뉴데일리>가 밀착 취재했다. <편집자 주>

    [제네바=김태민 특파원]

    #1. 3월12일 오전 9시(이하 현지시간)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유엔 인권이사회(UNHRC)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논의되는 날이었다.

    출입증을 받기 위해 인권이사회 건물로 들어섰다. 주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 이주일 서기관의 도움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출입증을 받을 수 있었다. 출입증을 받고나니 슬슬 긴장되기 시작했다.

    다른 기자들이 모두 출입증을 발급 받기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10시 조금 넘어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이 서기관은 “북한 인권 문제는 10시 20분부터 다뤄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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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북한의 서세평 대사ⓒ
    ▲ 북한의 서세평 대사ⓒ

    회의장은 각국 대표단들과 내외신 기자들로 자리가 꽉 차 있었다. 주 스위스 박상기 한국대사의 자리를 확인했다. 그 옆에 서세평 북한대사의 모습이 보였다.

    마르주끼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보고서를 발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유엔 측 경호원들은 수시로 기자들의 출입증을 확인했다.

    #2. 3월12일 오전 10시20분

  • ▲ 북한의 서세평 대사ⓒ
     
  • ▲ 북한의 서세평 대사ⓒ

    다루스만 보고관의 발표가 시작될 때 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을 비롯해 김형오 전 국회의장, 새누리당 안형환, 이은재 의원 등도 회의장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이들은 다루스만의 보고 내용을 귀기울여 들었다.

    보고가 끝나고 서세평 북한대사가 입장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대표단은 서 대사의 발언을 주의 깊게 들었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특별보고관의 보고는 조작된 정치적 책동에 불과하다..."

    서 대사의 발언이 끝났다. 의원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앞서 의원들은 중국, 북한 등 각국 대표단들을 만나 탈북자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겠다고 수차례 밝혀왔다.

    안형환 의원은 “입구에서 북한 대표단을 기다릴 것이다. 탈북자 문제 등 북한 인권에 대해 반드시 대화를 나누겠다”고 했다.

    의원들은 서세평 대사가 잘 보이는 곳에 서 있었다. 회의장 입구에서 가까운 곳이어서 서 대사가 회의장을 빠져나가려면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만 했다.

  • ▲ 북한의 서세평 대사ⓒ
     
  • ▲ 북한의 서세평 대사ⓒ

    하지만 박선영 의원은 아예 서세평 대사가 앉아있는 곳으로 향해 걸어갔다. 그의 표정은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 지난달 21일, 그가 단식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를 따라다녔지만 그의 이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너무나도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가 서울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단식하는 동안 수많은 탈북자들이 그곳을 찾았다.

    아들이 북송됐다는 한 탈북자는 그의 텐트 안에서 울면서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70대의 한 탈북자는 매일 그곳을 찾아 박 의원에 꽃과 화분을 전달하기도 했다.

    당시 그 옆에서 기자가 본 탈북자들의 애절한 사연은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절절해졌었다. 하물며 그 이전에 수년 동안 북한 인권 문제를 다뤄온 그가 어떤 심정일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모두들 침착해지려고 애쓰고 있었다. 안형환, 이은재 의원은 “기다리자. 아무리 그래도 소란을 피워서는 안된다”며 박선영 의원을 진정시켰다.

    안 의원은 기자에게 “대한민국을 대표해 왔기 때문에 예의를 갖춰야 한다. 최대한 차분하게 우리들의 의사를 전달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 ▲ 북한의 서세평 대사ⓒ
     
  • ▲ 북한의 서세평 대사ⓒ

    서세평 대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표단은 서 대사에 “잠시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서세평 대사는 묵묵부답이었다. 무서울 정도로 차분한 표정이었다. 의원들과 눈빛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입구만을 바라보고 걸었다. 북한 수행원들이 대표단을 제지했고 서 대사는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대표단의 목소리는 그래서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탈북 난민들을 잡아가서는 안됩니다”는 안형환 의원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박선영 의원은 “탈북자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지 마세요”라고 했다.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북한 수행원들은 점차 격렬하게 대표단을 막기 시작했다. 북한의 한 수행원은 “왜 이곳까지 와서 행패를 부리느냐”고 했다. 그 과정에서 이은재 의원은 뒤로 밀려나며 넘어졌다. 이 의원은 다시 일어나서 계속 서세평 대사를 따라갔다.

    한 유엔 경호원은 안형환 의원을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또 다른 경호원은 안 의원의 왼쪽 팔을 뒤로 꺽었다. 순식간이었다.

    박선영, 이은재 의원은 회의장 문 밖에서도 계속 서세평 대사를 따라다니며 대화를 요구했다. “탈북자를 탄압하면 안됩니다”, “북송은 절대 안돼요”, “사람들을 잡아들이지 마세요”라고 했다.

  • ▲ 북한의 서세평 대사ⓒ
     
  • ▲ 북한의 서세평 대사ⓒ

    박 의원은 “수용소를 폐지하세요. 그런 법이 어디있습니까”라며 서세평 대사를 계속 따라갔지만 서 대사는 한마디 말도 없이 자리를 떠났다.

    안형환 의원과 이은재 의원은 서 대사의 몸을 붙잡았다는 이유로 유엔 경호원들에 의해 격리됐다.

    그 와중에도 각국 외교단과 내외신 기자들, 민간단체 관계자들이 많이 모인 것을 본 모양인지 그는 “탈북자를 살립시다!(Save north korean refugee!)”라고 구호를 외쳤다.

    이은재 의원의 손이 새빨가져 있었다. 그는 “북한 수행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발로 차고 손을 비틀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의 다리는 실제로 상처가 나 있었고, 손은 퉁퉁 부어 올랐다.

    이 의원은 “처음에는 수행원들이 중국말을 썼다. 그래서 중국 사람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그들이 흥분하면서 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경호원들과 함께 유엔 의무실로 향했다.

    회의장이 술렁거려 회의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또 유엔 경호원들이 회의장 입구룰 막았다. 기자들은 길게 줄을 섰다. 안형환 의원은 30분간 격리됐다가 유엔 의무실로 향했다. 그는 “팔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북한 측에 더 많은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데 아쉽다.”고 했다.

    #3. 3월12일 오후 2시

  • ▲ 북한의 서세평 대사ⓒ

    주 스위스 한국대사관에서 잠시 대기하다 다시 국회 대표단의 기자회견이 열리는 유엔본부로 이동했다. 기자회견장에 도착하자 내외신 기자 30여명이 있었다.

    김형오 전 의장은 "기자회견에 4명이 왔어야 하는데 2명의 의원이 부상을 당해 오지 못했다"고 운을 뗐다.

    "오늘 다루스만의 보고가 끝난 후 북한 대표가 반론을 폈다. 그는 보고 내용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근거가 없고 왜곡됐고 거짓이라는 주장이었다. 우리는 이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겠다며 북한 대표에게 대화를 하자고 요구했다." 회의장에서 북한 대표를 기다린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북한 수행원이 우리 여성 의원을 발로 차고 손을 다치게 했다. 이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는 실종되고 생명마저 내팽개쳐진 최악의 인권 사각지대”라며 “목숨을 걸고 죽음의 땅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가족을 구해 달라. 당신의 친구들을 살려 달라”고 호소했다.

    대표단은 북한의 참혹한 인권상황을 담은 동영상과 사진을 공개한 뒤 탈북자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부탁했다.

    또 대표단은 다루스만 특별보고관과 로버트 킹 미국 대북인권특사와 차례로 만나 중국이 탈북자의 강제북송을 중단하도록 국제적인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설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