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깡패 조직의 행동대장들이 어느 식당에서 만나 대화를 나눕니다. “너나 나나 조직에서 넘버 쓰리 아니냐” 이에 화가 난 한석규가 들고 있던 포크로 탁자를 내리치며 “어떤 새끼가 넘버 쓰리래, 내가 넘버 투야, 씨발”. 이에 당황한 상대조직 행동대장은 “흥분하지 마, 넘버 투나 넘버 쓰리나 다 똑같은 거야 결국은 넘버 원이 다 해쳐먹는 세상이잖아” 오래 전에 개봉했던 넘버 쓰리라는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한 사람의 아래요 만인의 위라는 뜻일 턴데요, 왕조시대 재상(영의정)을 일컷는 말이라고 합니다. 위로는 임금 한 사람만 섬기면 되고 아래로는 만인을 다스린다는 의미이겠지요. 위 영화의 대사를 빌리자면 내가 넘버 투야 정도 되겠지요. 

     다른 말로 영원한 제2인자라고도 하는데요, 중국의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이 아마 영원한 2인자의 대표급 정도는 될 것입니다. 한갓 변방의 부족장 정도에 불과한 유비를 도와 천하통일 직전까지 가는 혁혁한 공을 세운 제갈량의 능력으로는 넘버원이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그는 끝까지 넘버 투를 고집합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유비는 아들 유선이 미덥지 않으면 그를 제치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라고 제갈량에게 권유를 하지만 제갈량은 눈물로 사양을 하면서 유선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해석하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번 참모는 영원한 참모일 뿐이라는 너 자신을 스스로 잘 안 것인지 자기 자신이 보스의 기질이 없고 참모로서만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안 것인지 하여간 끝까지 넘버 투 참모의 역할을 고수합니다. 

     마우쩌뚱(모택동)과 함께 중국 공산당혁명을 주도하여 공산정권을 세운 저우언라이(주은래)도 영원한 제2인자로 기억됩니다. 배경 좋고 인물 좋고 학식이 좋은 그였지만 언제나 한 발 뒤에서 마오를 보필하며 30여년간 총리를 역임했다고 하니 영원한 제2인자라는 호칭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영원한 제2인자의 모습은 멀리 중국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바로 김종필씨입니다. 박정희를 도와 혁명을 주도하고 중앙정보부장을 거쳐 국무총리까지 오른 그였지만 언제나 그림자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주군을 향한 충성심과 보필로 오랫동안 제2인자의 역할을 다했는데요, 주군의 사후에 제1인자가 되려고 그 숱한 노력들을 다해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2인자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었지요. 그래서 그를 두고 한 번 참모는 영원한 참모라는 말까지 다 생겼었지요. 

    4.11 총선을 앞두고 요즘에 민주통합당의 문재인씨가 부산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선전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단순히 국회의원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내친 김에 대권까지 염두에 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문재인씨를 좋게 평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훤칠한 외모에 다소 순진해 보이는 것 같은 미소에 노무현정권 기간 동안 대다수의 측근들은 그 숱한 화마와 구설수에 올라 문제를 일으키고 난리법석을 쳤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반듯한 삶을 살아온 그이기에 말입니다. 비록 주군을 잘못 보필해 그 주군이 수치스럽고 파렴치한 모습으로 각인되게 했다는 책임론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지만 문재인이라는 한 자연인으로 볼 때는 호감이 가는 편입니다. 

     그러나 그가 지금 일인지하 만인지상 넘버 투의 자리를 박차고 넘버 원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것에는 반대를 합니다. 한번 참모는 영원한 참모라는 다소 고리타분한 주장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모의 씨앗이 따로 있고 보스의 씨앗이 따로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한 조직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 그 분야에서 특출한 능력을 보여주었다든가 온갖 고난과 역경을 뚫고 언 땅에서 새싹이 돋아나듯 힘차게 약진하는 리더쉽이 있어야 가능하리라는 생각입니다. 

     문재인씨는 오랫동안 주군의 등 뒤에서 보필하는 것에 너무도 익숙해져왔습니다. 커다란 조직을 위해서 스스로 고뇌에 찬 결단을 내려 본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실패이든 성공이든 불문하고 말입니다.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풀어주고 민심의 풍향을 살펴 이것저것 꼼꼼하게 실수 없이 챙겨주며 주군의 결단만을 기다렸다가 명을 받아 행해온 경험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서 단 한 번 승리했다고 대한민국이란 거대조직을 이끌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고 믿는다면 크나큰 오산이며 대한민국을 수렁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문재인 자신을 위해서도 대한민국이란 거대 공동체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중국의 주은래같이 아름다운 영원한 넘버 투로 기억되는 것만도 못할테니까요. 

    문재인씨가 진정으로 넘버 원이 되고 싶으면 이번 총선에서 쓰디 쓴 패배를 맛보고 나서도 그 다음 기회에도 굴하지 않고 우뚝 섰을 때 그때 가서 다시 도전해 보는 것이 지도자의 길을 걷는 숙명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역경을 디디고 일어선 지도자라야 국민이 안심하고 나라를 맏길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죽어가는 주군 앞에서 그 아들에게 눈물로 충성을 맹세하던 제갈량처럼 처신하라는 주문은 21세기에 너무 잔혹한 주문일테지만, 주군의 원수를 갚겠다며 한풀이나 하려고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란 거대한 공동체가 어느 한 개인 한풀이 씻김굿 굿판으로 전락하는 것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새끼가 넘버 쓰리래, 내가 넘버 투야, 씨발’, 하던 어느 조폭 중간보스의 절규처럼 넘버 투에 오른 것만 해도 용하고 잘한 일입니다. 그 자리도 자랑스럽고 대견한 자리입니다.  

    국민들 뇌리에 넘버 투라는 것이 완전히 지워져야 넘버 원에 오를 수 있을 겁니다. 김종필씨 정치 여정에서 보듯이 오랫동안 넘버 투로 각인돼 왔으니 넘버 원이 들어설 자리는 없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