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정부의 탈북자 강제북송 항의하는 단식 중단식 11일째…탈북자, 자유선진당, 새누리당 의원들도 일부 동참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지난달 21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박 의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은 탈북자들을 색출해 체포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며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만큼 스스로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는 보여주기 위한 단식, 정치적인 단식은 하지 않겠다면서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탈북자들의 강제북송을 막아 내겠다고 강조했다.

    그의 목숨 건 사투를 뉴데일리가 밀착 취재했다. <편집자주>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2일 오후 2시 30분 경 서울 종로구 효자동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11일째 단식을 이어오던 중 실신했다. ⓒ 뉴데일리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2일 오후 2시 30분 경 서울 종로구 효자동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11일째 단식을 이어오던 중 실신했다. ⓒ 뉴데일리

    #1. 3월2일 오후 2시25분경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결국 실신했다.

    순식간이었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남은 힘을 짜내려 했으나 휘청이는 몸을 끝내 가누지 못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식사도 하지 않았으니 탈진은 당연한 결과였다.

    누가 옆에서 부축을 해 주지 않으면 혼자 화장실도 가지 못할 정도로 체력이 소진된 상황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한 눈에 봐도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한 시민은 그의 손을 부여잡고 "의원님 왜 이러십니까. 그만 식사하세요"라며 눈물을 쏟아냈다.

    지켜보던 기자도 가슴이 뭉클했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이 희미하게 떨릴 정도였다. 하얗게 샌 그의 머리카락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20분이 지나 박 의원은 서울대 병원으로 이송됐다.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2일 오후 2시 30분 경 서울 종로구 효자동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11일째 단식을 이어오던 중 실신했다. ⓒ 뉴데일리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2일 오후 2시 30분 경 서울 종로구 효자동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11일째 단식을 이어오던 중 실신했다. ⓒ 뉴데일리

    11일 째 서울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중국 공산당 정부의 탈북자 강제북송에 반대하는 단식농성을 벌이던 중이었다.

    이날 오전부터 박 의원의 텐트는 비를 막기 위해 비닐로 둘러씌워 있었다. 비도 내리고 바람도 다소 강하게 부는 등 날씨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박 의원은 오전 내내 제대로 앉아보지도 못하고 누운 채 앓아 누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의원은 오후 열리는 집회에 꼭 할 말이 있다며 텐트를 나섰다. 탈북자들의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2일 오후 2시 30분 경 서울 종로구 효자동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11일째 단식을 이어오던 중 실신했다. ⓒ 뉴데일리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2일 오후 2시 30분 경 서울 종로구 효자동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11일째 단식을 이어오던 중 실신했다. ⓒ 뉴데일리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2일 오후 2시 30분 경 서울 종로구 효자동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11일째 단식을 이어오던 중 실신했다. ⓒ 뉴데일리

    그는 2시에 열린 '중국 정부의 탈북자 북송 반대를 위한 문화제'에서 탈북자들이 또 붙잡혔다고 전했다.

    "어제(1일) 밤 탈북자 4명이 중국과 라오스 국경지대에서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모와 생후 20일 된 아이 등 가족 3명과 20살 청년 1명이다. 지금 현장에 아이의 할머니와 청년의 어머니가 와 계신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박 의원은 마이크를 가까이 잡고 발언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어 잘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보좌관이 다시 한번 박 의원이 말한 내용을 전달했다.

    이후 사회자가 탈북자들을 소개하는 도중에 박 의원이 옆으로 쓰러졌다.

    다행히 바로 옆에 사람이 있어 바닥으로 쓰러지진 않았다.

    그러자 한 시민이 곧바로 구급차를 보내달라고 119에 신고했고, 10분 여뒤 구급대에 의해 서울대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가 실신하자 문화제에 참가한 사람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 자리에 있었다면, 박 의원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박 의원 측 관계자는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현재 병실에서 안정을 찾고 있지만 아직 아무 말도 하지 못하신다. 박 의원의 건강상태에 대해선 병원 주치의가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걱정이 뭍어났다.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자유선진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박 의원의 피맺힌 호소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선진당은 "비록 박선영 의원이 탈진해 쓰러졌지만,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힘찬 대열은 결코 중단될 수도, 중단되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박 의원이 의연하게 보여준 헌법상 우리 국민인 탈북자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배려의 정신은 이제 우리 국민의 가슴 속에 고스란히 각인됐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중국정부에 더욱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사태해결에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정치권도 일치단결하여 탈북자 인권수호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2. 3월2일 저녁 7시경 

    박 의원이 쓰러진 뒤 약 5시간이 지났다. 서울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는 박 의원의 텐트가 치워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박 의원의 텐트가 있던 장소로 모여들었다. 

    박 의원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박 의원이 입원 중 첫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생후 20일 된 아기와 산모를 구해달라. 두 가족은 모두 남한에 가족이 있다. 이들을 체포, 북송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나라는 세상에 없다. 언론인 여러분이 그들을 구출해주기 바란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중국대사관을 보니 불빛이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파 탈북을 결심했다. 몇몇 사람들은 탈북에 실패했고 수용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래도 목숨을 걸고 탈북해 대한민국으로 왔다."

    기자가 그동안 들은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렇다.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 아는 이야기도 탈북자들을 직접 만나서 한번 들어보라. 

    딱 한 번만 그들을 만나본다면, 누구나 눈물이 날 것이고, 이 자리에 저절로 오게 될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배고팠었는지, 얼마나 모진 고문을 당했었는지 눈으로 '생생히' 확인해보라.

    탈북자들은 '도와 달라'고 부탁하는게 아니다. '목숨만 살려달라'고 구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몇 십년간, 그들을 외면했다. 그래서 그들이 박선영 의원을 애타게 찾은 것이고 '탈북자들의 대모'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박 의원은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단식 투쟁을 벌이다가 지금은 생사를 헤메고 있다. 

    ------- 박선영 의원이 쓰러지기 하루 전날 -------

    #3. 3월1일 오후 1시경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박 의원은 단식 10일째인 전날(1일)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는 이날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러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편안하게 눕지도 못했다. 누웠다가도 한 10분 정도가 지나고 금방 다시 앉았다.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게 분명했다.

    “어제 국경지역 동북3성에서만 9명, 중국과 라오스, 태국 3각지역에서 4명이 잡혔어요. 꼭 좀 전해주세요.”

    더 이상 말을 하기가 힘들어 보였는데도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기자에게 알리려 했다.

    누가 말려야 했다. 얼마 못가 분명 실신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박 의원은 “탈북자들에 대해 중국 정부가 근본적으로 변할 때까지 계속 단식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얼마 전 보위부 요원 30명과 통역 5명을 중국에 보내 탈북자의 신병을 넘겨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보위부원들은 우선 탈북자들과의 면접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면접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격앙된 북한 보위부원들은 중국 당국에 협박성 발언까지 하며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도 말했다.

    이어 "조선족 자치주인 옌지와 룽징에 잡혀있던 탈북자 10여명은 북송됐지만, 다른 지역의 탈북자들이 추가로 북송되지는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은 3.1절이었다.

    #4. 3월1일 오후 1시10분경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대한민국 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다.

    태극기를 든 사람들은 만세 삼창을 외치며 태극기를 휘날렸다.

    범민족통일국민화합운동단체총연합회 유일신 총재는 “3.1 운동은 종교와 지역, 남녀노소, 신분과 지위의 구별 없이 온 민족이 하나가 된 최대 규모의 민족 독립운동이다. 이를 계승해 탈북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퍼포먼스로 최봉일 화백은 "3.1절 기념과 탈북주민 강제 송환반대. Repatriation is Death, Stop forced repatriation(송환은 죽음이다. 강제 송환을 중단하라)"란 붓글씨를 정성들여 썼다. 그는 "소식을 듣고 왔다. 마음이 아프다. 같은 동포인데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박 의원의 '단석 농성'에 조전혁 의원도 가세했다.

    앞서 새누리당은 신지호, 차명진, 권택기, 김용태, 박준선, 이은재, 조전혁 의원 등이 하루 한 명씩 단식 농성장을 찾는 식으로 박 의원을 격려하기 위한 '릴레이 동조 농성'을 벌이기로 밝힌 바 있다.

    조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먼저 했어야 한다. 박선영 의원이 혼자 싸우도록 놔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취지를 밝혔다.

    "북한 인권 문제만 나오면 진보세력이 왜 침묵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박선영 의원은 체력이 바닥났다. 의료검진을 받으셔야 한다"고도 했다.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탈북자 A씨가 화분을 들고 왔다. 그는 “박선영 의원님께 힘을 드리고 싶어 사왔다. 우리 탈북자들에 너무나도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탈북자들이 북송되면 가차없이 총살을 당할 것이다. 중국도 이를 모르진 않을텐데 북송시키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2007년 탈북한 그는 아들이 요덕수용소에 수감 중이라고 했다. 그동안 많은 정치인들에게 아들을 구해달라고 호소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은 박 의원 뿐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몇날 몇일을 잠을 못이루면서 지냈다"고 전했다.

    탈북자 B씨는 “우리 탈북자들을 대신해서 이렇게 싸우시는 것을 보고 왔다. 힘내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 의원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노인회 이심 회장은 "앞으로 좋은 일 많이하셔야 하는데 건강을 챙기셔야 한다"며 담요를 건네기도 했다.

    대한민국사랑회 김길자 회장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와서 너무 말을 많이 거신다. 내가 입구에 앉아 있어야겠다"며 입구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5. 3월1일 오후 2시경

    집회가 연달아 계속 이어졌다.

    2시부터는 '탈북자 북송중지 촉구 문화제'가 열렸다.

    부모를 따라나온 어린 아이들도 엄숙할 때를 아는지 진지한 표정이었다. 이곳에 온 사람들 거의 모두가 그랬다.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고등학생, 외국인의 발언도 있었다.

    유지훈(충암고, 19)씨는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수많은 가족과 친척들이 눈물을 흘린다. 탈북자들도 그러하다. 북한에 살고있는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도 그러하다"고 했다. 유 씨는 전날에도 이곳을 찾아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유 씨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강대국인 중국이 인권 문제에 너무 무관심하다. 선진국으로 발돋음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고 했다. 그는 '중국의 강제북송 문제'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 "국민들의 참여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국력"이라고 했다.

    대만에서 온 양첸하오(청궁대, 22)씨는 "탈북자에 대한 관심이 많아 한국을 자주 찾는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탈북자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는 "탈북자들이 선양의 일본 총영사관에 들어가려다 중국 공안에게 연행되는 장면을 중학교 1학년때 TV로 본 후 탈북자 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지난해 5월에는 학과 세미나에서 '탈북자의 삶과 인권'이란 논문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공연도 이어졌다.

    김혜원 학생(서울대, 국악과)은 "우리들의 마음이 꼭 전달됐으면 좋겠다. 진심을 담아 부르겠다"며 피리를 연주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특히 북한의 인권 실상을 고발한 뮤지컬 ‘언틸 더 데이(Until The Day)’에 출연한 배우 김영훈, 양정윤씨는 무대 대신 이곳을 찾아 자리를 빛냈다.

    '언틸 더 데이'는 인민군 협주단에서 무용배우로 13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는 탈북자 김영순 씨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국내외 인권단체를 통해서 입수된 미발표, 미공개 자료들,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를 드러낸 영상과 증언들도 공개된 뮤지컬이다.

    #6. 3월1일 오후 3시경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기어코 텐트에서 나왔다. 다리를 질질 끌듯이 걸어나왔다.

    서 있기도 힘든 박 의원이었다. 누가 부축해주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납북자가족모임,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강제북송 중단하라"고 목청을 높였을 때였다. 박 의원은 이들의 구호를 따라하며 태극기도 흔들었다.

    박 의원을 본 시민들은 그의 초췌한 모습에 눈시울을 붉혔다. "단식을 가만둬야 한다"며 펑펑 우는 탈북자 할머니도 있었다. 박 의원의 텐트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복잡하고 어수선했지만, 박 의원에 가까이 다가서는 사람은 없었다. 잘못해서 부딪히기라도 할까봐 다들 조심했기 때문이다.

    단체들은 “탈북자 강제북송을 막아달라는 국내 탈북자들의 애타는 호소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중국 당국이 이를 외면하고 탈북자 강제북송을 강행한 데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열흘째 단식을 이어가는 박선영 의원의 중국 비자까지 ‘통 크게’ 거부한 중국은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의 ‘통 큰’ 보복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북송이 강행되는 순간 중국대사관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밝히는 저주의 촛불로 가득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북한인권단체인 '한반도평화국제연합'의 회원들도 찾았다.

    이들은 지난달 25일, 북한에 구호물자 풍선을 보내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단체의 이주성 대표는 북한 평양과 중국을 오가며 장사했던 무역꾼이었다. 그는 "북한에서 돈 벌다가 말 한마디 잘못하면 바로 처벌받는다. 돈 뜯어내려고 그러는 것이다. 재산 몰수되고 처형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라고 말했다.

    조셉 리(36)씨는 "북한 인권을 위해 일하다보면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똑같은 사람인데 왜 북한 사람들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사나.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서툰 한국말로 말했다.

    박보정(24)씨는 "언니를 통해 이 일에 참가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북한의 실상을 알게됐고, 지금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박 씨는 트위터, 페이스북을 가르쳐주며 자신들의 활동에 참가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7. 3월1일 오후 4시경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이회창 전 대표가 또 찾아왔다.

    박 의원이 단식을 하고 7번째다. 그는 지난달 29일 '1일 동반 단식'을 하기도 했다.

    그는 누구보다 박 의원을 걱정했다. "박 의원의 건강이 정말 위급한 상황인데도 의지가 워낙 강하다"고 했다. 그는 보좌진과 이야기를 나눈 뒤 텐트 문을 닫고 박 의원과 10여분 간 대화를 나눴다.

    #8. 3월1일 오후 7시경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텐트 안. ⓒ뉴데일리

    날이 어두워지자 촛불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

    이날은 100 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

    20대 중국 여성은 이 자리에서 "저는 중국인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이 문제를 인도주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 했다.

    이날 촛불 문화제에도 외국인이 눈에 띄게 많았다. 이들은 "Save My Friend(내 친구를 구해주세요)'란 팻말을 들고 있었다.

    미국에서 온 한 여성은 "탈북자 문제를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고 했다.

    한 탈북 여성은 "우리가 탈북해서 죄송하다. 괜히 한국으로 와서 분란을 일으키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왔다"며 울부짖었다. 참가한 사람들 모두 눈물을 흘렸다.

    외국인들이 "한국은 촛불 문화제로 유명한데 왜 사람들이 없느냐"고 물었다. 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