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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사망에 따라 우리 정부의 대처 방안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은 후계자 김정은으로 권력 이양을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북한 체제에 급변 사태를 가져올 가능성, 후계자인 김정은이 권력 장악을 위해 군사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 세습 독재의 종언을 가져올 가능성 등 수많은 위험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 5년차를 앞둔 이 대통령은 이 모든 가능성들에 대비하면서 한반도를 급습한 위기 상황을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할 무거운 책임을 떠안게 됐다.
특히 북한과 적대적 관계를 계속 유지해온 이명박 정부가 이번 사태에 어떤 '처방'을 내릴지에 따라 향후 정치·사회·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현재 청와대를 비롯한 모든 정부 부처는 비상경계태세에 돌입, 향후 대처 방안에 고심 중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내부 상황이 긴박하다. ‘최악의 경우 예상되는 북한의 무력도발까지 주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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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사망 소식이 알려진 19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
◆ 한반도 정세 대격랑
김정일 사망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대격랑 속에 휘말리고 있다.
한반도 정세 흐름의 중심축을 형성해온 북한 최고실권자가 돌연 급사함으로써 향후 정세는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시계제로의 형국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 북한 상황을 고려할 때 지난 1994년 김일성 사망보다 더 심각한 혼란이 일어날 수 있는 메가톤급 충격파를 예측하고 있다.
우선 남북관계와 북핵 6자회담 재개 흐름은 '전면 스톱'되고 북한 내부체제 정비를 둘러싼 극도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동북아 정세 흐름을 지배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개돼온 모든 이슈들이 김정일 사망에 묻혀 버리는 셈이다.
당장 초미의 현안으로 떠올랐던 북핵 6자회담 재개 흐름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특히 6자회담 재개를 공식화할 것으로 예상됐던 22일 중국 베이징 북미 3차대화도 무기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조심스럽게 대화가 모색되던 남북관계 역시 김정일의 사망 여파로 중단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 불안정한 北 체제…3대 세습 강행
일단 올해 29세(북한측 주장)인 김정은은 부친이 보여줬던 것과 마찬가지로 '3년상(喪)'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충성심을 내부에 과시함으로써 권력의 공고화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정은의 의도대로 권력의 기반을 다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우선 2009년 후계자로 내정되고 2010년 당 대표자회를 통해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올랐지만 김정은이 권력 승계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측 주장에 따르면 김정은 1982년생으로 올해 29세에 불과할 뿐 아니라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김정일의 후광 속에서만 활동했지 단독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국정을 운영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일각에서는 북한 내부가 당분간 '권력공백기'를 거치며 군부의 '쿠데타' 등 돌출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군부가 김정은을 견제하고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려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상황에 따라 북한의 붕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상정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만약 북한 내부의 불안정성이 표출될 경우 남북한 사이에 군사적 긴장은 극으로 달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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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김정일이 17일 오전 8시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김정일이 중국방문을 마치고 베이징역에서 중국의 지도간부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모습. ⓒ 연합뉴스
◆ 정부, 대북 기조 유지하며 한미 동맹 강화할 듯
현재까지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조문단 파견 여부’다. 이 문제는 김일성 사망 당시에도 큰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이 이번에는 “외국의 조의대표단은 받지 않기로 한다”고 공식 발표함에 따라 큰 문제로 불거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북한 외에 미·중·일·러 등 한반도 주변 4강의 외교적 대응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동북아 안보의 중심무대인 한반도 정세가 유동화됨에 따라 미·중을 중심으로 '안정적 관리'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지만 북한 내부상황과 전략적 이해에 따라 서로 입장을 달리하며 치열한 이해각축을 벌일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오후 2시께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통해 김정일 사망과 관련한 제반상황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에서 이 대통령은 한미 양국이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했다고 박정하 대변인이 전했다.
청와대는 또 김일성이 사망했을 당시 상황과 비교해 예상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꼼꼼히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김정은이 북한 권부를 완벽하게 장악한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현 상황은 이 대통령의 향후 행보를 더욱 신중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비상 국면인 만큼 무엇보다 이 대통령의 선결 과제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미 내년을 '강성대국 원년'으로 선언해놓은 북한이 김 위원장의 사망을 계기로 국지 도발을 할 가능성이 농후한데다, 만의 하나 전면적 도발을 해올 가능성까지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군사적 대비와 별개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 노력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활용하겠지만, 기존 대북 기조와 원칙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우선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경제 재건을 지원하겠다는 기존의 '그랜드 바겐(북핵 일괄타결)' 기조를 유지하면서 한미 안보 동맹 강화에도 더욱 힘을 쏟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적 목적의 회담은 하지 않는다"는 남북 정상회담 기조에도 흔들림이 없다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한편 이 대통령은 국내 정치적으로는 김정일 사망에 따른 사회 동요를 진정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필요 이상의 위기감이 번지면서 사회 구성원들과 시장이 불안 상태에 빠져 사회 혼란과 경제 위기를 자초하지 않도록 관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군과 경찰, 공무원 등에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면서도 민간에 불필요한 불안감이 번지지 않도록 위기 상황 매뉴얼에 따른 경계 근무에 만전을 기하도록 지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