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및 러시아 방문에 이어 북한과 이들 국가의 군사협력도 강화되는 양상이어서 주목된다.

    최근 북한은 중국과 나선 및 황금평 특구 개발, 러시아와는 가스관·송전선·철도 연결사업 등 주로 경제협력에 주력하는 모습이 두드러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군사협력도 그 어느때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 정부와 군 당국도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북-중, 북-러 군사협력 강화가 동북아 안정에는 물론 당장 6자회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며 대책을 주문한다.

    ◇군사협력 첫걸음 = 북한은 6·25전쟁에 참전한 중국, 러시아와 혈맹관계이지만 1990년대 초 이들 국가가 한국과 수교를 함에 따라 외교적으로 소원해졌다.

    이후 2000년과 2001년 김 위원장의 방중과 방러를 계기로 북한은 양국과 외교관계를 복원하기는 했지만 군사분야 협력은 올해 들어 두드러지고 있다.

    방북한 중국 인민해방군 리지나이(李繼耐) 총정치부 주임은 지난달 17일 김 위원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중국 군대는 실질적인 교류확대를 위해 북한과 협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앞서 8월에는 북한 전창복 인민무력부 후방총국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이 베이징을 방문, 량광례(梁光烈)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과 랴오시룽(廖錫龍) 중앙군사위원 겸 인민해방군 총후근부장 등과 회동했다.

    같은 달 중국 해군훈련함대 소속의 정허(鄭和)호와 뤄양(洛陽)호는 4박5일간 원산항을 방문해 북해함대 사령관 톈중(田中) 중장이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정명도 해군사령관 등을 만났다. 당시 북중 해군간 체육대회도 열렸다.

    중국 해군 함대가 1996년 남포항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북한 동해안 항구에 정박해 훈련을 한 것은 처음이다.

    러시아도 북한의 동북부 지역을 매개로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러시아 극동 시베리아 지역의 군사업무를 총괄하는 동부군관구 사령관 콘스탄틴 시덴코가 이끄는 군사대표단은 지난 8월 방북해 양국 해군을 비롯한 군대 간 교류를 재개하고 활성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러시아 동부군관구 사령관 공보실장 이고리 무기노프는 "러시아 군 대표단이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 리영호 차수와 러-북 합동 해군훈련을 하는 문제를 논의했다"며 "특히 공해상에서 재난을 당한 선박의 수색, 구조와 인도주의적 방향의 훈련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이어 10월에는 북한 해군 김명식 동해함대 사령관이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와 캄차카 등을 방문해 태평양함대 시설들을 둘러봤다.

    이처럼 북한의 동해 지역에서 중국, 러시아와 군사협력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이 지역이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동맹국인 미국까지 견제할 수 있는 요충지라는 점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北 비핵화에 영향? = 6자회담의 기본 골격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고 주변국이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2005년 합의한 9·19공동성명의 3항이 "6자는 에너지, 교역 및 투자분야에서 경제협력을 양자 및 다자적으로 증진할 것을 약속했다"고 명시하고, 4항에서 "6자는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한정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이라고 합의한 것은 이러한 6자회담의 프레임을 반영한다.

    문제는 북한이 중국 및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강화하면 장기적으로 6자회담의 두 축 중 하나인 안전보장이라는 유인책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미국의 핵우산 속에서 안전보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중국, 러시아의 군사적 후원이라는 우산 속에서 체제보장을 유지할 수 있게 되면 6자회담에서 한·미·일이 줄 수 있는 반대급부의 폭이 좁아져 회담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미국과 일본이 극심한 재정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당근으로 내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19일 "북-중, 북-러 군사협력이 단기간에 위협적인 수준에 도달하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저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중국의 부국강병 전략과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이 대립하는 상황이어서 더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동북아 평화를 위해 6자회담을 빨리 재개하고 안보협의체로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