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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비트겐슈타인이 생각했던 것처럼 ‘眞實을 말하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것 보다 더 고통스러운 세상’에 살고 있다. 결코 정상일 수 없고, 상식일 수 없다. 그래서 영혼이 홍역을 앓고 있다고 하는지 모른다.
밝고 아름다운 태양에 감탄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위선과 어둠에 감동하고 감사하는 세력이 오늘처럼 기세등등한 시대가 우리역사에는 일찌기 없었다. 그래서 불행한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롱펠로 詩人이 읊은 것처럼 ‘저녁에 황혼 빛이 사라지면 하늘은 낮에 볼 수 없었던 별들로 가득 차야’ 희망과 꿈이 내리는 밤이 되는 것인데 거짓과 위선의 별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으니 한국의 밤이 어찌 맑을 수 있겠는가.
거짓말과 말 바꾸기를 잘 해야 성공하는 나라,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들과 사회지도층, 그리고 기업의 부도덕성과 지식인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직하면 성공 못하는 나라, 이게 어디 말이 되는가.국가의 정체성과 가치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대통령과 정치인들에게 있고, 사회를 이처럼 부정직하고 부도덕하게 만든 책임은 지식인과 사회지도층, 그리고 타락한 기업윤리에 있다.
그리고 자신과 다음 세대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자기책임은 외면한 채 현실의 욕구불만에만 가득 차 있는 2040세대들도 결코 오늘의 부조리한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6080세대는 ‘암울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한 손에 망치 들고 다른 손에 총을 들고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여 2040세대가 누리는 부를 창출 하였다”는 趙甲濟 기자의 말처럼 6080세대는 그렇게 살아왔다.
물론 ‘時代의 가위눌림’에 아파하는 젊은이들의 절규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좀 더 理性的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아쉬움에 더해 서운해진다는 것이 건국과 호국, 그리고 산업화세대의 솔직한 심정이다.
정말 암울한 시대를 살며 미래세대를 위해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린 6080세대의 입장에서 2040세대의 고민의 성격을 뜯어보면 미안한 이야기지만 사치성 고민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過去는 未來를 위해 존재 한다고 한다. 뒤집어 말하면 미래는 과거를 먹고 자란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민족의 서사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언젠가는 반드시 망한다’고 하지 않았는가.“번영하고 있을 때에는 변화에 대비해야 하고, 역경을 겪고 있을 때에는 변화를 희망해야 한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나?’에 나오는 말이다.역경을 겪고 있던 6080세대가 변화를 희망하며 고난의 길을 헤치고 오늘의 번영과 자유를 이룩한 것처럼, 번영하는 시대를 사는 2040세대 역시 변화에 대비해 미래를 위한 또 하나의 희망을 창출해 낸다면 미래세대의 어른이 되는 것은 물론, 그것이 바로 그대들이 가려는 진정한 진보의 길이 아닐까.
보다 나은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명분을 앞세우며 국가 파탄세력 편에 서서 국가안보와 민주주의의 기본마저 흔드는 반이성적 행동을 2040 세대의 특권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젊을수록 이성 편에 서라는 것이다.
국민 백 퍼센트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세계 10대 경제대국에서 자가용 타고 휴가를 즐기며 하이힐과 넥타이 부대가 선거를 좌우할 정도로 자유를 만끽하는 대한민국을 그대들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
“밥만 먹여 주세요‘ 라며 직장을 구하던 비참한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아는가.
대한민국의 풍요는 이런 고난 속에서 얻어진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가치는 더욱 빛나고 소중한 것이다.이런 슬픈 과거를 말하는 것은 선배들이 흘린 눈물과 땀이 자유와 풍요와 행복의 비가 되어 지금 여러분을 적시고 있다고 생각하면 2040세대의 아픔은 다소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모든 길은 모스크바로 통한다’는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브란덴부르크’의 문이 열리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그 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2040세대의 시대적 고민도 눈앞의 현실을 바로 볼 때, 베를린 장벽처럼 그렇게 사라질 것이라고 믿고 행동하면 안 될까.
이제 2012년을 눈앞에 두고 우리는 ‘대한민국의 가치는 무엇으로 지킬 수 있나’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2040, 6080세대 모두가 시대적 책임을 절감하고 ‘말 바꾸기’와 ‘거짓말공화국’에 대한 책임을 각자의 몫으로 돌릴 때, 해결될 수 있는 역사적 고민꺼리다.기업윤리가 바로 서 있다면, 공갈치고 돈 뜯어가는 반사회적인 從北 시민단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떨어진 구두에 짓밟히는 국가 불행을 가져온 책임은 전적으로 부도덕한 기업과 中道實用政權에 있다는 말이다. 無에서 有를 창출한 그 功은 별개의 문제다.‘지식인의 종말’의 저자 레지스 드브레는 지식인의 사회적 사명을 수행한 지식인을 ‘최초의 지식인’이라고 불렀다. 지금 한국사회에 지식인의 사회적 사명을 위해 고민하는 지식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썩은 고목나무에 꽃이 피지 않는 것처럼, 죽은 지식인의 사회에도 봄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스타주의에 빠진 지식인은 이미 지식인이 아니다. 좀 지나친 표현인지는 몰라도, 누군가의 지적처럼 ‘아는 것은 많아도 생각이 없는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대우하는 것은 지나친 관용이 아닐까. 지식인이 사회적 사명을 고민하는 사회가 진정 건전한 사회다.
더욱이 역사적 격동기를 사는 지식인은 대중에게 시대정신을 제시하고 주도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지식인에게 그런 주문을 하는 것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진다면 잘못된 사회가 아닌가.
지식인이 그 시대의 어른이 될 수 없다면 그 사회는 이미 병든 사회다. “지식인은 진실과 정의에 동의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한 에밀 졸라의 말에 공감하고 양심적 행동을 할 때, 대중의 잠든 영혼이 깨어나고, 그럴 때 건전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MB는 ‘리더십의 핵심개념’에 대해 어느 정도의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절름발이 리더십으로는 집단적 狂氣(광기)에 무너지는 국가와 사회를 제자리로 돌려놓기엔 역부족이다.
過去의 역사는 학문적 차원이지만, 近現代史공부는 국가안보적 차원이라고 한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이 외교와 경제에 어느 정도의 가시적 효과를 가져왔다고 해서 그것이 국가안보의 울타리를 허물고 있는 과오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지금처럼 국가 안보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며 전전긍긍해 본 적은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도 없었고, 대통령과 국민의 거리가 지금처럼 멀리 느껴진 때도 물론 없었다. 앞으로 일 년 여 동안 또 얼마나 멀어질지, 국가안보의 벽은 또 얼마나 무너져 내릴지, 대통령의 깊은 자기성찰 없이는 고쳐질 수 없는 문제다.
대통령 취임 후, 미친 소 난동 사건을 시작으로 김정일 세력에 의한 반 국가난동이 수 없이 일어났지만, 이명박 정부가 제대로 대처한 것은 하나도 없다. 국가 공권력이 불법 난동 꾼에 두들겨 맞고 피가 터져도 하소연 한 마디 할 수 없는 나라가 어디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본대로, 국가의 온 신경망을 장악하고 국가질서를 파괴하며 젊은 세대에게 김정일 바이러스를 감염 시키는 종북세력을 척결하지 않고는 국가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
문제는 無理念, 無意志의 기회주의적인 이명박 정부와 금배지 노예가 된 여의도의 썩은 정치꾼들이 과연 이 일을 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대답은 ‘아니다’가 정답이다.
대한민국 지킴이의 자리를 지켜온 6080세대와 건전한 2040세대의 양심이 하나의 전선을 구축하고 2012년에 대비하지 못하면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월남 패망의 원인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2040세대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책임은 전적으로 비전 없는 정치와 사회지도층에 있다. 다시 말해 정치선배, 사회선배로서 시대의 어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기성세대에 있다는 말이다.
‘비리도 잘 하면 성공 한다’는 박지원 식 思考가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는 비정상 사회가 결국 ‘거짓말과 말 바꾸기 공화국’으로 이어졌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10.26 서울시장 보궐 선거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유물로 남겼다. 그 중에서도 김정일 세력을 등에 업고 2040세대를 좌편향으로 세뇌하면 성공한다는 전례를 남긴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고 버려야 할 유산이다.
이제 ‘거짓말과 말 바꾸기 공화국에서 탈출하고 2040 세대에게 희망과 비전을 심어주는 책임은 전적으로 대통령과 정치세력의 혁명적 변화, 그리고 지식인과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불리즈 정신의 부활과 기업윤리의 회복에 있다.
2012년을 위한 전략은 그런 바탕 위에서 짜여져야 한다. ‘거짓말과 말 바꾸기 공화국’은 부끄럽고 어두운 유산이니 버려야 하고, 2040 세대는 미래의 한국이니 지켜야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