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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없는, 라이스의 盧武鉉(노무현) 혹평
회고록에서, 변덕스러운 성격(erratic nature), 예측불능의 행태(unpredictable behavior), 괴상한(bizarre) 운운.
趙甲濟
콘돌리사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의 회고록엔 미국이 중국을 압박, 6자회담으로 끌어들이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2003년 3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6자 회담을 중국에 제의하였을 때 江澤民(강택민) 주석은 거절하였다. 화가 난 부시 대통령이 전화를 걸었다. 江 주석이 과거 여러 번 말하였던 대로 미국이 북한에 보다 신축성 있는 접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자 부시는 말을 끊고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나는 강경파로부터 군사력을 사용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통화 직후 중국은 6자회담에 동의하였다. 6자회담은 그러나 북한의 핵무장을 막지 못하였다.
2006년 10월9일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유엔 안보리가 對北제재안을 통과시킨 직후 라이스 국무장관은 韓中日을 방문한다. 이 대목을 설명하면서 라이스는 盧武鉉 대통령에 대하여 酷評(혹평)을 하였다. 필자는, 최고위 외교관이 동맹국의 국가원수에 대하여 이런 표현을 한 책을 읽은 적이 없다.
그는 盧 대통령을 '(생각을)읽기 힘든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때로는 反美성향을 보여주는 말들을 하곤 하였다'는 것이다. 한 예로서 '그 전 訪韓 때 노 대통령은 나에게 강의를 하였는데, 남한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이 동맹국인 미국과 敵(북한)의 동맹국인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려면 먼저 韓美동맹을 해체하고 중립을 선언해야 한다. 말도 되지 않는 균형자론 강의를 들어야 했던 학자 출신 라이스의 울분이 회고록에서 묻어나온다.
그는 <다음 해엔 그의 변덕스러운 성격(erratic nature)을 집약한 사건이 있었다>고 썼다. 미국인이 상대방에게 'erratic nature'란 표현을 한다면 주먹다짐이 일어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9월 호주 시드니 APEC 정상회담에 참석, 부시와 회담하는 자리에서 '기자들 앞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美北관계를 정상화할 용의가 있다는 말을 해주었으면 한다'고 부탁하였다는 것이다. 2005년 9월19일의 6자회담 합의에 들어 있는 내용이라, 새로울 것이 없었다. 기자회견에서 부시는 충실하게 그 말을 되풀이하였다.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이 이렇게 질문하였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인지 모르겠는데, 부시 대통령께선 지금 한국전쟁 종전 선언을 언급하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시 대통령, 그렇게 말하였습니까?"
부시 대통령은 盧 대통령의 참견에 다소 놀랐지만 앞의 설명을 반복하였다.
"김정일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핵무기와 핵개발 계획을 포기해야만 미국은 평화협정에 서명할 수 있습니다."
盧 대통령이 또 요구하였다.
"김정일 위원장이나 한국 국민들은 그 다음 이야기를 듣고싶어합니다."
라이스는 '모두가 당혹스러워하였다'고 적었다. 충격을 받은 통역자가 통역을 멈추고 있으니, 노 대통령은 그녀를 보고 계속하라고 밀어붙였다. 부시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좀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더 이상 분명하게 이야기할 게 없습니다. 대통령 각하, 우리는 한국전쟁을 끝낼 것을 학수고대합니다. 김정일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그의 핵무기를 없애야만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낼 수 있습니다."
한국측 통역이 끝나자마자 부시는 어색한 분위기를 끝내기 위해서인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생큐, 서!"라고 말하면서 노 대통령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노 대통령은 웃으면서 대통령에게 감사하였다. 라이스는 '그는 그 순간이 얼마나 괴상하였는지(bizarre) 모르는 듯하였다'고 썼다. 라이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의 예측불능의 행태(unpredictable behavior)를 알고 난 이후엔 솔직히 말해서 한국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게 되었다>
그는 국무장관으로서 처음 2년간은 潘基文 외무장관을 통하여 盧 대통령을 '통역하였다'(interpret)고 썼다. 노 대통령의 언동을 이해할 수가 없어 潘 장관이 해설을 해주었다는 뜻인 것 같다. 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옮긴 뒤엔 송민순 장관을 상대하였는데, '그는 능력이 있고, 폭 넓은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지만 노 대통령의 비정통적인 생각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시드니 정상회담은 노무현-김정일 회담(10월4일)을 앞두고 이뤄졌다. 그때 노무현 정권은 한국전쟁 종전선언이란 이벤트를 만들려고 애썼다. 그해 12월 大選에 이명박 후보를 꺾기 위한 카드였다는 의심도 샀다.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호의적 논평을 끌어내려고 무리를 한 것 같다.
노 대통령은 그해 10월4일 평양에 가서 김정일과 10.4 선언에 합의하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미국은 '검증 가능한 핵포기' 이후에만 終戰선언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는데, 노무현 정권은 그 조건에 대한 언급 없이, 즉 핵포기와 상관 없이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오해를 줄 만한 합의를 해준 것이다. 미국이 기존 입장을 견지, 종전선언 구상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였다.
조갑제 /조갑제닷컴대표/ 뉴데일리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