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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수 위기의 본질과 과제
보수정당과 정부는 새 길을 만들어 내는 고통을 감내하며 국민을 설득하고 그 길만이 성공의 길임을 입증시켜야 한다
金光東
*다음은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회장 조동근)가 2011년 10월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대한민국 보수의 현재와 미래'제하 심포지엄에서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이 발표한 발제문임.
1. 1987년 체제와 保守革命의 좌절
민주공화제 60여년의 한국 정치구조는 1948년 체제와 1961년 체제로 형성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결에 따른 질서 재편의 계기로 신시대를 연 한국의 1948년 체제는 자유와 민주체제를 근간으로 문명사적 전환을 만들었다. 공산제국주의 전한반도 확산을 저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민족사의 빛나는 성공 역사의 기틀을 쌓았다. 자유·민주라는 1948년 체제 위에 4.19 및 5.16 사건으로 만들어진 1961년 체제는 근대 산업화라는 경제발전체제를 통해 민족번영과 함께 세계무대의 진출과 경제발전 모델을 만들어 확산시키는 주역이 되었다.
그러나 1948년 및 1961년 체제를 뒤이어 ‘민족·민주·민중’을 내세운 1987년 체제는 이중적이었다. 한편으론 민주주의 성숙과 사회적 다양성, 그리고 경제성장의 지속이란 긍정적 방향을 창출하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론 민중주의, 전체주의, 계급주의 현상을 확대시키며 성공적 1948 및 1961년 체제를 부정하는 체제와 세력의 형성으로 나타났다. 1987년 체제의 주도세력은 대한민국 국가체제를 계승하기 보다는 좌파명분으로의 ‘민족-민주’를 독점하며 전체주의적 역사·세계관에 따라 정통세력을 배제, 공격하였다. 특히 공산전체주의와의 투쟁과 한반도 전체로의 자유민주의 확산과제를 포기하고 전체주의세력과도 좌우합작 내지 연대의 방향으로 나섰다. 그 결과 불필요한 사회갈등의 확산, 성장의 표류 및 계급투쟁적 포퓰리즘의 확산이 보편화, 일상화되었다. 그와같은 1987년 체제의 부정적 현상은 노무현 정부에서 가장 심화되어 나타났다.
1987년 체제에 맞서 그 부정적 측면을 바로잡고자 했던 신정치구조로 나타난 것이 2008년 체제다. 2007년 대선 및 2008년 총선으로 형성된 신체제는 ‘민족․민주․민중’체제의 극복이자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져온 1987 체제의 문제점을 극복하라는 요구였다. 1987년 체제가 ‘운동’으로 만들어졌다면 2008년체제는 선거혁명으로 나타났다. 보수적 이명박·이회창 후보와 진보적 정동영·문국현·권영길 후보 간 득표차는 63.7% vs 35.0%였다. 그 격차는 약 29%였고 1위와 2위였던 이명박·정동영후보 양자간의 선거 표차는 531여만 표, 득료율차는 무려 23%에 달했다. 그 후 이어진 2008년 총선의 2008년 총선의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 간의 득표율 및 의석수차도 43.4%, 153석 vs. 28.9%, 81석으로 14.3%, 70석이 넘는 차이로 다시 나타났다. 정동영 집권당 대선후보의 절대 득표율은 불과 16.4%였다는 사실이나 1987년 이후 대선의 최대 차이는 불과 8.6%였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2007 및 2008년 선거의 보수혁명적 성격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한국정치사에서 공산전체주의의 공격이었던 6.25전쟁 발발 직후의 1952년 및 1954년 선거만큼이나 강고하게 출발한 2008년 체제는 1987년 구체제의 부정적 측면을 극복하라는 국민 명령이었다. 그럼에도 선거결과의 혁명적 성격과 상관없이 2008년 체제는 곧 유실되고 만다. 2008년의 광우병 촛불난동 사건과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을 계기로 1987년 구체제는 2008년 체제를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것은 20년을 버텨온 구체제의 강고함을 말하는 것이고 언론 및 교육 그리고 학계라는 진지를 장악하고 있는 구체제의 기득권과 1980년대 좌파운동세력의 선전선동 능력의 결합으로 가능했다. 결국 광우병 및 노무현전대통령 사망사건을 계기로 2008년 체제는 유산되고 1987년 체제가 다시 연장되게 되었다. 2008년의 광우병사건은 정책대결이 아닌 한국 좌우세력의 대결이었고 1987년 체제와 2008년 체제간의 대결이었고 한국우파와 2008년 체제의 항복사건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도 중도실용과 서민우선을 내세울 수 밖에 없었고 한나라당은 좌(左)클릭과 복지 포퓰리즘 및 대북화해를 내세우며 공개적으로 항복 선언하면서 구체제에 동승하며 延命의 길에 나섰다.
2. 2008년 체제의 실패와 좌파포퓰리즘
한국의 보수를 대변하는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의 항복과 방향전환은 기본적으로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이 국민에게 부여한 명령(mandate)을 이해하고 실천할 능력의 결여에서 온 것이기도 하다. 물론 보수대변적 역할을 하는 정치세력인 한나라당이 1987년 체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할 실천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을 물론이고 보수를 대변하는 정당과 정부는 보수가치의 의미와 방향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실천을 통해 입증하는 길을 버리고 정치적 홍보용어로서의 이념 포기, 좌우합작, 중도와 서민우선이라는 남이 만들 틀을 함께 활용하는 길을 가고 있다.
2008년 체제가 성립하지 못하고 좌절된 최대 원인은 정치 대변세력의 결집력 결여와 정치이념 및 정책적 합의기반의 부재에 따른 것이다. 누구보다도 민족적이고 민주적인 길을 걸었고 성공역사를 만들었다는 자긍심에 기반 해야 할 보수가 반민주, 반민족이라는 공격 앞에 스스로 떳떳해하지 못하는 기현상을 자초하였다. 무엇보다 2008년 보수혁명으로 출범한 이명박정부의 구성과 18대 총선 체제가 국민의 요구와 선거로 결집된 국가사회의 방향을 담아내지 못했다. 국민요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정책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한 정부구성과 정치적 대표성 체계를 창출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국민이 위임한 권력과 공직을 국가가 가야할 방향성과 정책수행 능력과 상관없는 인사로 공직과 공천이 이뤄졌다. 권력을 국민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 독점과 보수내 상대세력을 공격하는데 사용하기도 했다. 보수분열과 권력다툼의 결과란 박근혜지지를 상징화했던 친박연대라는 급조 정당이 민노당을 능가하는 득표와 당선이라는 기현상을 만들었고 날보수의 등장과 보수분열을 뚫고 광우병사태는 확대되었다. 구체제의 기득권과 공격도 있었지만 그것으로 보수깃발을 단 날림과 떠돌이 결사체는 무너졌고 보수깃발아래 펼쳐지는 것은 권력독점과 이익다툼 외에는 그 어느 것도 아니란 것이 입증된 것이다.
보수의 위기와 무력화란 보수정당과 정부가 대변하는 이념 폐기, 중도노선 및 서민중심이란 자기 정당성의 방향성 상실로부터 온 것이기도 하다. 국민이 요구하는 가치와 방향을 헤아리고 대변하지 않고 보수를 내걸고 국민지지를 받은 후에는 보수를 버리고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中道-길도 없는 상상속의 가운데 길-로 가는 것이다. 1987년 체제의 부산물인 그들에게는 스스로 지향하는 가치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다. 중도를 내걸면 비판을 덜 받을 것이고 더 많은 지지표가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는데 주력하게 되는 것이다. 중도가 무정형이고 허위인 것을 절실하게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중도는 별도의 지향성이거나 정책적 입장이 아니라 명확한 입장 부재의 결과로 나온 것임에 중도 집착에 빠지는 것이다. 결국 입장 부재를 좇는다는 것은 갈 길을 잃고 포기하는 것이다. 남-북간에도 중도가 있고 미-중간에도 중도가 있으며 여-야간에도 중도가 있다는 것은 是非를 따져 올바른 길을 결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治裝과 化粧하는 길을 걷겠다는 것이다.
결국 갈 길을 가지 않고 권력독점, 내분, 화장, 진보와도 차이가 없다는 홍보에 주력하는 보수정당에 대한 국민의 비판이 보궐선거다. 그런데 그 보궐선거 결과를 갖고 보수정당은 다시 보수노선을 걸었기 때문에 국민질책을 받았다며 이제 보다 더 중도 내지 진보로 가야한다는 식을 해석과 방향 수정만 반복하고 있다. 능력 부재와 철저함 부족, 방향 설정의 오류가 자기 스스로 보수실패로 몰아가며 다른 길을 가는 격이다. 진보세력으로 보면 그것은 이이제이이며, 그것이 바로 곧 스스로 좌절시켜가는 보수혁명의 표류와 실종이다. 그 대표적 경우가 지난 8.24 무상급식에 대한 서울시민 투표다. 한나라당은 무상급식투표를 한국사회의 흐름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분수령이자 관건으로 생각하지 않고 단지 정책에 대한 선택문제로 간주하였다. 그렇기에 한나라당은 선거지원에 나서지 않았고 박근혜 전 대표조차도 그것은 서울시민들이 판단할 문제라는 식의 무가치한 대응을 했다. 그 모든 것은 진보가 만든 ‘복지’라는 대세에 떠내려가지 않고 우리는 진보와 마찬가지라는 것처럼 보이겠다는 발버둥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책임있는 서울시민은 달랐다. 무려 25.7%인 216여만 명이 휴일도 아니고 선거분위기도 없는 상황에서 ‘나쁜 투표’라는 공세를 뚫고 투표에 나섰다. 그 216여만 명의 숫자는 한나라당이 몇 달에 걸친 홍보와 선거운동 속에 압도적으로 이긴 선거였던 2008년 총선에서 후보 전체가 얻은 득표수보다도 많은 숫자다.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2010년 오세훈시장 재당선 및 2011년 25.7% 투표 등 국민을 올바른 길을 가는데 보수정당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투표결과를 왜곡하거나 격하시키는 것을 다반사로 할 뿐이다. 국민과 시민은 앞서 가며 방향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보수라는 한나라당은 뒤에서 딴 짓하며 배신만 하는 것이다. 지금 10.26 선거가 다가오는데도 한나라당은 투표에 나서지 않았던 더 많은 74%의 유권자만 걱정하고 무책임 복지확대에 대한 문제제기인 무상급식의 문제점을 거론하지 않고 216만명을 욕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보수정당이란 한나라당은 진보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무정형의 국민을 보고 무책임한 정치를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지 않으며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국민을 상대로 정치하기 때문이다. 국민 중에 선거를 통해 지속적으로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는 숫자는 약 70% 전후다. 1987년 이후 지난 몇 십 년간 그 어느 정당이나 대통령후보조차도 절대득표율에 있어서 35% 이상 지지를 받아본 적이 없고 그것은 앞으로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국민의 30% 정도는 정치적으로 자기표현을 분명히 해야 할 만큼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지 않고, 정당과 지도자간의 차이에 민감하거나 중요하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선거란 명확한 입장을 갖지 않은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투표로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는 70% 유권자에 초점을 맞춰 과반수이상의 지지를 목표로 한다. 그것은 결국적으로 확고한 방향성과 입장을 가진 20%를 기반으로 그들이 나머지 15% 이상을 설득해 최소 35% 이상의 지지를 받는 방향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보수를 버리고 중도로 간다는 것은 핵심활동가가 되어야 할 20%를 무장해제시키고 그들이 지향하고 설득해야 할 가치와 과제를 잃어버리게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함께 가야할 방향과 세력을 만들지 않고 정치참여 및 표현의사가 없는 30%와 전적으로 보수의 방향과 다른 나머지 일부를 다수의 국민의사라고 간주하고 이에 맞추려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迷兒가 되는 길이다. 물론 국민 다수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도 다르고 보수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도 명백히 다른 길이다. 그런데도 보수를 대변한다는 정치세력이나 정당은 더 많은 숫자가 보수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보수를 버리는 자가당착을 반복하는 것이다.
더구나 보수내걸고 득표하고 당선되면서도 한나라당은 보수로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정당이다. 스스로 보수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늘 중도의 길을 걷겠다고 한다. 황우려 원내대표의 ‘감세정책 철회와 반값등록금 정책지지’가 그것이다. 홍준표 대표의 대기업비판이나 감세철회, 대북유화책 촉구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어떻게든 중간임을 강조하고 중간을 선택하는 늪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선거만 끝나면 한나라당에서 나타나는 소위 ‘좌클릭’ 논쟁에서 두드러진다. 4.27 재보선 패배 후 한나라당 소장파의 대표격이자 전최고위원 정두언은 “우리가 민주당과 뭐가 다른지 모르게 됐을 때 스윙보터들이 표를 주는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의 감세정책 유지 표명에 대해 “바보 같은 얘기이고 어리석은 짓”이라고까지 한 바 있다. 보수정당의 가치지향이 무엇이냐의 여부와 상관없이 한나라당은 보다 넓은 지지를 받기위해서는 중도 30% 내지 덜 극단적 진보 10%라는 40%를 지향하는 길을 가자는 것이며 그럴 때는 더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적 귀결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수정치세력은 보수가치의 정당성을 기반으로 보수가치에 따른 정책을 지향하며 지지폭을 확대하는 길을 포기한 지 오래다. 폐지를 줍고 계단을 청소하는 힘든 노모의 복지는 생각하지 않고 노모의 집에서 새벽까지 술 먹고 늦잠 자며 불평하는 아들의 복지만을 걱정하는 틀에 빠져있다. 방향성을 명확히 하지 않거나 보수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다수에게 구애를 펼치겠다는 것이다. 지지세력 확대를 업적과 실천적 경험에 기반하여 평가받는 방식을 포기하고 분장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일은 하지 않고 선전만하면 되는 좌파를 닮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한편으론 자기 진지를 만들지 않는 불임정당의 행위다. 업적을 쌓고 지지 세력을 만드는 것은 분명 고달픈 행위다. 반면 여론조사의 중간에 서는 일은 매우 쉬운 행위다. 결국 고달픈 행위를 버리고 쉬운 길을 걷는 길을 중도의 길이라 내걸고 자기 기만과 함께 자기 진지를 만들지 않는 무위도식의 길을 가는 것이다.
庶民지향 정책도 그럴 듯해 보이지만 중도처럼 보수의 길은 아니다. 계급적 접근법을 선택하는 정치세력에게 서민과 가난한 자의 구분은 가장 중요한 접근법이다. 국민전체를 지향해야하는 보수는 계급정책보다 국민보편에 대한 접근이 더 서민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할 의무가 있다. 기업의 법인세 감세철회로 세금을 더 거둬 나눠주는 것이 서민에게 도움되는지 아니면 투자확대와 경쟁력 제고로 나타나는 일자리 창출결과가 더 서민에게 도움되는지에 대한 근거가 분명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서민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확대와 실업자 지원확대라는 두 가지 정책은 선택의 문제지만 무엇이 더 사회전체와 국민전체에 긍정적 결과를 만들었는지는 입증해야할 사안이지 서민우선의 길이 따로 있지 않다. 실업지원이 SOC확대보다 더 서민에 도움된다는 분석과 근거도 없이 따라가는 것이다. 항구를 만들고 도로를 내 비용과 시간과 불편을 줄이는 것이 더 서민우선이란 것을 입증해야 한다. 부자우선이냐, 서민우선이냐가 그렇게 쉽게 이분화될 수 있는 것이라면 세상은 참 쉬운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기업 우호냐 노동자 우호냐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우호적인 정책이 서민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대기업을 키우는 것이 더 서민에게 도움 되는 지는 분석결과로 판단할 문제지 복지우선이니 서민우선이니 하는 것이 따로 있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보수는 적어도 제한된 투자와 재정으로 무엇을 할 때 서민에게도 더 이익인지를 증명할 과제이지 남들처럼 서민과 분배를 내세우며 노동자나 실업자를 향해 갈 수는 없다. 그것은 물론 보수가 서민에 반하거나 노동자나 실업자에 반하는 세력이기 때문에 그런 정책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이 더 서민적이고 더 노동자의 빈곤문제를 해결하는데 효율적이고 더 좋은 방법은 없다는 확신의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
특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문제를 회피하고 과제해결을 하지 않으며 중도의 길을 가는 경우다. 지금은 무엇보다 정부나 공공영역의 방만성을 견제하고 효율화해야 할 시기다. 정부재정의 적자확대와 자치단체 및 공기업 적자의 가속화, 각종 사회보험의 지속적 적자와 반복되는 재정투여 상황을 바로잡기도 어렵다. 세계 최고로 가속화되는 (초)고령 사회의 도래에 따른 복지지출 확대의 가시화 등과 같은 명시적 당면과제에 집중하고 국민들 설득해야할 때다. 현재 도입된 제도와 정책만으로도 지금부터 의료, 연금, 사회보험과 복지서비스 확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후세대에게 부담을 물리며 국채를 발행하고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가장 쉬운 길이지만, 물론 망하는 길이고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오는 반사회적 행위다. 그런데도 보수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도적이지 않고 성공한 사회를 만드는 어려운 길을 버리고 무책임한 중도와 포플리즘의 길을 걷는 것이 현 상황이다. 그 모든 것은 한국의 보수가 보수신념과 정책을 버리고 스스로 포퓰리스트가 되어 있거나 進步亞流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3. 보수의 방향과 과제
첫째, 보수는 ‘1987년 체제’를 補修하고 극복해야 한다. 민주, 민중, 자주, 분배라는 민중주의와 부자-서민, 대기업-중소기업, 양극화 사회라는 이분법을 중심으로 한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舊體制를 극복해야 한다. 그것은 1987년 체제로부터 잉태된 것이고 실패한 것이다. 사회통합수준은 저하되고 갈등은 확대되고 분열은 가속화되어왔다. 세계적 역동체제를 만들어온 나라의 성장률은 어느덧 세계평균 경제성장률을 넘나드는 수준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특히 2007년 구체제의 힘은 강고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진보정부의 대못으로 상징된 ‘햇볕정책’ ‘수도이전’ ‘지역균형’ ‘복지지출 확대에 따른 기득권 형성’ 등은 넘기 힘든 장애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가야할 길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은 누구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한바 있다. 진보가 비판의 가치를 가졌다면 보수는 책임의 상징이다. 보수정당과 정부는 새 길을 만들어 내는 고통을 감내하며 국민을 설득하고 그 길만이 성공의 길임을 입증시켜야 한다.
둘째, 보수는 正當性을 확립하고 敗北主義를 克復해야 한다. 그것은 자기가 걸어온 길에 대한 정당성과 확신에서 시작된다. 자기가 가는 길이 국민성공의 길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성장을 통해 분배를 이루고 작은 정부를 통해 자유와 효율성을 확대한다는 신념에 기초해야 한다. 놀면서 가진 자를 비난하며 사회보험에 기대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할 것이 아니라 새벽에 출근하여 밤늦게까지 힘들게 일하는 국민을 대변해야 한다. 보수적 길은 이익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국가발전이고 국민 모두에게 더 커다란 성공과 혜택을 가져 오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한다. 자신들이 민족, 민주가치는 물론 성장과 효율, 복지가치의 대변자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또 입증해야 한다. 특히 보수정당은 자기 정당성에 대한 자부심부터 키워야 한다. 안철수 원장이 갑자기 나타나 진보좌파를 지지하고 한나라당을 응징하겠다고 공언하며 한나라당이야말로 반역사적 세력이라는 데도 방어도 못하고 존재이유를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없는 정도가 된 상황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 자신을 지지한 국민 절대다수를 모독하는 상황이 계속되는데도 맞서지 못한다면 정당의 존재 의의는 상실된 것이다. 내심 안철수라는 명망에 기대서 표를 더 얻어 보겠다고 기대하지 않았는가를 반성해야 하며 치욕으로 알아야 한다.
셋째, 보수는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보수陣地를 만들어야 한다. 보수는 가치고, 사상이고 정책이며 세력이다. 보수는 정당과도 다르고 정부와도 다르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당에만 의존하고자 한다면 역사를 만드는 힘을 상실한 것이다. 특히 企業은 사회주체의 일원으로 정부와 정당이 갈 길을 만드는데 책임있게 참여해야 한다. 정부를 통해 만들어지는 제도와 국가질서 구축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이 법과 제도, 사회간접자본과 국가거버넌스 형성에 책임감 있게 나서지 않으면 그것은 기업에 반하는 세력의 놀이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기업이 적극적으로 체제의 형성과 국가거버넌스를 생각하지 않고 방어적으로 자기를 물고 공격하는 단체와 세력에게 떡을 던져주고 달래는 방식이라면 그것보다 무책임한 것이 없다. 더구나 보수든, 기업이든 정부에 모든 것을 의존하다보니 정부가 다른 길을 가지 않을 때 별다른 수단을 갖지 못하게 된다. 보수에게 정부와 정당이란 대변체일 뿐이지 전체가 될 수 없다. 특히 보수는 안보가치를 넘어 자유가치로 나가야 한다. 보수는 권력과 정당중심적 사고를 넘어서 사회세력으로서 가치기반과 정책적 합의로 결집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대표성 구조로서는 보수를 대변할 수도 보수가치의 지향을 만들어낼 수도 없다. 보수 가치에 충실하고 전념하는 정치세력의 조직화는 불가피해보이며 보수적 대표성 체계의 전환과 다변화를 지향해야 한다.
넷째, 보수는 左-右合作 논리를 극복해야 한다. 좌우합작의 시도란 늘 잘 보이기 위한 것으로 균형을 유지하고 치우침이 없는 사람과 단체로 보이고 싶어 하는 유혹의 결과에 빠진 결과다. 그것은 자신을 비난하는 세력으로부터 욕을 먹지 않겠다는 것은 방향성과 가치지향이 없는 비굴함일 뿐이다. 좌우합작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결코 극단으로 가고 충돌과 대결을 지향하자는 것이 아니다. 책임있게 행동하고 국민선택과 판단에 맡기라는 것이다. 보수가 진보좌파에게도 잘 보이고 비판받지 않고자하는 처신으로서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지 못한다. 바로 그런 유혹이 중도와 서민중심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보수는 전체주의 세력과의 대결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전체주의이자 개인숭배적 공산세력과 투쟁해야 하고 그 체제하에 살고 있는 우리민족의 해방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자세가 분명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반민족세력에 대한 민족주의 가치다. 김정일에게 밉보이거나 찍히지 않겠다는 그 비겁함이 오늘 우리 민족문제의 적나라함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보수의 맞상대는 조선노동당이고 김정일 세력이다. 김정일 전체주의를 극복하고 우리 민족모두에게 자유와 민주를 누리게 해주겠다는 신념과 실천을 잃어서는 안 된다.
다섯째, 보수는 일상적 實踐組織을 건설해야 한다. 그것은 연고조직이 아니라 학습조직과 교육조직으로부터 시작된다. 보수적 가치를 공유하고 그 가치에 입각한 정책지향의 공감대 확산과 조직 형성으로 이어지는 학습이 계속되어야 한다. 소지역단위에서 중앙까지 조찬모임, 포럼, 토론, 강연회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을 만들고 번영시킨 보수가치와 역사의 위대함을 체득하고 설득, 교육해야 한다. 보수정당의 지역조직이나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의 대학이나 청년에게 보수이념과 정책을 준비하는 단체하나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정당성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현재 보수는 민노당의 각종 위원회나 좌파의 의식화MT 규모와 수준도 1/10도 못 따라간다. 심혈을 기울여 연고․이권조직을 만들면서도 정책과 이념조직은 못만들고, 만들 필요도 못 느끼는 수준이다. 보수를 지지할 대중은 보수가 만드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체질화된 편승과 무임승차의 끝은 결국 파멸이고 국민의 실패이고 국가의 쇠락일 뿐이다.(konas)
김광동 /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