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절망, 아름다움은 기만의 아름다움, 시민참여는 이념의 타락
  • 박원순후보가 서울시장이 되선 안 될 세 가지 이유

    박원순 후보가 자기의 얼굴처럼 홍보하는 희망, 아름다운 기부, 시민참여,
    이 세 가지엔 오히려 그의 부도덕과 위선, 이념의 타락이 다 집약돼 있다.

    장진성


  •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이 되선 안 될 세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세 가지 이유들은 내가 아니라 박원순 후보 스스로가 고백하고 행동으로 증명한 것들이다.

    첫째: 박원순 후보의 희망은 우리와 전혀 다른 희망이었다. 그는 희망제작소를 만들며 대한민국을 “희망의 나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던 “희망”이란 ‘현재’에서 ‘미래’가 아니라 ‘현실’에서 ‘정치’였다. 다만 남들과 확실히 다르다면 본질적인 언어구사가 아니라 현란한 문화적 수식어들로 교묘하게 바꾸었을 뿐이다. 이를테면 친북을 ‘평화’와 ‘번영’으로, 좌익이념을 ‘함께’와 ‘희망’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의 희망제작소는 처음부터 우리가 원했던 희망의 성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차라리 아예 종북 좌익세력들의 희망제작소였다. 그에게서 기부 받은 친북 단체들은 주한미군 철수 희망을 실천했고, 미친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라는 미친 희망도 주도했다.

    실제로 박원순 후보는 국가보안법 철폐 희망자로서 좌익변호의 대부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어서 우리 정부가 북한을 자극했기 때문에 천안함 젊은이들이 수장됐다는 어마어마한 반역의 말도 거리낌 없이 할 줄 알았다. 한마디로 그의 희망들은 쫒아 가면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절망이었다.

    둘째: 박원순 후보의 아름다움은 기만의 아름다움이었다.

    내가 처음 박원순 후보에게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그가 만든 “아름다운 재단” 때문이었다. 누구든 시작해야 할 새로운 기부문화 정착에 그가 앞장선 것 같아서 더 돋보였다. 그 선각자의 인품을 말해주듯 굽이 떨어진 그의 낡은 구두는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그 뒤로 돌아가 보니 그의 아름다움은 너무 정직하지 못했다. 그는 어려운 이웃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가게”로 출근했지만, 퇴근해서는 전혀 다른 세상인 강남의 250만원 월세 집에서 살았다.

    서민들에게 베풀어야 될 기부금은 부인의 회사 사업자금으로 슬쩍 기부됐고, 그 수익금 또한 자녀 유학비, 자동차 기름 값, 월세 등 자신의 더 나은 삶의 질에 바쳐졌다. 서울 법대출신이 아니면서 책에서, 인터뷰에서 아름답게 기만하고도 그는 지금까지 그에 대해 반성의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 양심의 범죄자이다.

    셋째: 박원순 후보의 시민참여정신은 시민으로서 참으로 나쁜 본보기였다.

    박원순 후보는 자신을 기성정치권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순수한 시민의 대표라고 했다. 아마 안철수씨도 그 말에 속은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박원순 후보가 주도했던 참여연대 활동을 추적해보면 “참여”가 아니라 전형적인 뜯어내기였다.

    앞에선 투명성 감시 명목으로 기업을 때리고, 뒤에선 150억이나 되는 합의 기부금을 돌려받았다. 그 돈으로 삶이 불우한 이웃에게 다 주어도 모자랄 판에 정신적으로 불우한 친북 단체들에게도 쏟아 부었다. 그랬던 “참여”의 대주주답게 나중엔 POSCO, 풀무원홀딩스 등 대기업 사외이사 자리를 꿰차면서도 본인은 정작 3억 5,000만원 넘게 받은 그 월급은 기부할 줄 몰랐다.

    결국 박원순 후보가 자기의 얼굴처럼 홍보하는 희망, 아름다운 기부, 시민참여, 이 세 가지엔 오히려 그의 부도덕과 위선, 이념의 타락이 다 집약돼 있다. 서울시장 자리는 모범시민만이 넘겨다 볼 수 있는 위치이다. 더구나 박원순 후보가 자신을 순수한 시민으로 자처한다면 굳이 서울시장이 아니라 한사코 시민으로 남아있어야 정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