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활원에서 배운다
      
    작년 말에 받은 디스크 수술의 뒷마무리가 아직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요새도 세브란스 병원 재활원에 가서 1주일에 3번씩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닙니다. 거기서 나는 물리치료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인생수업의 마지막 코스를 밟고 있는 셈입니다.

    나는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것을 말로만 듣고 전혀 내 눈으로 보지 못한 채 80년의 기나긴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내 목과 내 허리에 고장이 생겨서, 대중 앞에 나가서 ‘만세 3창’을 선도하려 해도 한쪽 팔이 자유롭지 못해 이를 사양하고, 두 다리의 힘이 빠져 층계를 오르내리기가 힘들게 되기까지는 인간의 노년의 고통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옛날에는 철봉에 매달리면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몇 가지 ‘재간’은 부릴 수가 있었고, 하루에 70리, 80리를 걸어도 끄떡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1년 가까운 세월은 내가 즐기던 연세대 뒷산에 한 번도 올라가지 못했고, 하루 1시간 쯤 아침마다 거닐던 캠퍼스에 걸어서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날마다 수백 명의 환자들이 이 재활원을 찾습니다. 나이 많게 중풍을 앓고 고생하는 이들은 보기에 민망하긴 하지만 이해는 갑니다. 그런데 차 사고로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된 저 잘생긴 여대생은 앞으로, 하나님, 어떻게 길고 긴 인생을 살라고 하시는 겁니까.

    어려서 소아마비가 되어, 엄마나 누나의 도움이 없이는 이 재활원에 혼자서는 올 수도 없는 저 청년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려서부터 거의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는데, 그의 엄마, 그의 누나 -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인데!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들 앞을 당당한 발걸음으로 지나다니는 저 의사들, 저 간호사들 - 모두가 딴 세상에서 파견된 사람들 같은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사나 환자나 다 같은 인생길을 더듬어 가는 것 아닌가요. ‘위풍당당’하게 가도, 다리를 절면서 가도, 인생은 같은 길을 가는 것 아닙니까.

    그레이(Thomas Gray)라는 영국시인이 이렇게 탄식하였습니다.

    The boast of heraldry, the pomp of pow`r,
    And all that beauty, all that wealth e`er gave,
    Awaits alike th` inevitable hour,
    The paths of glory lead but to the grave.

    가문을 자랑 말라, 권력을 과시 말라
    절세의 미인들도, 천하의 갑부들도
    모두가 피치 못할 시간 기다려
    영광의 길 가다 보면 무덤 있을 뿐

    재활원에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