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FTA에는 호기롭게 찬성...한-EU FTA는 반대법무장관 때는 한-미 FTA 찬성...물러난뒤에는 반대반대행보...단식농성-좌파단체+노조 등과 美까지 가
  • 착각한 줄 알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미국 의회 의원의 글인 줄 알았다.

    글의 내용이 그랬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글이었다. 한-미 FTA가 미국의 무역 적자를 확대함으로써 (미국 내)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었다. 알고 보니 그렇게 주장하면서 한-미FTA를 반대한 이는 미 의원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이었다.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이었다.

    그는 지난 3일 美의회 전문지 <더 힐(The Hill)>의 ‘콩그레스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한-미 FTA는 사실 양국에 ‘lose-lose 게임’이 될 테니 체결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들어 있다.

    이에 정부와 여당은 물론 한-미 FTA를 기대하는 이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그는 도대체 어느 나라 국회의원이냐는 물음이다.

    우리 이익이 줄어 안된다는 논리라면 이해하는 척이라도 하겠단다. 미국의 일자리가 줄어드니 한-미 FTA를 하지 말자니...

    그것도 미 의회 전문지에 게재한 글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그는 처음부터 한-미 FTA를 반대했을까. 천 의원은 노무현 정부 법무장관 시절이던 2006년 7월 한-미 FTA를 적극 찬성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대국민 담화를 통해서였다.

    그는 담화문에서 "FTA는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시험대"라고 강조했다. 그러기에 "반대폭력시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 그가 돌아섰다. 법무장관에서 물러난 뒤 한-미 FTA 반대로 돌아섰다. 2007년 초였다. 반대 시위에 법적 책임까지 묻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본인의 입장이 180도 바뀐 부분에 대해 납득할 설명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도 못했다.

    2007년이 되자 ‘한-미 FTA 반대’를 내걸고 김근태 의원과 국회에서 단식투쟁을 했다. 한-미 FTA 반대 명분을 걸고 권영길 의원 등과 손잡고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올해 1월에는 좌파 인사들과 함께 미국을 방문해 AFL-CIO(산별노조총연맹) 관계자들과 만나 한-미 FTA 저지를 논의하기도 했다.

    그의 FTA 반대 행보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지난 5월에는 ‘한-유럽연합(EU) FTA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외 투쟁’에서는 "당면한 한-EU FTA를 반드시 막아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런 그도 2004년 한-칠레 FTA에는 호기롭게 찬성표를 던졌다. 대체 왜 그런 걸까. 그의 행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 이유를 찾아보기 위해 美의회 전문지에 기고한 내용을 다시 살폈다. 천 의원은 기고문에서 “한-미 FTA가 체결되면 모두가 잘 될 것이라는 환상은 양국에 충성도 없는 다국적 기업들의 조작(fabrication)”이라고 주장했다.

    “한-미 FTA는 양국 관계를 개선하기보다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이 협상이 최종 타결될 때 양국 관계자들은 남북간 군사긴장을 이용했다”는 논리도 펼쳤다.

    미국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들었다. “모델이 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美제조업 분야에서 엄청난 일자리 손실을 가져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랬다. 천 의원이 우려한 것은 ‘미국인의 일자리 감소’였다. 그가 말하는 ‘lose 게임’은 관세장벽이 사라지면 기술력에 비해 저렴한 한국 제품이 미국 시장을 뒤흔들게 되고, 결국 미국인들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천 의원이 기고문에서는 말하지 않은 ‘lose 게임’은 또 있다. 귀족노조가 경영권에 간여하고 관세장벽 뒤에 숨어 내수시장을 엉망으로 만든 일부 국내기업들이 더 이상 ‘시장 지배적 지위’를 지키지 못하는 것, 따라서 귀족노조들의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천 의원이 보지 못한 게 있다. 이 ‘lose 게임’의 승자(Winner)는 누구일까. 바로 한-미 양국 소비자다. 미국인들은 더 이상 중국산 저질제품과 일본산 고가제품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EU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인들은 우리나라 제조업에 필요한 각종 기계부품, 원자재 등을 지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자동차는 최고 20% 가까이 저렴해진다.

    물론 한-미 FTA의 피해자도 분명히 생길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 대부분은 그동안 관세장벽과 정부의 정책지원 속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사업을 하며 ‘귀족노조’ 배만 불려주던 기업이거나 ‘시장 지배적 지위’만 믿고 자국 소비자들을 우롱하던 기업이 될 것이다.

    한-미 FTA 파고 속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기술집약적 산업으로의 전환 혹은 다품종 소량생산, 적기납품(JIT)식의 경영합리화와 함께 ‘고객맞춤형 서비스’로 무장하게 될 것이다.

    이는 제조업뿐만 아니라 미국산 농수산물, 통신서비스 등이 한국에 진출하려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한-미 FTA와 한-EU FTA를 반대하는 천 의원이 농수산물 강국인 칠레와의 FTA에는 찬성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가 우려하는 건 우리 국민 다수가 아니라 혹시 민노총 소속이 다수인 ‘귀족노조’와 그들에게 후원 받는 좌파 진영은 아닐까.

    이런저런 이유로 천 의원이 ‘친미파’가 되는 건 좋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 다수를 등지고 ‘친미파’를 하겠다면 가슴의 뱃지는 떼어 놓고 미국으로 가라.

    그 ‘뱃지’에 들어가는 매달 1,500만 원이 넘는 돈은 바로 그가 등을 돌린 다수의 소비자들이 낸 돈이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지금까지 내뱉었던 ‘막말 대행진’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