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韓國)은 ‘김정일주의’ 화물차에 실려 평양(平壤)으로 가나
2012년은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운명의 해가 될 것이다
崔應杓 한미자유수호운동본부 상임대표
개찰구에는
못 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
병든 역사(歷史)가 화물차에 실리어 간다.
오장환의 시(詩) ‘The Last Train’의 한 구절이다. 오장환은 숨 막히는 일제 식민시대를 살면서 자기 꿈을 마음대로 펼칠 수 없는 자기 인생을 못 쓰는 차표에 비유하고, 우리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 민족의 진로를 화물차에 실려 가는 병든 역사라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광복 후 66년이라는 세월을 지나오면서 세계 경제 10대국이라는 大성공을 이룬 대한민국. 그런데도 엄청난 풍요 속에 배부른 투정으로 스스로 자기 인생을 못 쓰는 차표로 전락시키는 한국의 역사는 원래 우리가 바라던 옳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반성과 진보의 메시지는 역사에서 얻는다고 했다. 오장환이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이 거북이의 등에 지도처럼 펼쳐져 있다’고 한 것처럼, 우리 역사에는 민주, 민족, 진보, 개혁, 민족끼리의 가시밭길이 대한민국의 등에 지도처럼 펼쳐져 있다.
하지만 그 지도처럼 얽혀져 있는 우리 역사에는 반성과 진보의 메시지뿐 아니라 분명히 그 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비전의 메시지가 있다. 양심과 정의의 눈으로 현실을 제대로 본다면 말이다.
문제는 현실을 바로 보려는 意志와 주저 없는 결단(決斷)과 두려움 없는 용기(勇氣)에 있다. “인간은 가장 위험하고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과감하고 가장 용감한 행동을 하는 법이다.” 데카르트가 우리에게 하는 말이다.
지금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위험하고 가장 절망적인 시기를 맞고 있다. 데카르트의 말대로라면 대한민국 국민은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과감하고 가장 용감한 행동을 펼칠 때다.
레이건 대통령이 논란의 여지가 많은 정책을 결정할 때는 “양심이 가르치는 쪽을 택하라”는 단 한 가지 기준에 따른 원칙이 세계질서를 바꾸어 놓은 것처럼, 민족의 양심이 가르치는 쪽을 따라 결단하고 행동하면 2012년의 운명(運命)의 여신(女神)은 반드시 우리 편에 설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온 것이 바로 그런 것 아닌가.
미국을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알면 우리 행동의 지침이 보일 것이다. 다시 말해 필그림 파더(the Pilgrim Fathers)들의 개척정신과 건국 대통령을 비롯한 건국 주역들의 건국이념을 마음에 다시 새기는 국민 대각성 운동이 국민들에게 새로운 역사의식으로 이어지면서 오늘의 미국을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 됐다는 역사의 큰 흐름(時代精神, 시대정신)의 물줄기를 우리 쪽으로 돌리면 새 희망, 새 역사의 길은 반드시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새 희망, 새 역사의 길은 ‘오늘의 우리 됨을 있게 한 뿌리’(문창극 대기자의 표현)인 대한민국의 가치에 대한 고마움을 국민들 가슴에 심는 기초적인 일에서 시작된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이 가는 길이 선(善)의 길’이고, ‘김정일이 가는 길은 惡의 길’이라는 진실(眞實)이 국민의 의식을 깨우고 국민의 양심에 정의의 불을 붙이며 도덕적 각성 운동으로 이어져야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킬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우리는 지금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는 박동운 교수의 우려의 목소리가 국민들의 가슴을 무겁게 하고 있다. 점잖게 말해서 ‘사회주의’지 사실대로 말하면 ‘김정일주의’ 열차를 타고 평양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엄격히 따져서 한국에 진정한 ‘진보(進步)’, ‘개혁(改革)’세력이 어디 있는가.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the Holocaust)은 없었다”고 엄연한 역사적 사실마저 부정하는 놈 촘스키 같은 스탈린식 ‘김정일주의자’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민족, 진보, 개혁 간판을 들고 민주를 떠드는 민주 팔이 세력을 악(惡)의 세력으로 분류한다.
2012년을 맞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기원전 490년경,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국가에 위기가 닥쳤을 때, 나라를 지키고 자유를 지키며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마라톤 평원으로 달려간 아테네 시민의 애국심과 아테네의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41.6 킬로미터를 달려와 “우리 아테네 군이 승리했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숨져간 필리피데스의 정신(精神)이 아닐까.
진보란, 헨리 와드 비쳐가 “우리에게 씨앗으로 왔던 것이 다음 세대에 가서 꽃을 피우고, 꽃으로 왔던 것이 그 다음 세대에 가서 열매를 맺도록 열심히 살면서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건설지향적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진보가 아닐까.
그리고 개혁이란, “오랜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다시 들여다보고 유효한 것이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재구축하는 작업”이라는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미래지향적 비전을 가지고 진실한 정신적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 참된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할 진보와 개혁이 우리나라에선 어떻게 역사 부정과 파괴 지향적이고 선동적이어야 개혁이 되고 진보가 되는지 알 수가 없다.
하긴 언제나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며 거짓과 선동과 파괴를 정치수단으로 삼는 공산혁명 세력이 판치는 사회에선 오히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점점 크게 들리는 “한국은 지금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가볍게 들어 넘길 일이 아니다. 월남은 그래서 망했다.
물론 첫째 책임도 분에 넘치는 풍요에 젖어 정신을 놓고 있는 국민에게 있고, 둘째 책임도 거짓과 선동에 홀려 지도자를 잘못 택하는 국민에게 있다.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처럼, 惡을 악이라고 부르며 거짓말하고, 범죄를 저지르며 세계적 공산국가를 추구하는 소련에 대한 유화정책을 버리고, 확고한 철학과 원칙주의로 소련을 붕괴시킨 위대한 유산을 남겨주지 않고, 자기 영달과 가문의 영광을 위해 적장에게 나라를 팔아먹는 파괴적 유산만을 물려주고 간 김대중과 노무현의 역사적 죄악이 한국을 평양으로 끌고 가는 국가위기를 가져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판단일 것이다.
1953년 10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정식 조인되기 전, 8월 假(가)조인식을 마친 이승만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성립됨으로써 우리는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보호 받을 뿐 아니라 경제, 정치, 문화 등, 다방면으로 혜택을 입어 앞으로 몇 세대에 걸쳐 번영을 누릴 것이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위대한 지도자란 바로 그런 지도자다. 오늘의 한국의 번영과 자유는 그런 리더십에서 나왔고 대한민국의 가치는 그 토대 위에서 창출되었다. 그런 위대한 유산을 기반으로 뻗어나가던 대한민국이 지금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한마디로 민족, 진보, 개혁이란 위장 열차에 실려 평양으로 가고 있다는 말이다. 엄격히 말해 사회주의가 아니라 김정일주의로 말이다.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김정일에 대한 저들의 충성심 경쟁은 ‘평양 앞으로’를 외치며 더욱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길이 우리 미래의 발전 동력이 되느냐의 판단기준을 바로 세우느냐 못 세우느냐에 따라 한국의 운명이 결정되는 중대한 시기를 맞고 있다.
한나라당의 7.4 전대를 기점으로 정치권 전체의 흐름은 솔직히 왼 쪽으로 가고 있다. 민노당, 민주당, 한나라당의 이념적 구분이 거의 사라진 상태에서 대한민국 중심세력이 취해야 할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대로 화물차에 실려 평양으로 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지금 우리에게 이런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지도자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원칙과 두려움 없는 지도력, 그리고 비전을 담은 해결책으로 세계 공산권을 무너뜨린 레이건 대통령의 성공 원칙의 소유자가 아닐까.
MB정부의 대북정책 변화와 민노, 민주당의 복지 포퓰리즘에 편승해 대중인기 경쟁을 버리는 한나라당의 좌경화 노선은 김정일주의자들의 北進(북진) 행렬에 붉은 카펫 깔아주는 꼴이다.
1637년(인조 15)의 三田渡(삼전도)의 굴욕을 기억하는가. 조선 왕이 淸太宗(청 태종)에게 무릎 꿇고 항복한 그 치욕 말이다. 지금 MB와 한나라당의 비굴할 만큼의 김정일 눈치 보기 자세, 삼전도의 치욕과 무엇이 다른가.
김정일에게 허리 굽혀 무엇을 얻어 보겠다는 발상은 김정일의 버릇만 더 고약하게 만들 뿐이다.
거리의 불량배에게 용돈 주고 술 사준다고 저들의 행패를 피할 수 있다고 보는가. 천원 주다 만원 줘야 하고, 만원 주다 십 만원 주게 되며 나중엔 기생집 요리 값까지 물어주다 멱살 잡히고 얻어터지게 되는 것이 불량배의 속성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이 가는 길이 옳은 길이고, 소련이 가는 길이 잘못된 길이라며 결국엔 옳은 길이 이길 것이라는 신념으로 소련이 진정으로 변하지 않는 한 정상회담을 할 수 없다며 끝까지 정상회담을 갖지 않았다. 그 원칙이 결국 세계 공산권의 붕괴를 가져오지 않았는가.
2012년은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운명의 해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 어떤 가치도 국가 안보 위에 놓일 수는 없다. 돈을 주고 평화를 사겠다는 패자(敗者)의 정신을 버려야 한다. 그건 김대중의 사기수법이다.
지금 부터라도 레이건의 안보 의식, 철학, 원칙을 기준으로 한 대북정책을 보다 강하게 펼쳐 나간다면 2012년은 우리에게 다시없는 기회가 되겠지만, 김대중, 노무현의 대북 屈從(굴종)형 정책을 쫓는다면 2012년은 우리에게 최악의 해가 될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선택에 달렸지만, “거짓말도 백 번 되풀이 하면 진실(眞實)이 된다”는 레닌 식 공산당(共産黨)의 宣傳煽動(선전선동) 공작이 한국국민에게 쉽게 먹혀든다는 데 있다. 그 선전선동 공작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찾지 못 하면 2012년은 승산이 없다.
민주, 민족, 진보, 개혁에 이어 복지 포퓰리즘까지 국민을 선동해 한국의 민주 열차를 평양으로 끌고 갈 때, 그걸 제지할 수 있는 힘이 현재 우리에겐 없지 않는가. 이미 대한민국 중심세력에서 이탈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엔 희망이 없다. 우리의 보수적 가치를 지켜낼 대안세력의 출현이 시급한 때다.
고르바초프는 1989년, 당시의 동독을 ‘뚜껑이 꼭 닫힌 채 과열된 보일러’라고 표현했다. 지금 한국의 현실이 그렇다. 과열된 보일러 뚜껑이 어느 방향으로 터지느냐에 따라 역사의 진로가 바뀐다.
독일 통일은 원초적으로 레이건의 대소 원칙주의(原則主義)와 고르바초프의 신사고(新思考)의 산물이지만, 1989년 5월 2일 헝가리 정부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지역에 설치된 철조망을 철거한 작은 사건이 물꼬를 튼 것이다.
TV를 통해 철조망 제거작업을 본 동독 국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바늘구멍 같은 기회가 왔다. 우리도 가야 한다.” (양창석의 ‘브란덴부르크 비망록’)는 불씨가 결국 “서독 마르크가 우리에게 오지 않으면 우리가 그리로 간다”는 결의를 분출시키면서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통일의 길을 연 것 아닌가.
언제나 역사적 터닝 포인트는 작은 사건에서 이루어진다. 지금 한국에서 진정한 보수정당의 새 싹을 키우려는 희망의 씨앗이 우리의 미래를 열어주는 터닝 포인트가 될지 누가 아는가.
힘은 한 곳으로 모아야 힘이 된다. 그래서 이승만의 귀국 제일성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2012년을 위해 애국세력은 하나가 돼야 한다. 그래야 산다. 평양행 열차를 막지 못하면 전부가 죽는다.
김정일주의자들은 ‘대한민국 죽이기’란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든 사적 이익을 버리고 하나가 될 것이다. 산산이 부셔진 힘으로 저들의 뭉친 힘을 어떻게 당해낼 수 있는가.
심장이 썩어가는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은 단 하나, 국민이 깨어나는 것이다. 전형적인 공산당식 선전 선동에 속지 말고 어떤 길이 생명의 길이고, 어떤 길이 죽음의 길인가를 잘 판단해서 행동해야 모두가 산다.
김정일주의 열차타고 평양 가면 최고의 복지 누리며 살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300만이 굶어죽은 지옥의 땅이란 사실을 기억하라.
월남 패망 후의 베트콩과 공산 월맹을 도와 공산 통일의 한 축을 담당했던 월남 공산주의자들의 최후가 어떠했는지를 상상해 보라. 지상 낙원을 꿈꾸며 북송선을 탔던 在日(재일) 동포의 처참한 삶을 보라. 그래도 평양행 열차에 몸을 실을 것인가.
배부른 투정은 이제 그만 해야 한다. 투정이 도를 넘으면 파멸이 온다. 새 희망을 담을 새 부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새 부대 속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