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와 함께 취임지방자치 뿌리를 내리다 그러나...
  • 오는 7월 1일은 지방자치시대가 부활한지 꼭 20년이 되는 날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끈 지방자치가 성년을 맞은 셈이다.

    그 중에서도 수도 서울의 지방자치는 그 의의가 더욱 깊다.

    대한민국 정치·사회·경제·문화의 중심지라는 위상 외에도 서울만의 독특한 색깔을 나타내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지방자치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과거 관선 시장이 중앙정부의 정책에 따라 일률적인 정책을 펴는 방식에서 민선 시장과 투표로 선출된 시의회가 서로 견제와 균형을 통해 발전을 도모하는 민주적인 정책 입안 과정이 도입됐다.

    덕분에 좀 더 지역주민에 밀착된 경제·복지 정책이 펼쳐졌고, 지역별 특성에 따른 제도가 시행됨으로써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는 다양성이 생겨났다.

    일례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한강 대신 서울시만을 떠올리게 하는 청계천이란 아이콘이 만들어 졌다. ‘아리수’라는 서울시 수돗물 브랜드도 생겼으며 ‘시프트’라는 서울시만의 주택시스템이 개발됐다.

    <뉴데일리>는 서울 지방자치 20년을 이끌어온 민선 시장들을 재조명함으로써, 그동안 지방자치가 이룩한 성과와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초대 민선시장 조순, 지방자치의 뿌리를 내리다

  • ▲ 제30대 서울시장 조순 재임기간 1995.7.1~1997.9.9 ⓒ 자료사진
    ▲ 제30대 서울시장 조순 재임기간 1995.7.1~1997.9.9 ⓒ 자료사진

    1995년 7월 1일 지방자치 시대를 선포하며 조순 서울시장이 취임했다.

    경제전문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조 시장은 시정운영 3개년 계획과 부문별 중장기 계획을 수립했지만, 시작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취임 직전 벌어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1995.6.29)로 미처 축하의 인사를 주고받을 겨를도 없이 사고현장으로 내달려야 했다.

    덕분에 민선 1기의 서울시는 그동안 산재했던 문제점을 하나하나 들춰내 풀어가는 시기가 됐다.

    조 시장은 이후 민주당과 한나라당 총재를 거쳐 15대 국회의원이 됐다.

    ‘더 이상 사고는 없다’ 서울 안전관리 강화

    1994년과 95년에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일련의 대형사고로 서울에서는 안전문제가 큰 화두로 떠올랐다.

    조 시장은 ‘안전한 서울’을 시정의 최우선 과제로 과거 개발연대 부실의 상징이었던 성수대교를 튼튼하고 아름다운 다리로 새로 탄생시켰다.

    또 당산철교를 재시공하는 등 각종 도시시설물의 안전점검과 보수를 추진했다.

    도시방재상황실의 기능을 보강하고 전문 직원으로 구성된 안전점검기동반도 편성했다.

  • ▲ 삼풍백화점 붕괴현장에서 업무인수 받는 조순시장 ⓒ 자료사진
    ▲ 삼풍백화점 붕괴현장에서 업무인수 받는 조순시장 ⓒ 자료사진

    서울의 얼굴을 만들다, CI(City Identity)개발

  • ▲ 서울시 공식휘장
    ▲ 서울시 공식휘장

    21세기 세계 일류도시를 목표로 삼은 조 시장은 서울시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고 시민의 신뢰를 높여 나가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

    이에 따라 1995년 10월에는 CI 개발사업에 착수해 96년 10월 28일 서울시민의 날을 맞아 한글 '서울'을 서울의 산, 해, 한강으로 나타낸 공식휘장(심벌마크)을 선보였다.

    이 휘장은 현재 민선 5기까지 계속 서울시를 상징하는 엠블렘으로 쓰이고 있다.

    환경기본조례 및 환경헌장 제정

    그동안 관심 밖에 있었던 환경 문제가 화두로 오른 것도 이 시점이다.

    조 시장은 환경보존을 위해 환경기본조례와 환경헌장을 제정했다.

    ‘녹색서울 시민위원회’, ‘쓰레기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협의회’ 등 시민과 함께 환경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했다.

    또 서울의 환경보전을 위한 행동계획인 ‘서울의제21’을 작성하여 UN에 제출했다.

    여의도광장과 공장 이적지를 공원화하고 마을마당을 조성하는 등 공원녹지 확충 5개년계획을 추진한 것도 조 시장이었다.

  • ▲ 서울의제21 선포 및 서울환경상 시상식 ⓒ 자료사진
    ▲ 서울의제21 선포 및 서울환경상 시상식 ⓒ 자료사진

    신청사 이전 좌절 등 혼란의 시기

    지속적으로 제기된 좁고 오래된 청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 시장은 뚝섬 이전안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보라매공원과 동대문운동장 등 이전 지역에 대한 의견이 갈리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조장됐다.

    같은 서울 내에서 지역 이기주의가 조장되면서 시끄러운 시기였다.

    결국 서울시는 신청사건립자문위원회를 통해 97년 7월 용산으로 청사를 이전키로 확정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진 못했다.

    주한미군 측에서 이전 부지 5만평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후 지지부진하던 청사이전 계획은 다시 고건시장을 거처 이명박 시장 때 현 청사자리에 신축하는 계획이 최종 확정됐다.

  • ▲ 서울시 신청사건립자문회의 ⓒ 자료사진
    ▲ 서울시 신청사건립자문회의 ⓒ 자료사진

    과거 중앙집권시대의 법, 제도, 관행이 그대로 남아있어 지방자치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문제점도 있었다.

    조 시장을 이를 극복하기 위해 ‘법령정비추진단’을 구성해 인사, 조직, 재정 등 지방자치의 생산성과 직결되는 절실한 과제에 대한 관계법령의 제정 또는 개정을 중앙부처에 건의했다.

    그러나 이 노력들은 97년 의원입법으로 ‘지방자치발전촉진법’으로 발의되기 했지만, 보다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사안에서는 큰 변화를 가져오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