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친이 ‘현실의 벽’ 앞에 ‘와르르’친이→친박 홍준표, 당대표行 ‘성큼’
  • 김무성 한나라당 전 원내대표가 16일 7.4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난 5월, 1년간의 원내대표직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차기 당대표에 가장 가까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였다.

    그런 그를 두고 최근 정치권에서는 불출마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정치권의 예상이 맞아 떨어진 셈이다.

    경선룰 불리 ․ 친이계 외면 속 지지기반 약해

    그가 내세운 불출마 명분은 '수도권 대표론'이다. 당 대표가 내년 총선 승리를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접전, 혹은 열세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은 수도권 출신이 당 대표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 ▲ 김무성 한나라당 전 원내대표가 16일 7.4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김무성 한나라당 전 원내대표가 16일 7.4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당내에서는 그의 명분과는 다른 해석이 이어진다. 친이(친이명박)계 유력 당권후보로 거론돼 왔으나 경선규칙이 그에게 불리하게 확정되면서 불출마는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평가다.

    특히, 선거인단이 1만명 이내에서 21만여명으로 대폭 늘어난데다가 여론조사까지 30% 반영된 점이 그를 불출마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그가 홍준표, 나경원, 원희룡 의원 등 다른 당권 주자들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져 ‘당대표’는 어렵다는 예측까지 나왔다.

    김 전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전대 룰의 유불리를 따져본 적 없다”고 반박했지만 당 안팎의 분위기는 그다지 귀기울이지 않는 듯 하다.

    친박(친박근혜)계에서 친이계로 돌아섰지만, 친이계의 지지가 불투명한 것도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당권 도전을 위해서는 탄탄한 지지기반이 필요했으나 친이계는 미온적 태도로 일관했고, 친박계는 그를 반기지 않았다. 박 전 대표와의 거리감은 여전했고 유승민 의원이 출마를 선언하면서 우호적인 분위기 형성은 물건너간 꼴이 됐다.

    그는 전대 불출마가 친이계의 지원 유무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쪽(친이계)하고 내가 남다른 대화가 있었느냐. 불출마 결정까지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나 이재오 특임장관과 전화 통화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당 안팎에서는 친이계가 김 전 원내대표와 원희룡 전 사무총장, 나경원 전 최고위원 등을 저울질하면서 김 전 원내대표를 향한 지지 분위기가 기대이하인 데 실망했다는 지적이 뒤따르고 있다.

    친이→친박, 홍준표 당권에 “가까이, 더 가까이”

    김무성 전 원내대표의 불출마로 가장 부각되고 있는 사람은 단연 홍준표 전 최고위원이다.
    친박에서 친이로 돌아선 김 전 원내대표에 반해 친이에서 친박으로 온 케이스인데다가 당권이라는 ‘같은 꿈’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홍 전 최고위원은 친이계이면서 비주류로 분류됐다. 소위 친이계 실세인 이재오 특임장관과 어울리기 보다는 특유의 거침없는 행보로 ‘계파 없음’으로 봐야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던 그는 지난 5월 한 강연에서 “지금은 박근혜 시대다. 나는 박 전 대표의 대체제가 아닌 보완재”라고 언급했다. 유력한 대권후보인 박 전 대표와 연대를 형성하겠다는 공개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이를 계기로 친박계 중진의원들과 홍 전 최고위원의 접촉은 부쩍 늘었다.
    4.27 재보선 패배 이후 홍 전 최고위원과 친박계 의원들은 ‘전대 룰’을 비롯한 정치적 현안에 관해서도 수시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단독 회동한 지난 3일에는 친박계 중진인 서병수 전 최고위원과 홍 전 최고위원이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목을 끌기도 했다.

    최근 친박계에서는 유승민 의원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동시에 홍준표 전 최고위원을 지원하는 ‘연대 전략’도 구체화 되고 있다.

    김무성 한나라당 전 원내대표는.

    김무성 전 원내대표는 지난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 발탁,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이듬해 내무부 차관을 지냈다.

    이후 15‧16‧17‧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2005년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맡아 박근혜 당시 당 대표와 손발을 맞춰 재보선 ‘4대 0 전승 신화’를 이끌어 냈다.

    이때부터 친박계 좌장으로 불리던 그는 2009년 초, 박 전 대표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원내대표 출마를 준비하던 그가 박 전 대표와 상의 없이 친이측과 조율에 나선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당시 미국에서 이 소식을 접한 박 전 대표는 김 전 원내대표에게 불쾌감을 수차례 전달, 결국 출마를 접었다.

    지난해 초에는 세종시 논란 과정에서 ‘수정론’을 견지하면서 원안 고수론자인 박 전 대표와 정치적 결별에 이르렀다.

    당시 그는 정운찬 전 총리와 만나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이를 강하게 반대해온 박 전대표와의 관계에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박 전 대표가 그에게 쏘아 붙인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는 말은 지금도 회자된다.

    ‘탈박(脫朴)’한 그를 친이계는 지난해 5월 원내대표로 추대했다. 2006년 1월과 7월에 각각 원내대표 경선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신 그였다.

    계파를 초월한 합의추대를 통해 3수 끝에 원내사령탑에 오른 그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공고한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회 정치를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이미지로 '당 대표'라는 더 큰 꿈을 꾸었지만 어찌됐건 문턱에서 '분루'를 훔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 정치의 아이러니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