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연구소 방문 연설서..옐친 前 대통령 묘소도 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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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박 7일 일정으로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영삼 전(前) 대통령이 30일 한반도의 통일 전망에 대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30분(현지시간) 러시아의 한반도 문제 연구 중심지인 극동연구소를 방문해 연구원들과 러시아내 한국학 연구자 등 50여명을 상대로 한-러 관계에 대해 약 15분간 연설했다.
◇"남북한 통일 쉽지 않은 일" = 김 전 대통령은 연설이 끝난 뒤 한반도 통일 전망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남북한 통일에 대해 한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말들을 많이 하지만 통일은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특히 독일 사람들한테서 한반도 통일과 관련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일부 사람들은 동서독과 비교해 남북한이 더 쉽게 통일될 것으로 전망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1989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남북한이 동서독보다 더 먼저 통일될 것이라고 전망했었는데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다"며 "결국 내가 옳았다"고 덧붙였다.
김 전 대통령은 질의응답에 앞선 연설에서 1989년과 90년, 94년 세 차례나 러시아를 방문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나는 한-러 수교의 문을 직접 열었고 내 발로 그 길을 닦았다고 자부하고 있다"며 "그동안 한-러 관계가 꾸준히 발전해 양국을 오가는 사람이 연간 13만명, 양국간 교역규모가 연간 180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꿈이 남아있으며,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타고 러시아를 방문하는 꿈이 그것"이라며 "생전에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러시아는 서구문명과 동양문명, 이슬람문명을 수용하고 융합하여 러시아 문명을 탄생시켰다"면서 "그런 점에서 러시아는 문명충돌의 위기로부터 인류와 문명을 구할 소명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세계와 인류의 부름에 러시아와 한국이 손잡고 함께 동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역설했다. 대통령의 연설에 참석자들은 우렁찬 박수로 호응했다.
◇옐친 대통령 묘소 참배 = 한편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에는 모스크바 시내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있는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오전 10시 30분께 부인 손명순 여사와 정재문 전 국회 외무통일위원장,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 방문단과 함께 러시아 유명인사들이 다수 묻혀있는 노보데비치 수도원을 찾은 김 전 대통령은 수도원 중심부에 위치한 옐친 묘소 앞에서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묵념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묘지 옆에는 '제14대 대한민국 대통령 김영삼'이란 글귀가 적힌, 흰색 장미로 만든 대형 조화가 세워져 있었다.
김 전 대통령과 2007년 타계한 고(故) 옐친 대통령은 특별한 친분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은 1994년 6월 국가정상으로 모스크바를 공식 방문해 옐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 관계를 '건설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동반자관계'로 규정한 한-러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옐친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김 대통령에게 방러 선물로 고문서자료실에 보관 중이던 6.25 전쟁 관련 비밀문서를 전달했다.
1949년~53년 옛 소련과 중국, 북한 간에 오고 간 극비문서로 김일성의 선제타격작전 계획과 스탈린의 3단계 작전지침, 마오쩌둥의 전쟁개입 과정 등이 소상하게 담긴 귀중한 자료였다.
옐친은 또 김 전 대통령 부부를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자신의 별장(다차)으로 초청해 환대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이런 옐친 대통령이 2007년 4월 타계했을 때 김 전 대통령은 유가족에게 조의 전문을 보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전문에서 "재임 5년 동안 우리가 나눈 특별한 우정이 지금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며 "94년 방러 때 옐친 대통령이 조ㆍ소(朝ㆍ蘇) 자동군사개입조항이 핵심이던 북한과의 조약 폐기와 대북 무기부품 공급 중단을 확고히 약속하고, 김일성의 남침을 명백히 증명하는 6.25 전쟁 관련 문서를 전달해 주신 일은 지금도 특별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고 술회했다.
◇'귀머거리새의 추억' = 김 전 대통령은 또 지난 2002년 펴낸 자신의 자서전에서도 "94년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나는 특별메뉴로 '귀머거리새' 요리를 먹었다"며 "워낙 귀한 야생조여서 러시아 사람들도 맛본 사람이 드물다고 하는데 옐친 대통령의 지시로 경비대가 며칠 동안 숲 속을 헤맨 끝에 간신히 한 마리를 잡아 요리를 해줘 남김없이 먹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모스크바 도착 당일인 29일에도 러시아 측 환영 인사들과의 환담에서 옐친 대통령이 대접한 '귀머거리새' 요리를 언급하며 정말 맛있는 요리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옐친 전 대통령 묘소 참배를 마친 김 전 대통령은 인접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부인 라이사 고르바초바 여사의 묘도 찾아 묵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0년 3월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자격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해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을 추진 중이던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면담하고 한-소 수교 문제 등을 논의했었다.
당초 이번 방문에서 김 전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도 만날 예정이었으나, 고르바초프가 지난달 중순 척추 수술 후 아직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면담이 성사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