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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 철회’에서 시작해 ‘반값 대학 등록금’으로 번진 한나라당의 노선 논쟁은 당 안팎으로 많은 논란을 빚고 있다. 논란의 초점은 추구하는 정책이 과연 한나라당이 추구해 온 가치를 계승하고 있는지 혹은 전혀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는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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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근찬 한국사이버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뉴데일리
짐작컨대 한나라당은 최근 재•보궐 선거에서 보수층의 텃밭처럼 생각되던 지역마저 내주고 나서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민심의 쓰나미에 휩쓸려 버릴 것이라는 위기 속에서 여러 변화를 모색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정권을 책임지는 정당이라면 당연히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 다만 변화를 추구하되 자신의 가치를 계승, 발전시키면서 변화를 모색하기를 바라고 싶다. 그러려면 우선 자신의 정체성을 포함하여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것인데, 여기에는 우리가 피상적으로 쓰는 용어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이 요구된다.
현재 후기 산업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는 지난 세월에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1993년 성립된 문민정부는 ‘민주화, 자유화’를 주된 구호로 내세운 점이 큰 특징이었는데, 권위주의 시대의 정부의 규제를 단숨에 풀어 버리고 글로벌 대열에 합류하려고 시도했으나 그 후 몇 년 후 외채 상환능력을 상실해서 IMF관리 체제를 겪었다. 그 후 단기적으로 경제를 정부 주도의 방향으로 재편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대체로 세계화의 대세 속에서 세계적 차원의 흐름은 ‘신자유주의’, 즉 레이거니즘으로 불리는 것이었다. 이런 사조는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겪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신자유주의는 부의 극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부의 재분배를 위한 어떤 주된 노력도 정부에 의해 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의 주된 역할은 물질적 복리를 국민이나 기업이 추구할 때 호의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고 재산권 소유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 대칭점에 있는 사조는 경제적 자유주의로서 한 나라의 부는 빈곤의 짐을 가능한 한 완화시키는 방법으로 분배되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폴 크루크만(Paul Krugman)은 경제적 보수주의(Conservatism)와 경제적 자유주의(Liberalism)가 미국 건국 이후의 두 개의 큰 흐름이라는 전통 위에 서서, 그리고 그 두 전통이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다른 정당과 정부에 의해서 추구되었던 역사를 들고, 2008년의 세계 금융공황을 학제적 연구를 통하여 정확하게 예측했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크루그만의 생각을 따르자면, 경제적 보수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사조는 “보수 대 진보”라는 한국적 이분법의 차원이 아니라 늘 절차탁마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할 사조다.
한 편 정치적 의미에서 보수와 진보는 변화의 속도와 역사에 대한 관점에 관계된 것이다. 정치적 보수주의는 흔히 생각하듯이 과거를 고수하자는 것이 아니며, 역사의 뿌리를 중시하면서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되, 이상론을 거부하고 하나씩 실천 가능한 방안을 도구로 삼아 개선하는 사조를 말한다. 반면에 정치적 의미의 진보주의는 현상을 거부하고 급격한 변화를 모색하자는 것이므로 간혹 현재까지의 역사를 부정하며, 급진적이다.
한나라당이 ‘보수 정당’이라고 할 때, 바람직하게는 정치적 성향에서는 보수주의를 취하되, 경제적 측면에서는 현재의 경제 상황을 고려하여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간에 적절한 선택과 균형을 잡는 모습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보수주의를 유지한다는 것은 “역사의 계속성과 변화 간의 균형”을 근간으로 한다. 즉 “우리가 계승해야 할 역사는 무엇이고 앞으로 요구되는 변화의 방향은 무엇인가?”가 중요한 질문이 된다. 현 시점에서 이 질문을 한나라당에서 고민하고 있는 듯 한데, 이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의 방향이 무엇인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미래를 다루어야 하므로 쉽게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당연히 논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몇 가지 사건을 통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의 방향에 대한 힌트는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의 방향을 암시하는 단초가 된 사건으로, 얼마 전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正義)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판매가 백만 부를 돌파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 어려운 책을 책을 산 사람들이 다 읽은 것은 아닐 테지만 호주머니 돈을 털어 백 만부나 팔렸다는 사실은 유의할 만한 일이다. 지난 수십 년 간 인문교양서로서는 밀리언셀러라는 실적이 거의 희귀한 일이라는 것인데, 이는 우리 사회는 일종의 ‘정의 신드롬’에 쌓여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사실 오늘날 사람들이 희구하고 있는 ‘정의’는 단지 신드롬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고 그 밑바탕에는 사회의 양극화, 최근 부산저축은행에서 터진 사건처럼 사회의 지도층의 책임 부재나 부도덕성 같은 문제와 맞닿아 있으며, 더 넓게 보자면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공정거래와 상생에 대한 논란, 고용 없는 성장의 문제, 청년 실업, 비정규직 문제 등이 모두 사회 정의의 문제와 관계 된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고민은 일단 당연한 고민이고 마땅히 해야 할 고민이다. 다만 계승해야 할 가치와 모색해야 할 변화 간에 균형을 잘 잡기를 바랄 뿐이다.
한나라당이 정치적으로 ‘진정한 보수’를 추구한다면 이를 잘 정의하기 위해서 ‘진정한 보수’가 아닌 보수주의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진정한 보수가 아닌 보수주의자는 일종의 ‘수구적 보수’로서, 사안을 너무 고착적으로 생각하고, 사회 전체를 외면한 채 자신이 속한 부류 위주로 생각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문제를 거론하면, “이전부터 다 해 왔던 일을 왜 새삼스럽게 꺼내느냐?”고 눈을 흘긴다. 청년 실업이나 비정규직 문제를 거론하면, “실력 있는 사람은 다 좋은 직장에 들어간다.”고 하며 사회적,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중도’라는 단어만 나와도 뭔가 근본을 흔들자는 것 아니냐며 신경질을 부린다. 이들은 성장 일변도의 경제지상주의가 국가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사실만 강조했지 지속 가능한 사회가 안 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한다.
결론적으로 한나라당이 정치적으로 진정한 보수정당을 자처한다면 당연히 새로운 변화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거쳐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는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도 아니며, 지엽적인 정책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진정한 변화는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가 어떤 역사적 관점을 가지고 가치를 가꾸어갈 것인지의 차원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