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방사능 누출 공포로 다시 떠오른 나가이 박사원폭 피해 후 희생과 헌신의 삶 5년 새롭게 화제
  • 원자폭탄은 모든 것을 휩쓸어갔다.
    병원에서 집까지는 겨우 1㎞.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환자 구호에 정신이 없던 그는 피폭 3일만에야 집과 아내 생각이 났다.
    집들은 모두 잿더미였지만 그는 쉽게 자기 집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부엌이 있던 자리의 새까만 덩어리...
    그것은 그의 아내의 타고 남은 골반과 허리뼈였다. 그 곁에는 십자가가 달린 로사리오(가톨릭의 묵주)가 떨어져 있었다.
    그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아내를 그을린 물통에 주워 담았다.
    그의 품안에서 아내가 바삭바삭하는 인산석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의 귀에는 그 소리가 “죄송해요, 죄송해요”라고 아내가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지난 3월 11일 일본 동북부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의 파문 속에서 반세기 전
    원폭으로 폐허가 된 나가사키를 울렸던 한 의사의 이야기가 새롭게 화제가 되고 있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미 공군 B29 폭격기가 나가사키 상공에서 투하한 원자폭탄으로 나가이 다카시(永井隆) 박사는 아내를 잃고, 본인도 오른쪽 두부 동맥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는다.
    나가사키 의대 병원 방사선과 전문의였던 나가이 박사는 피폭 이전 이미 백혈병에 걸린 암환자. 하지만 그는 열 살 난 아들 마코토와 네 살짜리 코흘리개 딸 가야노를 힘겹게 키우면서도 이웃에 대한 사랑을 변함없이 베풀며 시한부 인생을 아름답게 살다 떠났다.

    나가이 박사는 피폭 이전에는 대학병원 환자를 돌보지 않는 날이면 멀리 무의촌을 찾아다니며 병자들을 무료로 진료하던 의사였다.
    느닷없이 당한 원폭 투하에 구호 지휘자로 나서서 당시의 상황을 정리하고, 세계 의학계에서는 최초였던 ‘원자폭탄 구호 보고서’를 작성하여 나가사키 대학에 제출했다.
    그의 목적은 첫째, 원폭의 진상 기록은 역사, 문학, 국제법, 의학, 물리, 토목공학, 종교, 인도주의 문제의 자료로서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정확하게 기록하는 일이었다.
    또 둘째로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는 외침을 피폭 생존자들이 한 목소리로 계속 외치는 일이었다. "전쟁은 나가사키가 마지막이다"라고...
    나중에는 병석에 누워 운신조차 어려운 상태에서도 ‘원자병과 원자의학’이라는 연구 논문을 학회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방사선 전문의로써 피폭 체험까지 가진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귀중한 자료였다.
    병마를 떨치지 못한 박사가 몸져눕자 1949년에는 교황이 길로이 추기경을 특사로 파견해 문병했고 헬렌 켈러 여사가 방문하기도 했다. 나가사키 시에서는 같은 해 12월, 그에게 영원한 ‘명예시민’이라는 칭호를 바쳤다.

  • ▲ ‘눈물이 마를 날은 언제인가’.ⓒ뉴데일리
    ▲ ‘눈물이 마를 날은 언제인가’.ⓒ뉴데일리

    1951년 43세의 한창 나이에 귀천한 나가이 박사의 헌신은 원전 방사능 유출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과 세계 각국에서 최근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일본 구루메의과대학병원 방사선과 의사인 아베 유미씨는 29일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로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방사능 피해를 두 번 입은 국가가 됐다”라며 “나가이 박사가 ‘전쟁은 나가사키가 마지막이다’라고 외쳤던 것처럼 그는 지금 하늘나라에서 방사능 피해는 후쿠시마가 마지막이다‘라고 안타까워 할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 나가이 박사가 생전에 남긴 ‘로사리오의 기도’를 국민일보 도쿄특파원을 역임한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이 ‘눈물이 마를 날은 언제인가’라는 제목으로 펴냈다.(해누리 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