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의 인디언 썸머? 
                                    오정인 (ON뉴스 발행인, 소설가)
     

    20일 지린성 투먼을 통해 중국 땅에 발을 들여 놓은 김정일의 대장정이 나흘째다. 
    특별열차에 몸을 싣고 신장투석기까지 싣고 열차 3량에 의료기기와 의료진을 싣고, 70고령의 김정일이 열차에서 자면서, 무단장, 하얼빈, 창춘, 선양, 라오닝 성, 베이징 근처의 텐진을 거쳐 다시 남쪽으로 산둥성, 장수성을 지나 난징, 그리고 양저우까지 이미 3000KM를 달리고 있다. 
    건강 과시를 위해? 경협을 위해? 아버지 김일성의 유적지를 밟아, 중국 조차지역 나선시를 위한 자동차 공장 시찰을 위해...등,등. 그러나 나는 아직도 얼마가 더 계속될지 모르는 그의 중국대륙 유랑 길에 드리운 검푸른 이끼 빛 쓸쓸한 그늘을 느낀다.
     
    그리고 중국의 유서 깊은 창춘(長春)을 떠나기 전의 그곳 관리들과의 오찬에서 그는 “다시 오겠다”(下次還回來-샤츠하이후이라이)고 목소리도 우렁차게 외쳤다는 것이다.
    언론들은 그의 건강이 회복되었고, 건강과시와 우렁찬 목소리와 밝은 표정 등을 묘사하면서 혈색도 좋아졌다고 보도했다.
     
    같은 시기, 일본에 간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중국에서 김정일을 초청한 것은 ‘중국의 경제발전을 보라는 의미였다’고 했다.
    물론 중국도 비핵화를 전제로 한다고 했다. 
    중국의 어느 관리는 북한을 방문해서 북,중의 관계는 피로 맺은 돈독한 것이라고 새삼 강조했다.
     
    실은 김정일은 창춘에서 바로 베이징으로 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의 특급열차는 베이징의 바로 근처인 텐진을 지나치고 계속 남쪽으로 향했고, 웬만한 나라만큼이나 넓은 두 개의 성을 밤낮으로 관통해서 양저우에 이르러 여장을 일시 푼 것이다.
     
    김정일은 웃고 있을까? 그는 초조해 할 것이다.
    이번의 중국 대장정 자체가 실은 김정일의 원초적인 초조감에서 시작 된 것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첫째, 경제 문제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만한 북한의 실정이다.
    지난번의 방중에서 김정일은 전투기를 포함한 식량 등, 많은 것을 요구했고 거의 거절당했을 수 있다.
     
    둘째, 김정은으로의 후계문제를 중국으로부터 인정받는 일이다.
     
    중국은 서방세계를 향해서는 김정일의 의도에, 혹은 김정은의 문제에 상세히 언급하는 것을 피하는 걸로 어느 정도 김정일의 체면을 세워준다. 그러나 중국은 3대 세습이라는 문제에 강한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더구나 아무리 공산주의라도 피 속에 흘러 아직 완전히 말살 시키지 못한 동양적, 유교적 사상에서 장남도 아닌 차남에 의한,. 그리고 이제 겨우 20대이다.
     
    그동안 김정일은 김정은의 중국방문과 중국의 김정은 인정에 많은 공을 들이고 중국지도부 내의 모든 지인들을 동원해 간곡히 설득했을 것이다.
    김정일 스스로가 김정은을 세운 이상 그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이루어 놓아야 할 그의 마지막 일이다.
    그러나 중국의 공산당 나름의 품위에도 3대 세습 인정은 곤란할 것이다.
    중국은 그들의 다음 지도자를 예측 가능하게 공식적으로 양성하고 절차를 거쳐 뽑아 세우는 문제라든가 자신들의 공산주의 운영에 대해 현재 체제에 상당한 긍지를 가지고 있다.
    경제를 개방하고 부국으로의 도약을 하면서도, 체제는 그들의 공산주의국가로 가야하는 과제가 중국 지도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 현실에서 김정은이 공식적 중국 방문 시에, 시대착오 뿐 아니라 공산주의적 이념에도 전혀 맞지 않은 봉건적 세습을 받은 20대의 김정은을 상대할 중국의 지도자 문제도 격이 맞지 않는다.
    현 주석인 후진타오인가? 차기 주석으로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시진핑 부주석인가?
     
    북한 김정일 부자로서야 그들이 김정은을 맞아 한번 안아주면 대내외적으로 더할 것 없이 좋겠지만, 중국의 위신으로는 아직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 할 것이다.
    더구나 중국이 김정은이 방중하려면 항공편으로 오라는 것을 굳이 열차편으로 가겠다고 했다는 소식까지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래서 김정일은 초조해 진 것이다.
     
    언제나 강조했듯 중국은 중국의 이익을 위한다. 물론 어느 나라나 자신의 국익을 가장 먼저 위한다. 
    중국의 지난 올림픽, 개,폐회 등, 세계에 중계되는 큰 행사를 보면 현재 중국지도부들의 방향이 보인다.
    대륙의 나라에서 언제나 꿈처럼 현란한 색체의 화려한 범선을 띄웠다.
    그들은 그들의 나라 이름처럼 중화민국으로서의 자긍심과 함께 해양으로의 진출에 대한 꿈을 가진 것으로 나는 보았다.
     
    이미 일본을 제치고 군사,경제 등 모든 면에서 중국은 미국과 비교되는 G2의 나라다.
    중국의 그 꿈에서 동해가 태평양에 면해 있는 북한의 위치는 중요하다.
    중국은 이미 북한의 나선지구를 조차했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지하자원 등 우리가 모르는 북한의 중요 부분은 중국의 영향권에 이미 많이 들어 가 있을 것으로 보도되곤 한다.
    그래서 아직은 김정일은 중국에게 중요한 형제이고 귀빈이다.
     
    그런 김정일이 지금 나흘,그리고 닷새 째 베이징을 중간에 두고 신장 투석기까지 싣고 열차에서 자며 중국대륙을 관통하면서, 유랑? 혹은 외유를 하고 있다. 김일성의 유적지와 장쩌민의 생가를 둘러 보면서. 대형 마트에도 가 보면서. 
    김정일의 초조감의 절정은 창춘의 난후 호텔 오찬에서 일시 외침으로 터진 셈이다. '다시 돌아오겠다 (샤츠하이후이라이) ’...아주 흔하고 짧은 인사말 ‘짜이젠 (在見)’조차 통역을 시켜 온 김정일 이었다.
     김정일은 지금 베이징의 시혜성 부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들 김정은을 위해 , 다급한 경제적 원조를 위해 , 핵문제와 북한의 장래에 대한 중국의 이해를 위해.
     
    그리고 중국은 아무리 높은 구두를 다시 신고, 얼굴에 일시 화색이 도는 살이 붙어도, 어쩔 수 없이 환자인 그를 견학시키고 있다. 첫날 투먼으로 향할 때, 창춘에서의 호기로운 외침 때 까지도 건강해 보이던 김정일이 나흘째는 열차를 내릴 때 부축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침묵하며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은 초조하고 기운 빠져 비틀거리는 그를 아직은 베이징으로 오라는 적극적 신호를 보내지 않은 모양이다.
    이것은 김정일에 대한 것보다, 이제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된 중국의 무한한 자긍심, 혹은 김정은과 북한의 군부와 다음 지도부와, 북한의 전 주민들에게, 그리고 미국과 서방 국, 한반도 당사자인 한국을 비롯한 세계에 대한 무언의 중국식 보이기, 혹은 길들이기 일 수도 있다.
     
    지금 김정일은 중국의 검고 꿈틀거리는 가없이 넓은 대륙을 쓰디쓰게 횡단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중국은 곧 김정일을 만족시키지는 않겠지만, 빈손으로 가게 하지는 않을 수 있다.
    중국과 북한은 혈맹이고, 북한은 중국에게 전략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정일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이유, 그 자신도 모르는 하늘의 운명적 신비한 원초성.
     
    그는 지금 인디언 썸머를 맞아 그 자신도 놀라울 정도의 기적과 같은, 촛불의 마지막 가장 눈 시린 밝음, 혹은 황혼이 지기 전의 가장 화려한 색감이 펼쳐지는 광활한 노을, 차디찬 서리가 오기 전 늦가을의 이해 못할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햇살과 같은 ...그 순간을, 김정일 자신의 삶의 ‘인디언 썸머’를 중국의 대장정으로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의 누구도 그를 초대하지 않아도, 그는 날 좋은 5월을 택해 이 대장정을 시작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는 초대받지 못했지만,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부름을 어디에선가로부터 받고 그 신비한 소리를 향해 고집 부려 왔을런지도 모른다.
    그의 생의 그림자에 어느새 드리운 검푸른 이끼색의 깊은 초조감으로.
     
    '샤츠하이후이라이 (下次還回來 )'
    김일성의 유적이 있다는 창춘(長春)에서 김정일이 외친 다시 오겠다는 유난히 우렁찬 외침은 어쩌면 '안녕' 일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