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받는 나라서 원조 주는 나라로,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에게 "다 선배들 덕분"
  • 헌 옷 얻기 위해 미선교사 앞에 줄선 소년

    [베를린=선종구 기자] “헌 옷을 얻고 싶어 미국 선교사 앞에 줄 섰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이 이제 세계 다른 나라 원조하겠다고 선언하는 대통령이 됐습니다”

    줄은 섰던 소년은 당연히 이 대통령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미국 선교사 헌 옷을 받아 입었던 과거를 회상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일 방문 첫 날인 8일(현지 시간) 베를린에서 동포들을 대상으로 강조한 말은 ‘통일’만이 아니다. 남북 통일 못지 않게 ‘자긍심’을 강조했다. 우리가 세계에 견줘 자긍심을 가질 만큼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그 자긍심을 '미국 선교사에게 헌 옷 입던 소년이 대통령이 되어 이제 외국을 돕고있다'고 표현했다.


  • ▲ 이명박 대통령이 8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도린트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파독(波獨) 간호사 합창단원들을 격려하고 있다.ⓒ연합뉴스
    ▲ 이명박 대통령이 8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도린트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파독(波獨) 간호사 합창단원들을 격려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대통령이 이 말을 한 자리에는 1960년대, 70년대 돈을 벌기 위해 독일로 파견됐던 광부와 간호사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그래서 더욱 참석자들의 마음 속을 파고 들었다.

    그 때 밤새 시체를 닦아 번 돈을 고국으로 보냈던 한 간호사는 80여세의 할머니가 돼 이 대통령을 만났다.


    파독 인력 수출로 번 돈, 한국 산업혁명의 주춧돌

    당시 파독 광부-간호사들이 보내온 소중한 외화는 한국 산업혁명의 첫 주춧돌로 쓰여졌다.

    1965~67년 이들의 송금액은 한국 총수출액의 1.6%, 1.9%, 1.8%에 해당됐다. 이들이 1965년부터 1975년까지 10년간 송금한 총액수는 무려 1억153만 달러에 달했다.

    1960년대 한국은 세계 최빈국이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독일에서 상업차관 3000만 달러를 빌려와 경제개발에 쓰려 했지만, 차관을 보증할 방법이 없었다. 독일 정부가 무엇을 믿고 돈을 꾸어주겠는가.

    박정희 정부는 결국 독일에 광부 5000명과 간호사 2000명 등 '인력'을 수출하고, 이들이 받는 봉급을 담보로 제공해 차관을 도입했다.

  • ▲ 박정희대통령의 독일 방문 당시 파독광부-간호사들이 환영하기 위해 공항에 나온 모습ⓒ
    ▲ 박정희대통령의 독일 방문 당시 파독광부-간호사들이 환영하기 위해 공항에 나온 모습ⓒ

    1963년 12월 21일 최초로 247명의 젊은 한국인들이 한반도를 떠나 독일 땅을 밟았다. 1977년까지 7968명의 광부와 1만 2000여명의 간호사가 독일로 파견됐다.

    파독광부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위험수당이 걸린, 독일 현지 광부들도 꺼리는 가장 위험한 일을 도맡아 했다. 탄광에서 가장 깊은 곳과 사고현장 복구 등 어려운 일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간호사들도 사체 처리나 야근 등 가장 힘들지만 수당이 더 붙는 일들을 억척스레 해냈다.

    이들은 모두 고졸이상의 고학력자들이었다. 첫 파독광부 모집 때는 경쟁률이 10대 1이 넘었다. 이들은 억척스럽게 일했고, 틈틈히 못다한 공부도 했다.

    한국파독광부총연합회에 따르면, 파독광부 출신 대학교수만 3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 누이 머리 짤라 내다 팔아 오늘의 번영 일구다

    이 대통령은 국민소득 80달러로 최빈국이었던 시절도 떠올렸다.

     “수출품이 없어 우리는 우리 어머니, 누이 머리를 잘라 내다 팔았습니다” 

    우리 여성들의 머리칼이 좋아서 미국에서 우리 가발이 인기를 끌었던 시대가 있었다는 시절을 재삼 떠올렸다.

    그런 나라가 이제는 다른 나라를 원조하는 국가가 됐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그런 위치에 섰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굉장한 자긍심을 느낍니다”


    이 대통령은 그 원동력을 ‘교육’에서 찾았다. 이에 관한 버락 오마바 미국 대통령과의 대화도 소개했다. 오마바 대통령이 어떻게 해서 (한국이) 이렇게 됐는지 궁금해 하기에 “교육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G20정상회의 이후 나온 뉴욕타임스의 기사도 인용했다. “대한민국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대한민국 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이 대통령은 나라가 이런 칭찬을 듣게 된 공을 독일 광부와 간호사, 70년대 파견 중동 근로자들에게 돌렸다. 이들을 ‘선배들’이라고 불렀다.

    “다 선배들이 노력한 덕분에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또 “선배들 덕분에 세계 방방 곳곳에 삼성과 LG의 상품이 있고, 현대차 없는 곳이 없다”고 역설했다. 국회를 통과한 EU와의 자유무역협정(FTA)도 그 연장선에서 봤다.


    모두 다 선배들이 노력한 덕분

    이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녹색성장에서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이슈를 주도하는 국가가 되었음을 동포들에게 알렸다. “주요 문제를 주도하는 국가의 하나가 됐다는 높은 자긍심을 남보다 더 피부로 느낀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 스스로 이 나라를 부강케 한 초석을 놓은 선배라고 불렀던 80여세의 파독 간호사 앞에서 한 말이라 유난히 마음을 울렸다.

    이 대통령은 이자리에서 독일 동포들이 그간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모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양국 관계 증진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해온 점을 아주 높이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또 G20 정상회의를 치른 나라로서 우리 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음을 밝히고 한-독 양국관계 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도 한-독 관계에 좋은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을 당부했다.


    이 자리에는 최병호 재독한인회장, 정정수 베를린 한인회장을 비롯한 독일 북부지역 동포 300여명이 참석했다. 

    독일에는 현재 3만1000여명의 동포가 살고 있다. 1960년대와 70년대 독일에 진출한 광산근로자 및 간호사, 상사 주재원 및 유학생 등이 주류를 이룬다.

    이 가운데 독일 북부 지역에는 베를린 지역에 약 6200여명, 함부르크 및 인근지역 약 4600여명의 동포가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