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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FTA 국회비준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야권의 행태는 참으로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민주당은 '민노당 2중대' 같았다. 손학규 대표는 '기회주의자' 처신을 했으며, 이회창 대표는 추한 '지역주의자'로 전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동영 천정배의원은 차라리 민노당으로 가는게 나을 것 같은 행동을 연출했다.
애초 민주당은 FTA로 인한 국내 피해를 이유로 국내 대책 보완후 처리를 주장했다. 이에 따라 여-야-정 3자 회의가 열렸다. 정'부는 각종 보완대책을 제시했다. 여당은 야당이 요구하는 법안 처리를 약속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과 민주당 원내 대표들은 비준안 처리를 합의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거의 100% 얻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민주당은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다른 야당들이 "야 4당 정책연합 합의에 어긋난다"고 반발하자 이같은 여야 합의를 없었던 일로 뒤집었다.
4·27 재·보선의 야권 후보단일화를 위해 민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야 4당과 시민단체들은 지난 4월 13일 이른바 '야권 정책연합'이란 걸 맺었다.
이 정책연합 합의문은 '한·미 FTA, 한·EU FTA 비준 저지 및 전면 재검토'를 비롯한 10개항으로 구성돼 있다. 이 10개항에는 작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서울대 법인화법과 UAE 파병동의안 폐기와 함께 기업은 '객관적이고 타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비정규직을 채용할 수 있으며 최저임금도 현행보다 25% 이상 인상해야 한다는 항목 등이 들어 있다. 오로지 선거만 염두에 둔 '야합적 정책연합'이 이뤄진 것이다.
4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비준안 처리에 찬성한 사람은 박 원내대표 1명뿐이었다. 손학규 대표는 유보, 정동영·정세균·이인영·천정배·박주선·조배숙·김영춘 등 나머지 7명의 최고위원은 반대했다. 정동영·천정배 최고위원은 3일 국회 본청 앞 계단의 권영길 민노당 원내대표 양옆에 나란히 서서 FTA 처리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결국 민주당은 국회 표결에 불참하는 것으로 민노당의 기대에 부응했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 가운데 조차 "우린 민노당 2중대"라는 자조가 터져나왔다.
주가 오르던 손학규, 기회주의적 처신
‘분당대첩’ 승리로 귀환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국회 복귀 첫 무대에서 신뢰성에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원내 87석의 제 1야당의 대표이자,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른 손 대표는 여당과의 합의를 두고 당내는 물론 민노당 등의 비판에 직면하자 자신의 입장과 모습을 싹 감춰 버렸다. 일체 자신의 입장을 표출하지 않고, 최고위원회의 투표에서도 유보라는 애매모호한 자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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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4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한·EU FTA 비준동의안 처리에 반대하며 농성 중인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FTA는 손 대표 자신이 경기지사 시절 적극적으로 찬성했던 사안이다. 그의 행보와 과거 발언을 보면 당당하게 찬성하고 싶은 데, 눈치를 보느라 그러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 역력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기회주의적 처신 뿐이었다.
이회창, 잊혀진 ‘보수’ 기댈 건 ‘지역’ 뿐?
'원조보수'를 자임하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도 한·EU FTA 국회 비준에 반대에 서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회창 대표는 소관 상임위인 외통위 통과 당시부터 반대표를 던졌다.
반대 근거로는 피해산업 대책 마련 부족과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밀실야합’ 등. 간단히 말해 한나라당과 함께할 바에야 민노당과 손을 잡겠다는 것으로 비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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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선진당 이회창대표 등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29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과학비즈니스벨트 후보지 세종시 탈락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회창 대표는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잇따라 겪으며 보수 원로에 걸맞는 발언을 쏟아냈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일부 종교인들의 잘못된 행태도 비판했다. 과거 ‘대쪽본능’이 살아났다는 찬사도 나왔다.
그러나 현재 그의 머릿속엔 ‘보수’는 잊혀지고 ‘지역’만 남은 듯하다.
이 대표는 지난달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분산 배치 가능성이 나오자 대표직 던지겠다, 합당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적 승부수이기 전에 충청권 맹주로 살아남겠다는 간절함이었다. 정치인의 생명과도 같은 정책을 두고는 진보세력과 부화뇌동(附和雷同)을 연출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빚고 있다. 지역 외의 현안은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한순간에 선진당은 ‘민노당 3중대’로 전락했다. 이제 누가 선진당과 이회창 대표를 ‘보수정당’ '보수원로'라 부를까. 그저 ‘충청당’과 '지역주의자'일 뿐이다.
정동영‧천정배 ‘듀오’…이참에 민노당으로 옮겨라
민주당의 한ㆍEU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반대로 뒤집은 2명의 공신이 있다. 정동영, 천정배 최고위원이다. 이들은 지난 3일 국회 본관 앞에서 권영길 민노당 원내대표 등과 기자회견을 열고 FTA 반대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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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가운데)은 지난 3일 권영길 민노당 원내대표,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 등과 한ㆍEU FTA 국회 비준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 자리에서 천 최고위원은 “왜 민주당이 한·EU FTA 처리에서 들러리를 서나. 민주당은 야 4당 합의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정 최고위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목청을 높였다. 민주당 최고위원들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에 걸맞는 주장을 쏟아냈다. 민주당 옷을 입고 민노당 노래를 부른 격이다.
FTA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핵심과제로 추진한 정책이다. 당시 천 최고위원은 법무부, 정 최고위원은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참여정부 국무위원 출신인 두 사람의 행보에 눈살을 지푸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누워서 침뱉기'다. 이를 피하고자 한다면, 소속 정당을 옮기는게 올바른 처신일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