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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초나라 군사의 노래 소리만 들리는가(四面楚歌).
이 정부에서 국회의장을 지낸 5선 의원은 “레임덕은 필연이다”고 말했다. 김형오 의원의 선언이다. 초선의원은 “청와대가 호루라기 불면 다 된다는 정치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식 의원이다. “정부-여당이 제2의 6•29선언을 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정두언 의원이다. 안상수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연일 싸움질이다. 총사퇴를 선언했으면서도 우군(友軍)끼리 싸울 힘은 남아 있나 보다.
모두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내에서 불거지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백가쟁명(百家爭鳴) 식으로 터뜨린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우군인 줄 알았더니 주위에 초군(楚軍)만 눈에 띄는 형국이다
사방에는 초군(楚軍)의 노래 소리만...
재계(財界)는 말은 않지만, 시선은 곱지 않다. 그래서 대통령이 경제 5단체장을 만난다. 친시장 정책이 왜곡됐다는 것이다. 청와대 비서진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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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뭐라고 말했나. 선거에서 표로 말했다. 영원한 텃밭일 것 같던 성남 분당을 국민들도 말했다. 그래서 졌고, 그래서 사방에서 초나라 군사의 노래 소리만 들린다.
왜 졌을까.
대통령중심제 아래서 누구 탓을 할 수 있을까마는 문득 맹구지환(猛狗之患)이 떠오른다. 한비자(韓非子)가 말한, 술집에 손님이 없는 이유다.
송나라 때 술도 넉넉히 주고 참 친절한 술집 주인이 있었다. 이 정도면 술집에 손님이 많아야 하는 데 그렇지 않았다. 점점 줄던 손님이 한 순간부터 뚝 끊겼다. 답답한 주인이 동네 현인(賢人)을 찾아가 이유를 물었다. “너희 집에 있는 사나운 개가 손님을 다 내쫓는다”는 것이 현인의 말이었다. 쉬운 해답이다. 주인만 몰랐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가 그렇다. ‘사나운 개’가 얼마나 많은 손님을 내쫓았는지, 국민을 표로부터 멀어지게 했는지 더듬어 보면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오는 손님 스스로 내쫓았다(猛狗之患).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전국을 휩쓴 구제역은 식상한 주제지만, 얘기해야 한다. 소와 돼지 총 350여만 마리가 도살, 처분됐고 피해액이 3조 원 정도에 이르기 때문이다. 구제역 감염 가축 매몰지만 전국적으로 4000곳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초동 방역은 뚫렸고 대책은 항상 뒷북을 쳤다.
물가는 어땠나. 전셋값과 더불어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국회에서 답변 나선 주무장관은 “이제 짐을 내려놓고 싶다”고 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이다. 표를 쥔 국민들이 볼 때는 김빠지는 소리다.
구제역과 물가가 고전적이라면 선거를 코앞에 두고 ‘맹구(猛狗)’ 노릇을 한 사례도 다섯 손가락을 넘는다.
가장 막장 드라마가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 직전 VIP고객 돈만 빼돌린 일이다. 임직원이 자기 돈 먼저 빼돌리기까지 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갔다. 한 신문은 이를 두고 “금융막장…그날 밤, 그들은 사악했다”고 썼다.
분당을에 사는 주민이 이에 반격을 가했다. 40대의 한 분당 직장인은 점심도 거른 채 지난 27일 투표장에 나갔다고 한다. 그는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두고 “이 정부가 부유층만 편든다는 인식이 직장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바로 그 영업정지 정보를 지역 국회의원이 알려줬다고 해서 난리다. 선거가 끝난 뒤였으니 망정이지 선거전이었으면 표 떨어지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뻔했다.
쉽게 이길 거라고 내보냈더니 너무나 어이없게 진 후보도 있다.
강원도지사를 노린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다. 언론이 ‘불법 전화방’이라고 조롱한 펜션 전화유세는 스스로 지기 위한 선거의 ‘백미(白眉)’로 꼽힐 만 하다. 오죽 했으면 수도권 표심까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까.
너무 자신만만해서 그랬겠지만 분당을을 놓고 벌어진 공천싸움은 자당 후보를 수렁으로 밀어 넣는 꼴이 됐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과 강재섭 전 대표를 두고 벌인 논란은 ‘후보공천, 이렇게 하면 망한다’의 교범으로 남을 전망이다. 자기 당 스스로 함량미달인 후보를 내세워 유권자들로부터 심판 받게 하겠다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의 대표적인 사례다.
거기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이라고 불리는 인사는 국민들에게 ‘오만하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이재오 특임장관이다. 선거직전에 계파 의원들을 모아놓고 ‘선거 잘해보자’는 단합대회를 가졌다. 야권이 특임장관의 선거개입이라고 비난하자 그게 왜 선거개입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권의 화살은 결국 이 대통령에게까지 미쳤다.
한나라당 정책위의 감각도 미숙하기 짝이 없다.
만 16세 미만 청소년들이 심야시간 온라인 게임을 못하게 막는 셧다운제는 환영할 제도다. 그런데 꼭 선거직전에 법안 처리절차를 밟아야 했을까. 분당에 벤처기업이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무적 감각이 떨어졌다는 말과 다름 없다.
초과이익공유제를 둘러싼 논란도 패배의 밥그릇에 한 숟가락 얹었다.
대책 없이 툭 내던진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나 대책 없이 깔아뭉개려 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나 볼썽 사납기는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였다. 게다가 정 위원장은 대통령을 상대로 ‘떼쓰는 모습’까지 보였다.
자신만이 잘났다는 빛을 누그러뜨리라(和光同塵).
그렇다면 이 국면을 어떻게 해야 하나. 사방에 울려 퍼지는 초나라 군사의 노래 소리를 어떻게 잠재워야 하나.
수습의 고삐는 이 대통령이 쥐고 있다. 그러나 나서기는 정부-여당이 모두 함께 해야 한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도, 서로간에 삿대질하는 것도 다 제살 깎아 먹기다. 각 집권 세력 구성원 스스로 광채를 줄이고 세상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자세다. 자신만이 잘났다고 뿜어내는 빛을 누그러뜨리고 국민 속으로 함께 들어가야 한다.
계곡의 물은 가장 낮은 곳에 있기에 가뭄에 마르지 않는다(谷神不死).
겸손하라는 뜻이다.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이제 중요한 것은 개각과 청와대 개편 인사다”라고 말했다. 작금에 이 정부가 국민 앞에 겸손함을 보이는 중요한 단초가 곧 있을 이 대통령의 인사라는 것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가장 평범한 말이 가장 국민 마음에 와 닿을 것이란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