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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있고 시계가 있다
시간을 알기 위하여 시계가 있습니다. 좋은 시계는 볼 때마다 정확한 시간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전자시계가 나타나기 이전에는 인간이 만든 모든 시계는 1년 열 두달, 365일을 뛰고 나면 몇 초 내지 몇 분은 틀리게 마련이라고 들었습니다. 영국 민주정치의 상징인 국회의사당 탑에 걸린 저 유명한 빅벤(Big Ben)도 시간을 바로잡기 위한 작업을 꼭 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자주하는 것은 아니겠지만.김일성의 어렸을 때 절친한 친구였던 손원태 씨는 오마하, 네브카에서 개업하고 있던 저명한 의사였는데 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이었고 그의 형은 손원일 해군제독이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손 의사가 오마하에 산다는 소식을 듣고 김일성이 그를 평양으로 초대하였습니다.
손 씨는 옛 친구가 그리워 그 멀고 험한 길을 떠나 마침내 궁궐 같은 김일성의 집무실에 갔습니다. 처음에는 김 씨가 손 씨를 알아보지 못하고 한참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손 의사의 손을 꽉 잡으며, "야, 너 원태 아니가."하며 그렇게 반가워 하더랍니다. 한참 옛날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김일성이 진지한 표정으로, "원태야, 좀 자주 오라. 우리가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느냐."라고 하였답니다.나는 그 말을 듣고 그것이 김일성이 던진 그의 평생에 가장 의미심장한, 철학적인 한 마디였다고 생각했습니다. - "원태야, 좀 자주 오라. 우리가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오래 살겠느냐." 그 두 사람이 다 세상을 떠난지 오래 됩니다. 그런데 김일성이 손 의사에게 그 때 선물로 준 시계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의 싸인이 적혀있는 롤렉스 금시계였는데, 손 의사가 그걸 가지고 오마하의 한 시계포에 가서 값을 물었더니 그 때 돈 5만 달러라고 하더랍니다. 그 시계가 지금은 누구 손에 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두 사람은 다 '시간이 필요없는 저 세상'으로 갔으나 그 시계는 여전히 뛰고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 시계보다 시간이 소중한 것임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매우 서글픈 사실입니다. 롤렉스 금시계를 차고도 통일의 그 날을 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오히려 스위스 밀리터리의 50달러짜리를 차고, 통일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 한국인으로서는 백 배, 천 배,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믿습니다.
김일성도 가고, 손원태도 가고, 늙은 눈을 비비며 새벽에 일어나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김동길도 머지않아 갈 것만은 확실합니다. 김일성도 손원태도 김동길도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무능하고 못생긴 단군의 후손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을지문덕이 오늘 살아있다면, 장보고와 이순신이 오늘 살아있다면, 조국을 이대로 두고 떠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시간의 소중함은 모르고 오직 좋은 시계만 갖기를 바라는 이 천치바보 같은 한국인, 조선인을 몽땅 맷돌에 넣어 박박 갈아서, 하늘이시여, 새 사람을 만들어 주소서, 새 사람을 만들어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