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박스 ② 미스 사이공(Miss saigon)
  •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미군과 현지 여인과의 사랑의 비극을 아름답고 애절한 멜로디와 스펙터클한 볼거리로 그려내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고질적인 서양 우월주의 시각은 씁쓸하다.

    동양인들은 자유가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자유가 없어도 별로 불편을 느끼지 않고 살아왔다. 그렇게 피부색이 누런 동양인이었다. <G.W.F 헤겔>

     

    지극히 주관적인 시각임을 미리 밝혀둔다. 필자가 코스모폴리탄의 웅혼하고 호방한 기상을 가졌으면 모르되, 신산스런 역사를 가진 극동아시아의 반도국에서 나고 여태껏 자란지라 뮤지컬 ‘미스사이공’은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 이었다.

    2000년 12월 31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미스사이공’이 10년간의 장기공연(총4063회)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당시 이 작품 ‘미스사이공’을 비롯해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등 초흥행작 뮤지컬의 제작자이자 프로듀서인 카메론 매킨토시는 “앞으로 브로드웨이에서 ‘미스사이공’을 그리워할 것 같다”는 다소 감상적인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는 ‘미스사이공’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고 해서 아쉬움까지 느껴지진 않았다. 그 이유는 '서사의 불편함' 때문이었다.

     

  • 독자들 가운데 직접 ‘미스사이공’을 본이도 많을 것이고, 직접 관람을 대다수는 ‘관객을 압도하는 브로드웨이 대작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 대한 ‘찬사’를 한 번 이상 들어봤을 것이다.

    헌데 ‘뉴욕을 방문하게 되면 꼭 봐야겠다’라고 손꼽는 이 뮤지컬을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라니?

    그것은 이 뮤지컬이 ‘아직도 살아있는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역사가  우리와도 전혀 무관하지 않은 그런.

     

    ‘역사’를 무대화할 때 무대의 상황이 ‘절대 객관화’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사건의 배경인 역사를 경험했거나, 혹은 집단기억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이다.

    월남 혹은 베트남이라고 불리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한 국가에서 벌어진 전쟁의 역사에 우리의 아버지들이 조연으로 참여했고, 필자의 작은삼촌도 그곳에서 전투를 치렀기 때문에 일종의 '선입견'이나 '판단기준'을 가지고 (혹은 부여받고)있기 때문이다. 무대위의 시점이 그와 같다면 모를까, 그 반대라면 심히 불편하다는 느낌을 가지는 게 인간의 한계이니까.

    무대는 베트콩에게 함락되기 직전인 1975년의 사이공.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클럽 ‘드림랜드’는 반라의 무희들이 분주하게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포주인 엔지니어스는 새롭게 클럽에 들어온 17세의 소녀 킴을 그녀들에게 선보인다. 닳고 닳은 무희들과는 달리 가녀린 소녀 킴은 고개조차 들지 못한다. 

    업소의 문이 열리고 포주가 ‘미스 사이공’을 뽑는다며 외치자 클럽의 무희들이 노골적으로 미군들에게 유혹의 춤을 선보이고, 한 무리의 병사들이 ‘사이공의 열기’를 부르며 바는 순식간에 퇴폐적인 환락에 휩싸인다.

    이때 미군 병사 크리스와 존이 들어오는데 소극적인 크리스는 별로 내켜하지 않지만 친구인 존은 ‘베트콩의 돌격에 대한 강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클럽에서의 ‘하룻밤’이 필요하다며 그를 이끈다. 이때 엔지니어스가 킴을 떠밀고 크리스는 순수한 그녀에게 한 눈에 반한다. 원숙한(?) 바걸인 지지가 ‘미스사이공’에 뽑혀 한 해군의 품안에서 전쟁을 벗어나 미국으로 가고픈 꿈을 노래할 때(The movie in my mind), 킴은 단지 그녀를 해치지 않고 보호해줄 남자에 대한 꿈을 노래한다(The movie).

    이때 친구인 존은 킴을 크리스의 파트너로 만들어주려고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킴과 크리스는 달빛 비추는 도시가 보이는 한 작은 방으로 들어가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크리스는 조만간 미군과 함께 사이공을 탈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킴이 잠자고 있는 동안 조용히 거리로 나온 크리스는 괴로워한다(Why God why?).

    그러나 그의 결론은 킴에게 돈을 주는 것이었다. 방으로 되돌아와 돈을 주려는 그에게 킴은 그녀가 전쟁의 불길 속에서 부모님의 죽음을 목격했던 아픈 과거를 이야기 한다. 마을이 파괴되기 전에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 사랑하지도 않는 어떤 남자와 약혼했었다는 것과 지금 자신에겐 클럽에서 몸을 파는 것 외엔 어떤 미래도 없다는 이야기를 고백하는 킴. 그에 연민을 느낀 크리스는 그녀와 함께할 것을 다짐한다. 그것이 값싼 동정심에서 시작된 것임은 2막에서 드러나지만, 이때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Sun and moon’만큼은 ‘미스사이공’의 대표적 테마라고 해도 좋은 만큼 아름답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사이공 탈출의 시간. 그러나 크리스와 킴의 서로를 향한 애틋함은 더해가고 결국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된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처럼 이때 안티고니스트가 등장한다. 바로 킴의 약혼자였던 두이다. 그는 자신의 약혼녀였던 그녀가 바걸이 된 사실을 알고 찾으러 온 것이지만 미군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격분한다. 킴은 “부모님과의 약속은 그들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다고 말하며 그와 함께 가지 않겠다”고 매정하게 말한다. “네가 죽는 순간까지 너는 나의 것”이라고 말하는 투이와 “미국으로 너를 데려갈 것”이라고 맹세의 노래를 부르는 크리스. 그러나 맹세는 늘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다.

    장면은 바뀌어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의 공산화된 사이공으로 넘어간다. 공산당 간부가 된 투이는 킴을 찾기 위해 포주를 협박해 그녀의 위치를 알아낸다. 그 시간 킴은 작은방에서 크리스와의 밤을 회상하는 ‘I still believe’를 노래하는데 동시에 크리스의 미국인 부인인 엘렌 역시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 두 여인의 사랑 노래는 보는 이의 감상적 정서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곧이어 투이가 포주와 킴의 방으로 들이닥친다. 투이는 “부모들이 정했던 것처럼 나와 결혼해 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킴은 거절하고 크리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살 난 어린 아들 탐을 부른다. 분개한 투이는 아이를 그의 적이라 부르며 칼을 꺼내 그 소년을 죽이려 하고, 킴은 총을 꺼내 투이를 사살한 뒤 베트남을 떠나 보트피플이 되는 것으로 1막이 끝난다.

     

  • 베트남판 ‘나비부인’, 서양우월주의 거슬려

     

    이 대목까지 도대체 ‘뭐가 불쾌하지?’ ‘킴의 사랑은 정말 지고지순하군’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브로드웨이 관객들은 투이가 죽는 장면에서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옹졸한 소견머리의 소유자인 필자는 이 대목에서 타이틀롤인 킴이나 크리스보다는 투이의 입장을 생각해보았다.

    은둔의 불교국가였던 그의 조국에 만약 프랑스의 식민통치,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서구의 이데올로기의 유입 그리고 세계 최고의 강국인 미국과의 전쟁이 없었다면 투이가 과연 두 살짜리 아이에게 칼을 들이댔을까?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는 악인이므로(동양인이므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헐리우드 영화’를 많이 본 까닭이다. ‘땅을 빼앗는 백인 기병대는 선’이고 ‘자신의 땅을 지키려는 인디언은 악’인 그런 인종차별주의(반셈주의)와 자민족 중심주의가 결부된 지배자의 논리 구도에 젖어든 탓이다.

    ▶미스사이공 동영상 보기               이미 서구화된 우리의 사고(에드워드 사이드에 따르면 이것이 ‘오리

                                                      엔탈리즘’이다)로는 부모의 약속 때문에 결혼해야 한다는 투이의 주장은 미개하다!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신성한 가치임은 말할 필요도 없는 터. 하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결혼해온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다 미개한 사람들이란 말인가? 심지어 초야권(初夜權)이라고 해서 영주가 결혼하는 소작인의 딸을 결혼식 전에 데려와 잠자리를 해온 역사를 가진 유럽의 문화는 인간의 그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문화는 결코 우, 열의 개념이 아닌 것이다.

    2막에 접어들면 ‘미스사이공’을 유명하게 만든 헬리콥터 신이 등장한다(뮤지컬 포스터에도 헬리콥터의 일러스트가 등장한다). 실제 헬리콥터 사이즈의 75% 크기의 이 헬기가 굉음을 내며 무대를 장악하는 장면은 무대예술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보았던 1974년 사이공 미국대사관 탈출 장면이 더욱 비극적으로(헬리콥터에 타려고 하는 베트남 사람들은 슬로모션으로 움직이게 하여 더욱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다가온다) 표현된다.

    방콕으로 탈출한 킴과 연락을 한 친구 존은 크리스에게 탐의 존재를 알리고 그 아이의 미래를 해결해야 한다고 상기시킨다. 그동안 어쭙잖은 휴머니스트 행세를 해온 크리스는 아내 앨런이 킴과 탐이 미국으로 오는 것은 원치 않기 때문에 이 모자는 방콕에 남아이고 자신은 재정지원만 하겠다고 대답한다. 대단이 편리한 서구적 사고방식이 아닌가 싶다.

    한편 방콕의 호텔에서 앨런과 만나게 된 킴은 자신이 자살을 결행함으로써 아들 탐이 ‘꿈에 나라 미국’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 믿고 권총 자살을 감행한다. 킴을 만나기 위해 방으로 들어온 크리스 앞에 있는 것은 바로 싸늘히 식어가는 킴의 사체. 오페라 ‘나비부인’의 엔딩 장면처럼 크리스는 킴을 끌어안은 채 ‘How in the light of one night have we come so far?’라는 노래를 부르며 끝을 맺는다.

    사실 관객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치지만 1백년 전 ‘나비부인’과 하나도 다를 거 없는 순종, 수동성, 희생의 자세 따위의 동양 여성의 이미지를 (그것도 자기들 편한대로) 또다시 확인해 보는 필자의 심기는 편치 않았다.

    물론 “극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가!”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뮤지컬을 본 서구인의 뇌리에는 그 어떤 보고서보다도 훨씬 강렬하게 동양에 대한 인상이 남게된다는 점을 생각해보길 바란다. 문화예술은 관객에게 ‘사고의 양식’을 골수로 바로 전달하는 가공할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이미 800만명 이상이 관람한 이 작품의 경우는 더욱 그렇지 않을까.

    탁월한 제작능력, 그것만은 부럽기 짝이 없다

    한 가지 부러운 것은 그 내용이야 어찌되었든 관객에게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해내는 그들 제작능력의 탁월함이다. 단순히 스펙터클한 무대(호치민의 동상과 깃발 춤이나 헬리콥터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레 미제라블’로 잘 알려진 클로드 미셸 쇤베르그 특유의 장중한 음악, 동양 여성 뮤지컬 배우들의 이상이 되어버린 리아 살롱가를 비롯한 출연진의 노래 실력. 영화 ‘조지 왕의 광기’ ‘크루서블’로 명성이 높은 니콜라스 하이트너 감독의 연출, 현존하는 세계 정상의 조명 디자이너 데이비드 허시 등의 초호화 캐스트의 앙상블이며, 그들의 꿈을 무대화시킬 수 있는 완벽에 가까운 백 스테이지 시스템은 그저 부럽기만 할 뿐이다.

    바로 이 점이 많은 부정적 요소-아시아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삼고 아시아 거리를 사창가로 표현하는 다분히 인종차별주의적인 작품이라는 주장, 실제로 미국인의 피가 섞인 2세들도 미군 병사의 자식일진대 그들을 돕는 것이 마치 무슨 대단한 자비라도 베푸는 양 표현한다는 주장, 심지어는 미군과 미군 병사를 나쁘게 표현한다는 항의, 그리고 포주 역할을 미국인 배우가 맡으면 안된다는 미국 배우조합의 저항 등이 분분했었다-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뮤지컬로 자리매김하게 한 힘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데 왜 지면에 소개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해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로 음악, 극 구성의 기법, 무대기술이나 백엔드 시스템 등 기본적으로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고, 둘째로 작품의 철학적 부분에서는 훌륭한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