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실조로 죽음 앞둔 아들 위해 ‘팡팡이가루’ 마련탈북 막으려는 단속에 “살려주오” 호소도 소용없이...
  • 매서운 칼바람이 불던 지난 2월 중순.
    청진에서 회령으로 향하는 버스는 함경북도 고무산 초소에 멈춰선 채 좀처럼 움직일 줄을  몰랐다.
    “야! 단속 한번 세게 하누만.”
    버스에 탄 주민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불평을 내뱄었지만 하릴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탈북행렬의 급증으로 전국적으로 검열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초소 단속도 강화된 탓일까?
    단속원들은 여행증명서가 있는 사람들도 꼬치꼬치 몇 번이고 캐물었다.
    짐 수색이며 이 잡는 듯한 몸수색도 몇 번씩이나 되풀이했다.

    버스 승객 중 허리가 구부정하고 몸도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삐쩍 마른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지 연신 단속원들에게 더듬더듬 뭐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단속원들은 매일 되풀이되는 단속이 힘들었던지, 할머니의 더듬거리는 말이 거슬렀는지 할머니에게 있는 대로 성질을 부렸다.
    단속원이 뭐라고 했는지 할머니의 눈에서 급기야 굵은 눈물이 야윈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할머니는 앙상한 손으로 단속원의 소매를 잡고 사정, 또 사정했다.
    하지만 뼈가 앙상히 드러난 한 줌 가느다란 손목은 거칠게 내팽겨 쳐졌다.
    힘에 밀린 할머니의 몸이 순간 휘청거리더니 곧이어 ‘쿵’ 하고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초조하게 단속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승객들의 눈이 한 곳으로 모아졌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쓰러진 할머니 주위로 몰려들었다.
    승객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한 단속원이 “빨리 처리하고 보내라”고 고함을 질렀다.
    단속원 한 명이 할머니를 거칠게 일으켜 세우더니 질질 끌다시피 버스에서 내리게 해 화물차에 태웠다. 그리곤 할머니의 봇짐을 던져주곤 화물차를 출발시켰다.
    머리가 산발이 된 할머니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를 눈물범벅의 얼굴로 최후의 숨을 끌어 모은 듯이 “살려 주오. 살려 주오”라고 외쳐댔다.
    하지만 화물차는 끝내 회령이 아닌 청진 방향으로 떠나고 말았다.  

    검사가 다 끝난 뒤 버스는 회령으로 출발했다.
    단속원이 눈앞에서 멀어지자 누군가가 말했다.
    “저 로친, 청암에서 전거리(회령 22교화소가 위치한 곳) 가던 중이라고 들었소. 아까 옆에서 검사를 받고 있었는데, 로친 아들이 작년에 도강하다가 걸려서 4년 형 받고 전거리에 있다지 않소?“
    “아, 아들이 중국 가다가 걸렸구만.”
    “영양실조에 걸려서 다 죽게 됐다는 연락을 받고, 아들 한 번 살려보겠다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펑펑이가루(뻥 튀긴 강냉이 가루) 20kg를 겨우 만들어 왔다고 하오. 잘 사는 것 같지도 않고, 다리를 다쳤는지 잘 걷지도 못하던데, 하여간 대단한 로친이오. 여행증명서까지 제대로 떼어 왔더만. 원래도 기력이 없는데다 하도 단속원들이 다그치니까 더 말을 못해서 더듬더듬하니 단속원들이 다른 속셈이 있다면서 통과를 안 시켜준 거요.”
    “아, 거 참 안됐구만.”
    “내가 옆에서 같이 사정해 봤는데 나도 이상하게 취급하려고 해서 그만뒀소. 로친이 몇 번이고 애원하고 울고불고 해도 그냥 돌려보냅디다.”

    회령은 국경도시라서 여행증명서를 떼는 데에도 뇌물이 많이 필요한 곳이다.
    남루하고 궁색해 보이는 할머니는 여행증명서를 떼고 펑펑이가루까지 챙겨 오려고 얼마나 애를 썼을까?
    중국으로 도강을 못하게 하려고 단속을 강화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다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겠다고 마지막 힘까지 끌어 모았을 모정까지 외면하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승객들도 할머니의 딱한 사정에 여기저기서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갑게 내팽개쳐진 모정이 서러웠는지 숨죽이고 우는 소리가 버스를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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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대북인권단체 ‘좋은벗들’이 10일 소개한 한 북한 주민의 목격담을 이야기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