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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란징크스'를 깨뜨리는 통쾌한 골을 넣은 윤빛가람이 조광래감독의 칭찬과 격려에 환하고 웃고 있다.ⓒ연합뉴스
    ▲ '이란징크스'를 깨뜨리는 통쾌한 골을 넣은 윤빛가람이 조광래감독의 칭찬과 격려에 환하고 웃고 있다.ⓒ연합뉴스

     

    23일 오전에 열린 한국과 이란의 8강전은 윤빛가람(21.경남)의 황태자 등극 무대였다.

    51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으로 가는 중대한 고비에서 그는 조광래 감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당당히 황태자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란은 아시안컵에 참가한 우리 대표팀에겐 피하고 싶은 팀이었다. 이란에 발목이 잡힌 전례가 쌓여 생긴 '이란 징크스'가 감독과 선수들을 지배했었다.

    인도와의 대전에서 골을 많이 넣으려고 기를 쓴 것도 이란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이란을 만나 윤빛가람이 통쾌하게 징크스를 깨뜨렸다.

    이란과의 8강전에서 후반에 교체 투입된 윤빛가람은 연장 전반 15분 강력한 왼발 슛으로 고대하던 선제골을 터뜨려 한국팀에 1-0 승리를 안겼다. .

    조광래 감독의 첫 번째 교체카드로 후반 37분에 구자철 대신 그라운드에 들어선 윤빛가람은 투입 초반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연장 전반 15분이 다 지나갈 순간 윤빛가람은 자신에게 돌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페널티 박스 오른쪽 코너 외곽에서 공을 이어받은 윤빛가람은 따라붙은 수비진 2명을 따돌리고 기습적인 왼발 슛을 네트에 꽂았다.

     

    이란 수비수들은 윤빛가람이 기습 슈팅에 손을 쓸 겨를도 없었다. 골키퍼가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지만 공은 골대 왼쪽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대표팀이 전후반 90분 내내 수차례 공격 기회에도 마무리를 해내지 못한 답답함을 한 번에 털어내는 시원한 슈팅이었고 윤빛가람이 황태자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윤빛가람의 슛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나온 우리 대표팀 골 중 가장 위력적이고 멋졌다.  

     

    2007년 한국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U-17) 월드컵에서 주전 미드필더로 뛰었던 그는 대학(중앙대) 시절 부상으로 장기간 그라운드를 못 밟는 시련을 겪다 2009년 말 K-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당시 경남 사령탑인 조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조 감독의 혹독한 조련으로 축구에 새롭게 눈뜬 윤빛가람은 지난 시즌 K리그 정규리그 24경기에서만 6, 5도움으로 맹활약하며 강력한 경쟁자 지동원(20.전남)을 누르고 신인왕에 올랐다.

     

    A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조 감독은 지난해 8월 감독 데뷔전인 나이지리아와 평가전에서 윤빛가람을 과감히 대표팀에 발탁했고 그는 선제골로 2-1 승리를 견인하며 조광래호 황태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이란과 3-4위 결정전 후반에 교체 투입돼 역전에 힘을 보탰다.

    이때까지만 해도 윤빛가람의 잠재력을 인정하면서도 조광래 감독의 특별한 애정이 두드러져 보일 만큼 황태자로서 국민적 공인을 얻기에는 5%가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생애 첫 아시안컵 무대에서, 자신을 발탁해준 스승 앞에서, 윤빛가람은 선배들의 이란 징크스를 통쾌하게 깨뜨리며 4강행을 선물했다. 별명이 아닌 진정한 황태자로 태어난 것이다.

    골을 넣고 바로 조광래 감독에게 달려가 안긴 윤빛가람은 "감독님의 채찍질에 힘들었던 부분도 있었지만 나를 분발하게 하려고 그러신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런 감정이 감독님의 가슴으로 내달리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황태자를 알아본 사람, 황태자로 키우기 위해 시련을 준 스승의 마음을 읽어내는 제자.

    경기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준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