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식민지(植民地) ⑫  

     철저한 탄압속의 공포 통치다. 무력을 바탕으로 가차없이 죽이고, 가두고, 입을 막는다.
    지난 대한제국 시절 왕실의 전제정치는 어린아이 놀음이나 같았다.

    등 따숩고 배만 부르면 어느놈이 상전이건 상관없다던 자들에게도 서릿발 같은 현실이 닥쳐왔다.
    따르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협이 바로 목전에 붙은 것이다.

    부패와 수탈에 시달렸던 당시에는 그래도 희망이 살아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얼떨결에 자유를 박탈당한 종 신세가 된 것이다.
    물론 지금도 일제에 붙어 호의호식하며 일본화(日本化) 된 조선인이 있지만 극소수다.

    일본식 개화, 부패 없는 통치의 혜택은 모조리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인 그리고 친일분자에게 넘어간다.
    이제와서 땅을 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깨우치지 못하고 뭉치지도 못한 그 죄값을 받아야 한다. 임금 탓하기도 지쳤다.

    조선왕조 519년 동안 조선 말기보다 더 심한 때도 흔했다. 더 무능한 왕도 있었으며 나라가 도탄에 빠진 때도 많았지만 민중이 뭉쳐 개혁을 이룬 적이 없다. 순종하고, 침략을 당하면서 견디다가 이 꼴이 되었다.  

    착한 백성이라고 칭찬해 줄 것인가?
    어리석은 백성이라고 동정해줘야 할 것인가?
    나는 점점 지쳐갔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간도나 연해주로 달려가 총을 쥐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총을 쥔 채로 죽으리라.

    이구치가 다녀간 지 나흘째가 되는 날. 그 날도 나는 오전에만 두 번의 강연을 하고 복도로 나왔다.

    「선생님, 준비실에 모였습니다.」
    배경수가 다가와 말했으므로 나는 잠자코 머리만 끄덕이고 발을 떼었다.

    1층 준비실은 복도 안쪽이라 은밀하다. 준비물이 쌓인 곳이어서 어수선했지만 방에 들어서자 모여 있던 회원들이 긴장했다.

    모두 7명. 배경수는 복도 끝 쪽에 감시로 남아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나는 여섯명을 둘러보았다. 모두 YMCA 회원들이며 내 조수, 보조원, 제자들이다.

    「수원에서 교인 넷이 잡혀갔습니다.」
    윤민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교회 내부에서 고발자가 있는 겁니다.」
    나는 머리만 끄덕였고 옆쪽에 서있던 고종덕이 말을 잇는다.
    「해주는 이번 검거에 아주 폐허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잡혀간 사람이 50명도 넘습니다.」
    내가 알기로도 이미 검거된 인사만 수백명이다.

    그때 앞에 서있던 최대진이 길게 숨부터 뱉고 말했다.
    「조선 땅 안에서는 군자금 모으는 것도 힘이 듭니다. 조직이 수십개여서 군자금 사기꾼도 있다니까요.」

    최대진은 40대 중반으로 을미사변때 오산에서 의병으로 싸웠던 사람이다. 최대진의 말이 이어졌다.
    「평양에서는 일본놈 정보원이 독립군으로 위장하고 군자금을 받고나서 바로 잡아갔다는군요.」

    나는 동지들을 둘러보았다. 밖에 서있는 배경수까지 일곱명이 그동안 내가 조직한 독립회 핵심요원이다. 이들이 내가 귀국한 후에 만든 구체적인 성과일 것이다. 나는 자주 이들로부터 시중의 정보를 듣거나 앞으로의 계획을 상의했다.

    내가 입을 열었다.
    「나도 용의자에 포함이 되어있어.」

    모두 담담한 표정인 것은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구치가 증거를 만드는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야.」
    이구치의 통역 이름은 노석준이다. 기석을 통해서 알아낸 것이다.

    내가 말을 이었다.
    「그놈들은 얼마든지 증거를 조작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모두 조심해.」

    내부 고발자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