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준칼럼> 서울 G20 정상회의 백서 만들자

     

    파티는 끝나고 손님들은 떠났다.

    대형건물마다 내걸린 서울 G20 정상회의 성공기원 현수막도 하나둘 걷히고 길을 막았던 바리케이드도 치워졌다. 시내에 깔리다시피 한 경찰도 안도의 숨을 쉬며 본연의 자리로 돌아갔다.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했던 시민들도 일말의 허탈감을 맛보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제 손님들이 떠났으니 서울 G20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치러졌는지 따져 볼 일이 남았다.

    20개 항으로 요약된 ‘서울 정상선언문’을 보면 서울 정상회담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를 내려도 무방할 것 같다. ‘확신’ ‘노력’ ‘합의’ ‘약속’ ‘다짐’등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의미의 어휘들이 눈에 걸리지만 “무슨 뚜렷한 결과가 나오겠느냐?”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던 분위기를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내릴 만하다.

     

    냉소적 분위기에서 거둔 ‘의미 있는 성공’

     

    당초 G20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에 한계를 느낀 G8(G7+러시아)이 개발도상국까지 부른 임시회의로 시작됐다. 지구촌 경제문제를 비롯해 환경이슈와 각종 분쟁 등 다양한 현안을 다루는 일종의 협의체다. 지금까지 네 차례 회의에서 G20을 통한 국제공조가 어느 정도 효과를 내자 ‘정치는 G8, 경제는 G20’라는 인식이 확산돼 매년 개최에 합의했다. G20 정상들이 모인 것은 서울 정상회담이 첫 번째다.

    아는 사람은 알았다. G7이나 G20이 어떤 구속력 있는 구체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지구촌 이벤트와는 다른 ‘지나가는 연례행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 정부에 몸담고 있는 인사들도 G20 정상회의가 국제 현안에 대한 논의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정도의 연례행사로 끝날 것이라며 가시적 성과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명박 대통령에 연민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G20의 성공적 개최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21조6천억원~24조6천억원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내고, 무역협회가 한발 더 나아가 경제효과를 31조 2천747억원(직접효과 2천667억, 간접효과31조800억원)으로 산출해내자 이 정권의 선전전이 도를 넘었다는 인상까지 주었다. 청와대는 얼씨구나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대통령은 “G20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 한국의 전체적인 국가이미지가 상승하고 그러면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상품이라든지 이런 것에 대한 경제적 가치도 같이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직접 국민들의 실생활하고도 연결이 될 것이다, 단순하게 정상들만의 회의는 아니다”라며 성공적인 서울 G20 정상회의 개최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지시했다. 국민들의 눈에는 허상을 좇는 대통령으로 비쳐지기까지 했다.

     

    오지랖 넓은 호스트의 열정

     

    그러나 파티에 초대된 손님들도 놀랐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왔다가 오지랖 넓은 호스트의 열정에 멋진 ‘서울 정상선언문’을 받아들었다. 환율문제, 경상수지 적정 유지, 도하개발어젠다 협상, 투명하고 공정한 기업환경, 개발도상국에 대한 개발지원 등에 상당히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적어내야 했다.

    70을 눈앞에 둔 대통령이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뛰었다. 관련 업무의 공무원들은 잠을 잊었고 단군 이래 최고의 경호작전에 경찰의 고생도 심했다.

    무엇보다 국민들도 불편을 잘 참아내며 협조해주었다.

    덕분에 서울 G20 정상회의가 지속가능한 협의체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대통령은 각국 정상들과 우의를 쌓았고 우리 기업인들은 세계 유수의 기업인들과 활발한 접촉을 가졌다.

     

    그러나 서울 G20 정상회담의 성공에 마냥 도취하고 있기에는 지적하고 싶은 것이 적지 않다. 이쯤 해서 파티에 무엇이 모자라고 무엇이 지나쳤는지 성찰하는 것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유종의 미를 거뒀기에 망정이지 제대로 된 선언문이 나오지 못했다면 야당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원성이 대단했을 것이다. 뭐가 그리 대단한 행사라고 온 나라가 나팔 불고 북치고 난리법석을 떨어야 하느냐고 거품을 품었을 것이다

     

    국민 원성은 경청해야

     

    이런 국민들의 원성을 경청해서 해될 것은 없다.

    테러에 대비한 경호 상의 통제는 그렇다 쳐도 곳곳에서 격에서 벗어난 과잉이 목격되었다. 초대한 손님들이 불쾌한 냄새라도 맡을까봐 분뇨 정화조 처리시설까지 대회기간 잠시 폐쇄하고 음식물 배출도 줄이라고 당부했다. 서울시내 대형건물마다 성공을 기원하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린 것도 ‘붉은 구호’에 도배된 북쪽을 연상케 했다. 길거리 청소에 공무원과 학생들이 동원된 것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정상회담 장소인 코엑스 주변의 감나무에 열린 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철사로 묶어 놓는 발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외국 언론의 냉소를 받을 만했다.

    행사의 규모와 성격에 맞게 준비하고 대응하는 데 모자람이나 지나침이 없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서울 G20 정상회의’의 백서를 만들 것을 권하고 싶다.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교훈이 무엇인지, 득실이 무엇인지 백서를 통해 따져 보면 다음 정권에도 두고두고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방민준 /뉴데일리 부사장,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