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 살려 주는 건 남쪽 

     황장엽 선생을 국립 현충원(대전)에 안장하고 상조회 대절 버스로 돌아오는 길, 작년에 탈북한 동포와 나란히 앉았다. 그는 2~3일 전 북한에 있는 인척과 휴대폰 통화를 했다. “김정은이 대장 됐다며?” 상대방의 대답이 전에 비해 너무 놀라웠다고 한다. ”그깟 놈 뭐가 되든 먹고살기 바쁜데 내가 알 게 뭐가?“ 

     그는 우리 쪽 취약점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북한의 취약점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첫째, 북한 사람들은 이젠 돈이냐 김정일이냐 하면 돈을 택한다 이겁니다. 둘째, 위서부터 아래까지 썩을 대로 썩었다 이겁니다.” 화폐개혁 실패 이후 이런 사정은 더 심해졌다고 한다.  

     중국이 그런 김정일을 버티게 해주는 것 아니냐는 질문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나쁘지요. 옛날에 김일성도 "조중(朝中) 친선은 해야겠지만, 중국은 조선 사람한테 나쁜 일만 했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김정일이 별수 없이 중국 품에 안긴 것 아니냐?‘ ”그렇지요“ 

     우리 쪽에 대해선 이런 말을 했다. “남쪽 좌파는 왜 북한에 대해 우리가 하는 말을 믿지 않느냐?” “당신, 이상한 사이비 종교 믿는 광신도가 남의 말 듣는 것 봤냐?” 나는 한참 동안 남쪽 친북파의 출판물, 역사교과서, 영화, 재래식 미디어, 뉴미디어의 선전 선동에 놀아나는 이쪽의 ‘쓸모 있는 바보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골수 친북파가 설령 수적으로 얼마 안 된다 하더라도 그들의 선전 선동과 문화 권력에 휩쓸리는 어정쩡한 인구는 꽤 많다고 하자, 그는 나중에 이런 결론을 내리는 것이었다. 

     “이젠 좀 알겠군. 결국 거덜난 김정일 살려 주는 건 북한의 세뇌당한 주민들보다 남쪽이군.” 

     그의 이런 결론은 서울에서 일류 대학을 나와 외국에 가서 석박사 한 남쪽 일부 먹물들의 해박한(?) 교언영색(巧言令色)보다 한 5만 배는 더 큰 위력으로 나의 가슴을 울렸다. 바로 조금 전 대지(大地)의 품에 맡겨드린 황장엽 선생의 메시지가 그의 증언을 통해 오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류근일 /본사고문,언론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