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영국의 저명한 시인이었던 월터 새비지 랜더가 노년에 이르러 어느 생일에 이렇게 읊었습니다.

    나 아무와도 다투지 않았네
    누군들 나와 다툴 만 하였으랴
    나 자연을 사랑했고
    자연 다음으로는 예술을 사랑했던 이 몸
    인생의 화로 가에 두 손 녹였으나
    이제 그 불길 꺼져가네
    그리고 나, 떠날 준비는 다 돼 있다네

    역시 시인의 삶에는 멋이 있고 여유가 있습니다. 그가 아무와도 다투지 않은 까닭은 누구도 그의 싸움의 상대가 된다고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라니, 과연 시인다운 도도함과 교만함이 엿보입니다.

    나의 82년 삶에는 이렇다고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가 전혀 없고 또 후세에 남기고 간다고 자랑할 만한 업적이라곤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제대로 생긴 아들·딸이라도 낳아서 잘 키웠다면 ‘후세에의 유물’이 될 수도 있으련만, ‘자유’의 이름으로 독신을 고집하다 오늘 이 꼴이 되었습니다. ‘울 밑에 선 봉선화’가 된 것입니다.

    그래도 82년의 긴 생을 자유 하나를 찾아서, 자유 하나를 위하여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나의 주변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사랑하였습니다.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을 힘 쓴 것은 사실입니다. 시인 랜더는 시를 썼지만, 나는 나 나름대로 ‘사랑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실패작이지요. 그러나 남들이야 알아주건 몰라주건, 나의 타고난 능력을 다 바쳐서 이 날까지, 작품 만들기에 열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고달픈 삶이었으나 나로서는 보람 있는 삶이었습니다.

    19세기 프랑스의 두드러진 작가이고 <적과 흑>의 저자이기도 한 스탕달은 자기 벨트에 그가 사랑한 사람들의 이름을 다 적어 놓고, 그 혁대로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나에게는 그런 이름들이 적힌 벨트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영원을 그려보며, 약간의 미소를 띠고, 저만큼 바라다 보이는 마지막 관문, 통과하기 힘들다는 그 죽음의 관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와 나보다 먼저 떠난 나의 아버님·어머님, 누님, 형님, 그리고 절친하던 친구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모두 거기서 다시 만날 것을 나는 믿고 또 바라고 있습니다.

    여든 두 번째 생일을 맞은 오늘, 테니슨과 함께 이렇게 노래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해는 지고 저녁 별 반짝이는데
    날 부르는 맑은 음성 들려오누나
    나 바다 향해 머나먼 길 떠날 적에는
    사바세계 신음소리 없기 바라네

    <김동길 /연세대명예교수>
    www.kimdongg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