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회사 현관 앞에 있어요.」
    하고 여자가 말했으므로 김동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오후 5시 반, 사무실 안이다. 핸드폰을 귀에서 뗀 김동수가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박미향은 컴퓨터 모니터를 노려보는 중이었고 최용기는 지금 도매상 하나의 불평을 듣느라고 정신이 없다.
    두 달쯤 전에 넘겼던 참기름이 이제야 말썽이 났기 때문이다. 참기름 색깔이 검게 변한다는 것이다.

    사무실을 나온 김동수가 건물 현관을 나왔을 때 옆쪽 편의점 앞에 서있던 여자가 다가왔다. 야구모자, 지난번에 고추 작업을 할 때 우황청심원을 대량으로 사들고 온 병신 모녀 중 딸내미, 아직 이름도 모른다.

    조금 전의 통화에서 여자는 자신을 「그때 고추 가져왔던 사람」으로 소개했다. 하긴 그때 고추 작업때 여자는 두 모녀뿐이었지. 여자는 오늘도 야구모자를 썼는데 S·F가 겹쳐진 로고가 붙여졌다. 축구 매니아여서 마라도나의 집 주소까지 아는 김동수였지만 야구모자에 붙여진 S·F는 무슨 표시인지 모른다.

    다가선 김동수에게 S·F가 말했다.
    「저기요. 말씀 드릴 것이 있는데요.」
    하고는 눈으로 편의점 옆의 커피숍을 가리켰다.
    「10분만 시간을 내주세요.」
    「난 쫄따구라 별 볼일이 없을 텐데요.」

    미리 김동수가 연막을 쳤다. 아직 겪지 않았지만 좋은 물건 나오면 끼워 달라면서 접근하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최용기의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인간들은 백발백중 사고를 낸다는 것이다. 물건을 빼돌리든지, 소문을 내고 또는 거머리처럼 붙어서 협박까지 한다고 했다.

    S·F가 김동수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10분만요. 무리한 부탁은 안할게요.」

    S·F의 맑은 눈이 반들거리고 있다. 화장기 없는 피부, 굳게 닫친 입술 끝이 희미하게 흔들리는 것을 본 순간 김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10분만.」

    S·F가 소똥이 섞인 우황청심원 7백만원어치를 어떻게 처분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10개 만원씩 7천개, 8백개는 덤으로 받아서 7천 8백개였던가?

    커피숍에서 마주앉아 커피를 주문하고 났을 때 S·F가 불쑥 말했다.
    「그거, 흙하고 풀이 섞인 것이어서 다 버렸어요.」

    김동수는 시선만 주었고 S·F가 말을 잇는다.
    「하마터면 엄마가 사기로 구속될 뻔 했는데 풀려났어요.」

    아마 도매상들은 웃었을 것이다.

    그때 S·F가 똑바로 김동수를 보았다.
    「저기요. 제가 모레 다시 다렌으로 가는거 아시죠?」
    「그렇습니까?」

    김동수가 건성으로 물었다. 이틀 후에 작업이 있긴 하다. 이번에는 잣 9백키로 였는데 다시 배경필이 인솔한 인간 컨테이너들이 떠난다. 그 컨테이너 선정은 배경필 책임이었으므로 뉴스타 상사는 상관하지 않는다.

    S·F가 다시 말했다.
    「근데 일행 하나가 저한테 분말 웅담을 같이 들여오자고 하는데요. 괜찮을까요?」
    「당연히 안괜찮죠.」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동수가 대답했다. 그리고는 이맛살까지 찌푸리며 말을 잇는다.
    「틀림없이 같이 들여오자는 그 일행하고 현지 분말 웅담 파는 놈하고 같은 사기꾼일겁니다. 아마 10배 장사가 될 거라고 했겠지요?」
    「열 네배요.」
    「돈은 한 천만원 준비하라고 합디까?」
    「8백밖에 준비 못했어요.」

    S·F가 고분고분 대답했다.